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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 보려는 계기

공부보다는 원한/미련/후회를 없애고 싶습니다만

- 바로가기 : https://alook.so/posts/E7t0k4


- 글을 쓰게 된 목적 :


최근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생겼다니, 그냥 시작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내 선택은 신중해지게 된다. 중도 포기하거나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그런 듯하다. 게다가 이 글은 다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을 핑계로 내 속에 남아있던 상처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 나는 왜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어 졌는지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간단하게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내 속에 담겨 있던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글을 다 쓰고 나서 곰곰이 돌아보니, 내 속에 남아있던 상처가 의외로 깊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하고도 남을 연륜을 충분히 갖췄음을 본다. 내가 세운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마음, 지금 내가 한 선택이 나중에 미련을 남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만 있으면 나는 무엇을 도전하더라도 괜찮다.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결과는 내가 들인 노력과 상관없이 운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아무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도전이니만큼 순탄하게 잘 진행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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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 보려는 계기



저는 최근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독일에 유학 갈 일도 없고, 반드시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독일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듣는 제2외국어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이과였는데도 제2외국어를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필수적으로 배워야만 했죠. 요즘은 사회/과학 과목 중에서도 고등학교가 정한 선택과목만 수강하면 된다지만, 예전에는 문과/이과/예체능에 따라 수학/사회/과학 중 일부 과목을 자신이 정한 분야에 맞게 덜 듣느냐, 더 듣느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2년 동안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으니, 현재 제 입장에서 독일어 수업은 어쩌면 별로 무의미하고 필요 없는 공부였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제2외국어로 처음 접한 독일어를 당시 참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일어는 영어 알파벳에 일부 새로운 알파벳이 몇 개 추가된 것 말고는 알파벳이 영어와 거의 똑같습니다. 그런데 알파벳을 발음하게 될 때, 영어는 단어에 따라 알파벳의 발음이 다른 게 있죠. 예를 들어, mother는 [마더]로 읽지만, 일반적으로 o는 우리나라 발음인 [ㅗ]로 많이 하니까 mother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더]라고 읽었어야 되겠죠. 이렇게 단어에 따라 알파벳의 발음이 달라지는 영어와 달리, 독일어는 알파벳 읽는 법만 배우면 해당 단어의 뜻은 모르더라도 단어를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어는 문법 규칙에 많은 예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영어 사용자 입장에서 필요한 형식 위주로 변화하다 보니 그렇게 바뀐 것 같은데,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하는 입장에서는 수도 없이 많이 나오는 예외 때문에 골치가 아프죠. 예를 들어 동사 eat의 과거형은 왜 eated가 아니라 ate이며, 과거분사는 왜 eated가 아니라 eaten인지, 영어의 불규칙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에 반해, 독일어 문법 체계는 배우긴 어렵지만,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워낙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국민성이 반영되었다고 이해하면 되려나요?


있는 게 없는 불어, 없는 게 없는 독일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없는 언어가 불어(프랑스어)라면, 없는 게 없는 언어는 독일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80이라는 말이 없어서 20을 이용해서 80을 표현한다는 불어, 어떤 개념이더라도 그 개념에 대응하는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독일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지어집니다. 프랑크 왕국이라는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음에도 이렇게 말이 다른 걸 보면, 언어의 세계는 참 신기합니다. 이와 같이 발음이든, 문법이든 거의 예외를 찾아보기 힘든 독일어가 처음 배울 땐 참 멋져 보였습니다. 비록 지금 기억나는 독일어는 Ich liebe dich. Guten Morgen. Guten Tag. 밖에 없지만 말이죠. 그렇다면 저는 굳이 제 인생에 필요도 없는 독일어를 왜 다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제게 독일어는 조금 아프고 슬픈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 아프고 슬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제가 고등학교 독일어 수업 시간에 겪었던 얘기를 잠깐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독일어를 공부했을 때는 마치 영어 알파벳을 배우는 느낌 같아서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 보면 독일어는 늘 100점을 맞았죠. 하지만 수학, 과학 같은 학문과 달리, 언어는 자주 쓰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아무리 독일어 성적이 잘 나온다지만, 문과도 아닌 제게 그저 제2외국어에 불과한 독일어에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었죠. 그래서 다른 과목 위주로 공부하느라 소홀했던 사이, 독일어 수업은 어려운 문법과 어휘 암기 중심으로 수업이 흘러가게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난도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죠.


재능 있는 사람이 언어를 배울 때,
영어는 30시간, 불어는 30일 걸린다.
하지만, 독일어는 30년 걸린다.

_ 마크 트웨인의 책, [지독한 독일어] 中


1학기였는지 2학기였는지, 중간고사였는지 기말고사였는지 쪽지시험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치렀던 독일어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52점을 받았습니다. 늘 100점만 받았었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제가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선생님께서 나눠주시는 시험지를 받아 들고, 자리에 돌아가 그만 시험지를 구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입장에서 아무리 독일어가 쓸데없는 과목이라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저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다는 마음에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시험지를 구긴 걸 선생님께서 보셨기 때문이죠. 제가 선생님께 반항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신 모양인지, 몹시 떨리는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셨고, 저는 뒤늦게 잘못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서 교탁 앞에 섰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기골이 장대하여 저보다 10cm 이상 더 크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요. 제게 지금 뭐 하는 거냐며 화를 내셨고 그동안 제게 거셨던 기대가 커서 그러셨는지,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따귀를 올려치시며 저를 사정없이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실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저를 발로 차고 밟으셨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한참을 구타당하고 나서 선생님께서는 교무실로 가셨고, 반 분위기는 완전히 이상하게 변해버렸습니다.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그때만큼 살벌하게 맞은 적도 없고, 그 이후로도 없었으니, 이때 맞았던 구타는 전무후무하다고 봐야겠죠.


그 이후로 제가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그날 귀가는 잘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때부터 제가 독일어에 대해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독일어는 발음이나 문법에 예외가 없는 모습이 딱 제 성격과 닮아서 좋아했었는데요. 마침 성적도 안 나왔던 데다가, 제가 문과도 아닌데 독일어를 잘해봤자 제 인생에 그다지 필요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제 입장에서는 너무 큰 충격에 휩싸인 일을 겪었다 보니, 이때 마음의 문이 확 닫혀버렸던 것 같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마음이 먼저 열려야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데, 이렇게 마음이 상한 상황에서 고작 성적 하나 때문에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 따로 저를 불러서 그때 때렸던 것은 미안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딱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까지만 하면 참 좋았을 텐데, 거기에 굳이 불필요한 조언까지 얹어주시더군요. 제가 시험지를 구긴 행위는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짓이었기에, 나중에 제가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잘못한 저를 바로잡으려고 훈육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에게 맞은 걸 감사해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글쎄요,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야 감사할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20년이 지났는데 선생님께 일방적으로 구타당했던 게 조금도 감사하지 않군요. 언제나 안정적인 상황을 지향하며, 새로운 분야에 몸을 던지는 일을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제가 자신 있는 분야에만 더욱 몰두하게 만들어주셨다는 점에서는 감사해야 할까요?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살다 보면 언젠간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날이 올 거라 생각했던 제가 순진하게 속았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았을 뿐입니다. 마침 독일어를 다시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지는 요즘, 우연이라도 선생님을 만나게 될 기회가 온다면 당시 당했던 충격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일에서 잠깐 유학 갔다가 돌아온 친구를 최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 에피소드가 번뜩 기억이 났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저는 안정을 지향하고, 우유부단한 편이라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걸 많이 두려워하고 싫어합니다. 이럴 때 저는 미련결정법을 사용하는데요. 지금 제 앞에 놓여있는 이 선택을 하지 않은 게 죽기 전에 생각했을 때 후회할 것 같다면,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우유부단한 제가 선택할 때 겪는 어려움을 줄여주었는데요. 이렇게 자신이 가지게 될 미련을 기반으로 선택하는 게 의외로 제게 딱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로를 선택하게 되면,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거나, 미래에 전당 잡히지 않게 해 줍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던 답답함, 한을 풀어주는 게 현재의 내게 큰 행복감을 준다는 걸 깨닫게 해 줍니다. 이 미련선택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인 [저는 하고싶은 것이 없는데요]의 URL을 공유하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독일에서 유학한 친구와 독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잠깐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지금 독일어를 안 배우면 나중에 죽음을 앞두고 제가 무척 후회할 것 같더군요. 저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도전하는 일을 무척 싫어하고, 원래 잘하던 일을 더욱 열심히 갈고닦는 걸 좋아합니다. 심지어 책을 사놓고 읽지 않으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진짜 읽을 책이 아니면 책도 잘 안 살 정도입니다. 이런 제가 며칠 동안 독일어 책을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독일어 책을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기초에 가까운 첫걸음으로 말이죠. 제가 선택한 책 제목은 안희철 씨가 지은 [나혼자 끝내는 독학 독일어 첫걸음]입니다. 독일어가 먼저 끝날지, 제가 먼저 수명을 다 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겉으로 보기엔 작은 도전으로 보이겠지만, 그리고 아마도 제가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지금 독일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혼자 끝내는 독학 독일어 첫걸음을 샀는데, 과연 나와 독일어 중에서 누가 먼저 끝날 것인가?


새로운 도전에 몸을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뭔가 움츠러들게 되고 작아지게 만들었던 트라우마를 이 독일어를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제 속에 남아있는 독일어에 대한 한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구타를 당한 일도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시간이 흘렀고, 독일어를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곳도 없는 데다, 독일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독일어를 혼자 공부해서 과거 제가 받았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면, 독일어를 떠올렸을 때 더 이상 당했던 구타가 생각나지 않게 될 정도라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까, 갑자기 독일어가 무척 배워보고 싶어 지더군요.


감정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중요한 원동력이지만, 금방 식기 마련입니다. 감정으로 시작한 일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이성이 해야 할 역할이죠. 감정이 불을 일으키는 불씨로 비유한다면, 이성은 강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은은하게 따스함이 지속되는 숯불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시작한 도전이 알고 보니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하여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책을 산 것은 돈 낭비이고, 독일어 공부를 한 건 시간낭비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과연 독일어를 공부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포기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했던 선택을 죽음을 앞두고 돌아보았을 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있었던 제 안에 있던 상처를 끄집어내어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 속에 도전을 무서워하는 모습,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꾸 움츠러드는 자아와 마주하여, 스스로 제가 가진 한계를 깰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비로소 저를 때린 선생님께 그때 저를 때려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를 신들린 듯 때리신 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과 죄의식에 빠져서 제게 사과하셨던 거라면,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을 진심으로 용서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사과만 하면 충분했을 텐데, 굳이 제게 불필요한 조언까지 덧붙인 건 어쩌면 혹시 선생님도 제게 별로 사과하고 싶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사과하라고 시켜서 억지로 한 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에 하나 그때 제게 억지로 사과하셨던 거라면, 이제 선생님께 정식으로 그때는 정말 미안했었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구타당할 때 선생님께 맞은 게 너무 아파서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뒤늦게 선생님으로부터 사과를 가장한 불필요한 조언을 들었을 때에도, 거듭 제가 저지른 실수를 진심으로 사죄드렸으니, 저는 굳이 선생님께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선생님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어렵다면, 엎드려 절 받기라도 좋으니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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