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현장은 허망함과 무기력함이 가득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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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2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던 선생님은 왜 목숨을 끊었을까. 선생님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암암리에 퍼져 나가고 있는 고강도 학부모 민원 속에 겪게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소동 속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 원인은 아니었을까. 늘 지나던 집 근처의 초등학교라 추모하지 않을 수 없어 추모하러 발길을 보탰다. 매우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사람들의 방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울먹이는 사람, 눈물을 참고 헌화하는 사람, 화를 참아내는 사람, 동료교사 라는 네 글자가 보여주는 분노...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답답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무기력한 교사의 말 한 마디, 제자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손편지에 가슴 깊이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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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쏟아진 탄식의 목소리
2023년 7월 18일 서울서이초등학교의 젊은 교사 한 사람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재 경찰의 조사 결과로는 개인 사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학부모의 강도 높은 민원이 한 생명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 사건은 발발 초기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뒤늦게서야 온라인상에서 쟁점이 되고 기사화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870180
서이초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 출퇴근길마다 늘 스쳐 지나가는 곳이기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월 20일, 전국에서 선생님들이 보내온 조화가 서이초등학교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선생님이 끝내 넘지 못하셨던 감옥과도 같은 현실을 상징하듯. 저는 7월 20일 밤에 추모를 위해 방문했는데요. 조화가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두르고도 모자라서 인도의 양쪽을 채워나갈 정도로 많았습니다. 언뜻 최소한으로 잡아도 300개는 넘어 보였는데요.
상당히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꽤 많은 분이 초등학교에 방문해 추모하고 계셨습니다. 현장은 안타까운 마음과 무기력함이 공존했습니다. 울먹이는 분, 눈물을 참고 헌화하는 분, 화를 참아내는 분,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답답했었습니다. 아까운 생을 마감한 선생님을 향해 추모를 마치고 초등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조화와 쪽지에 써 있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동료교사, 선배교사 등 담담한 네 글자가 써 있기도 했고, 전국 각지에서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자신도 이미 알고 있던 고통이었는데 자신이 회피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실감 등이 가득했습니다. 수많은 쪽지의 글을 보면서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먹먹한 마음을 안고 지나가던 중, 몇몇 글귀를 보면서 참았던 탄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작년에도 1학년을 맡아주셨던 모양인데, 작년 1학년 8반 학생들이 준비한 조화, 제자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손글씨... 아이들이 쏟아내는 감사와 사랑 고백 앞에서 선생님께서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셨는지 느껴졌습니다.
교사로 추정되는 한 분이 제 앞을 지나가면서 남긴 말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래봤자 어차피 하나도 안 바뀔 게 뻔하잖아. 나 이제 앞으로 30년 이상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1.
수사의 방향이 도대체
왜 동료교사로 향하나
하나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그 교사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까닭은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수사하는 방향을 보았을 때 의구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숨진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소문에 대해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몇몇 문제가 될 만한 사안에 대해 학부모와 별다른 갈등 없이 마무리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584059?sid=102
경찰은 갑자기 수사의 방향을 동료교사 60명에게로 돌려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동료교사가 자살한 원인이 되었을 수 있지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강성 학부모 민원이 아니라 동료교사에게로 수사의 방향을 돌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동료교사들이 쏟아내는 제보에 대해서는 묵살하고, 다른 쪽으로 원인을 찾아내려고 파고드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린 지금, 허술하게 수사하진 않으리라 믿어봅니다. 수많은 교사가 울분으로 지켜보는 중인데, 설마 이번 사건을 개인 사유로 발생한 사고로 덮어버리려고 하진 않겠지요. 소수의 눈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다수의 눈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정치권에서도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할 것입니다. 계류되어 있다던 학부모 갑질 방지법, 교권보호조례 등의 사안이 하루빨리 통과되길 바라봅니다.
이번 사건에서 눈속임하려는 시늉이 역력해 보이는 까닭은 신규 교사가 [기피] 업무로 판단되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업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학교 측에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뱀의 지혜를 빌렸기에 그런 발표를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했는지 의문이 드네요. 선택한 결과를 놓고, 진짜 자발적이었는지는 도대체 어떻게 판단하나요.
이 문제가 "점심 뭐 먹을래?" 를 물어봐서 이것저것 다양한 선택을 놓고 고민하다가 짜장면 먹자고 하니까, "너 정말 짜장면 좋아하는구나." 라고 오해하고 넘길만한 문제가 아닌 것이죠. 모든 선택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착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어떤 경우든 간에 모든 선택은 [위험]을 회피하는 방안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차적으로 차악을 선택한 후, 그중 최선을 선택하게 되지 않던가요. 지극히 당연한 이러한 상황을 놓고,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오해하는 뻔뻔함에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그러니 학교의 발표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 어떤 학부모의 민원도 없었는데, 이 선생님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것밖에는 해명이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수없이 많은 시험을 통과했을 테고, 근면성실하게 교육을 연습하였을 것이 뻔한데, 아무런 문제도 없던 상황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사유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37/0000352088?sid=102
심지어 초등학교에서 내놓은 입장문이 한 차례 수정되어 발표되었는데요. 해당 학급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사안이 학교의 지원 하에 다음 날 마무리되었다는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내용이 수정된 이유가 학부모회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했습니다. 학교 측 입장문을 학부모회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걸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이겠죠. 그런데도 학부모 측과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수사의 방향도 학부모가 아닌 동료교사를 향하고, 학교 측의 입장문에서도 학부모의 갑질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고. 그렇게 흔하게 있을 법한 한차례 소동으로 덮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드러나겠다고 생각합니다. 압력밥솥이 폭발하기 전까지 계속 시끌시끌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2.
끙끙 앓으면서 버틴
곪았던 고름이 터져
이번 일이 있기 얼마 전, 2023년 6월 30일 양천구 신강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이 폭행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건으로 다시 재조명받게 되었는데요.
이미 한 차례 동일한 선생님을 폭행하였던 전과가 있던 학생이 다시 해당 선생님의 지도를 피하면서 폭행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해당 학생은 초등학생이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위인 전학 조치를 받았는데요. 그저 폭탄 돌리기에 불과한 조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학생이 전학을 가면, 전학을 간 그 학교에서는 과연 어떻게 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일까요.
교권이 무너진 지 오래라고들 합니다. 현재 선생님이 수많은 학생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한데요. 지금도 일선에 있는 수많은 선생님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무기력한 상태로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하는 것일 겁니다.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교육인 것일까요.
수업 중 잠을 자는 학생을 건드리기만 해도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단체 사진을 찍어 주었다가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단체 사진에 덜 찍혔냐는 민원을 받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가 아동 학대로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카카오톡 프사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추모하는 것은 아이들 교육상 좋지 못하다며, 굳이 이른 아침부터 문자를 보내는 행위는 과연 아이들 교육상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그저 혼란에 혼돈을, 소란에 소동을 더해나가고 있는 현 상황은 정말 앞이 캄캄하고, 너무나 답답합니다. 곪을 만큼 곪아서 터져버린 고름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상황, 소를 잃고도 소는 커녕 외양간조차 못 고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게 되는 요즘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