저도 좋은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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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무실 책상으로 대표되는 물리적인 [자리] 얘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권력 관계를 상징하는 정치적인 [자리]까지 이야기를 말이다. 어디에나 [좋은 자리]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가급적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벌였던 눈치 싸움이 생각난다. 지금에서야 아무 의미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왜 그리도 [좋은 자리]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낮은 자존감을 직업적 자아로라도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비본질적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비본질적인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강조하긴 하더라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무실 책상]을 통해 내 안에 [좋은 자리]를 앉고 싶다는 욕망을 발견했다는 것이 나름 수확이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나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본다. 왜 나는 다들 자기만의 업무용 책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모두가 사무직은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이 글을 통해서 나 중심의 세계관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낼 수 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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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무직이 보편적인
일자리라는 선입견
회사에서 사직을 권고할 때, 사무실 책상을 뺀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이 보편적인 말인가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는데요. 저는 쭉 사무실 책상 앞에서 일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업무 환경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사실 모든 사람이 책상이 있는 일터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일의 종류에 따라 어떤 사람의 일터에는 책상이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처한 상황 중심대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마따나 제 생각의 지경이 많이 좁은 것 같네요.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DA7E27S&conn_path=I2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총 취업자는 2,842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사무직]은 1,124만 명으로 약 39.6%, [서비스직]은 603만 명으로 약 21.2%, [생산직]은 1,114만 명으로 약 39.2% 종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사무직]은 절반을 넘기는 일자리가 아니기에 보편적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무실 책상]을 뺀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사무실 책상]이라는 말은 실제 출근해서 일하는 [사무실 책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직업적 자아] 혹은 [직업 정체성]이 손에 잡히도록 형상화된 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TV 드라마에서 사직을 권고할 때, [사무실 책상]을 빼는 장면이 종종 보입니다.
https://serie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0871464
기업에서 정규직원에게 사표를 내게 만드는 네 가지 방법이라는 글이 아주 예전에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에서는 [대기발령], [지방발령], [승진누락], [책상빼기] 네 가지를 언급합니다. 다른 방법도 참 악랄하다 싶은데, 책상빼기가 유독 마음에 걸리네요. 그래서 [사무실 책상]을 뺀다는 말을 들을 때, 눈을 피하게 됩니다.
고용불안에 예민한 까닭은 책상을 빼버린다는 대목에서, 과연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 담긴 [사무실 책상]을 뺀다는 것은 단순히 책상을 빼는 것에 그치지 않죠.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사정없이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특히,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사원일수록 권고사직에 잔인한 방식을 쓴다고 하니, 어쩌면 책상을 빼는 방식이 회사엔 최선인지도 모르겠네요.
1.
책상을 뺀다는 얘기
실제로 일어난 사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2174
6년 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당시 엄청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면벽 책상 논란이 일어났던 명예퇴직 거부자 관련 기사입니다. 사무직 노동자가 명예퇴직을 거부하자, 사물함만 바라보도록 자리를 배치한 것이죠. 책상을 뺀다는 말이 은어로 사용된 게 아니라 실제 예시로 사용된 셈입니다.
https://www.mk.co.kr/news/stock/9697340
그 이후로 명예퇴직을 거부한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해당 회사였던 두산모트롤은 2021년 1월 5일, 두산그룹으로부터 물적분할하여 소시어스-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끝이었기 때문이죠. 새로운 투자회사에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몹시 아프니까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969
2015년 대선조선에서도 비슷하게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해고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16년 10월, 소송을 내고 나서 무려 6년을 끌다가 2022년 9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법원에서 위법이라는 판결이 났네요. 지난 6년 동안 1심과 2심에서는 사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마지막 대법원은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마지막 판결에서는 승리했지만, 그동안 들어가게 되었던 변호사 비용, 취업하기 어려운 나이와 상황, 재판 때문에 받게 된 스트레스 등을 생각하면, 판결에서 승리한 것과 상관없이 너무나 힘드셨을 것 같네요.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00054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비슷한 사례도 덧붙여 봅니다. 어느 날 출근해보니 책상이 없어졌던 부장님 이야기였는데요. 책상이 없어져서 너무 자존심이 상했지만, 직장을 구하고 나서 사표를 쓰자는 마음에 휴게실에서 3년간 일하셨다고 합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니만큼 실제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만일 실제로 존재했던 이야기라면 마냥 웃고 넘길 수 없네요. 구겨져버린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기보다 어떻게든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와 아버지의 책임감이 글에서 느껴진 탓입니다.
2.
다 좋은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사무실 책상]은 단순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를 넘어,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데요. 부서 이동을 하거나 자리를 재배치할 때,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자유롭게 앉으세요."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눈치싸움이 생기던지 말이죠.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좋은 자리]란 건 이미 있으니까 말입니다.
창가에 가까운 자리는 태양빛과 태양볕을 받아 광합성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햇볕을 받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햇볕을 받으면 업무에 시달리다가 생기는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창문 근처 자리는 환기할 수 있어서 좋죠. 주기적으로 환기하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축적되어 각종 피부 질환 및 호흡기 질환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창문이 없는 자리는 좋지 않은 자리가 되겠죠.
출입구를 기준으로 마주 보는 자리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다른 사람에 들키지 않아서 좋습니다. 일하는 시간 내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몰두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뒷공간이 벽으로 막혀있다면, 아무래도 덜 감시받을 수 있습니다. 감시받는다는 생각이 오히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기도 하기도 하고요. 반대로 출입구를 등지고 있는 자리는 좋지 않은 자리가 되겠죠.
자리가 자주 바뀌는 것도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좋은 자리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자리가 자주 바뀌면 기왕이면 더 좋은 자리를 앉고 싶을 텐데, 모든 사람이 더 좋은 자리에 앉을 순 없으니까 말입니다. 지정좌석제가 아닌 경우 일찍 오는 순서대로 앉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칫 눈치 없는 직원으로 찍힐 수도 있죠. 사무실 책상은 단순히 업무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부 권력관계에 따라 눈치를 봐야 한다면 차라리 고정해서 안 바꾸는 게 나을 겁니다.
3.
사무실 책상 자리가
말하는 직업 정체성
보편적으로 팀으로 자리에 앉는다면, T자형이나 일자형으로 앉습니다. 그룹장이 출입구를 마주 보고 창문을 등진 채 앉고, 나머지 구성원이 둘씩 붙는 구성이죠. 혹은 회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뒤로 돌았을 때 [그룹]이 되도록 자리를 배치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그룹장은 상대적으로 좋은 자리에 앉죠.
그룹장이 아니어도 업무의 특성상 좋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비밀스러운 역할을 수행하는 인사/총무/회계부서가 그렇죠.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영향력이 강한 것인지, 기밀을 다루기에 영향력이 강해져서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인사/총무/회계부서는 언제나 예외적인 자리에 놓여있는데요. 때로는 그들의 정보력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부러울 때가 있더라 말입니다.
이처럼 사무실 책상은 [직업 정체성]이 형상화된 물건임과 동시에, 회사가 자리에 앉은 사람을 얼마나 중요하게 대우하는지, 다시 말해 [중요도]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상을 뺀다는 말은 은유적으로나 실제로나 참 잔인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물리적으로 투덕거리던 폭력은 확실히 잘못되었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따돌림은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물리적인 폭력 못지않게 정신적인 폭력 또한 무섭다는 걸 느낍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증거가 남지 않아 대응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 것 같고요.
왠지 [사무실 책상]에 너무 과몰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무실 책상]을 통해 내 안의 권력욕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지금보다 더 [좋은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이 제 안에 있나 봅니다. 혹은 [나쁜 자리]가 주는 불안함이 자신을 찜찜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좋은 자리]이든, 정치적인 [좋은 자리]이든 말이죠. 저는 언제쯤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요? 혹은 언제쯤 [좋은 자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