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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해에서부터 시작하는 사건사고

사과는 최대한 빨리 해야한다고 배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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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look.so/posts/1RtE4e2



- 글을 쓰게 된 목적 : 


alookso에서 코로나 19 때문에 받게 된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분노로 표출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원인은 나와 조금 달랐지만, 최근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처해 있는 답답한 상황을 놓고 엄청 분노했던 기억이 났다. 시간이 지나자 내가 화를 냈던 기억은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놓고 분노한 것일까. 정해진 시간 약속을 어기고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화가 난 것일까, 아니면 나 때문에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사자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놓고, 사과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리고 그 사과를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쩌면 상당히 운이 좋은 일이었고, 감사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놓고 사과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실수는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려고 애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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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준평론

작은 오해에서부터 시작하는 사건사고


심정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어서 식당에 들어가 진상을 부렸다는 진솔한 고백, 정말 잘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 코로나가 정말 원망스럽기도 할 것 같아요.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보는 건 역시 그 사람의 상황이 되었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말일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놓여있을 때, 화를 내지 않고 버티기란 쉽지 않았겠죠. 원래 모든 사건 사고는 작은 오해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저도 저의 최근 저질렀던 진상짓을 고백합니다. 이번 6월 어느 날, 저는 대학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작년 건강검진 때 위에 작은 혹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제가 스스로 병의 원인을 진단해봤을 때, 어떤 특정인과 겪었던 인간관계 스트레스 때문에 제 몸이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내시경으로 보다가 작은 용종은 다 제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용종은 일반 의원/병원 급에서 내시경으로 관찰만 할 수 있고,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위치라고 합니다. 위는 편의상 1번, 2번, 3번, 4번으로 분류하는데, 일반의원/병원 급에서 3번, 4번에 위치한 용종은 제거할 수 있는데, 1번, 2번의 용종은 관찰만 가능할 뿐, 종합병원에서나 제거할 수 있다고 하네요. 저도 아파보니 알게 된 거라, 이 정보가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원래 환자가 걸린 병은 환자가 가장 잘 알잖아요?


종합병원에 가서 용종을 관찰하느라 또다시 위 내시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글로 쓰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눈치 보면서 계속 휴가도 써야 하고, 무엇보다 전날 식사를 못 하는 게 상당히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검사 결과는 매년 위 내시경을 하면서 용종의 변화를 지켜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병원에 와서 용종의 변화를 지켜보는 시간이 되었는데요.


이 병원은 위 내시경 할 때, 환자의 보호자를 반드시 대동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작은 의원이나 병원은 그런 게 없는데, 아무래도 종합병원이다 보니 이런 규정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저는 서울에 혼자 살다 보니, 병원을 같이 가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을 내줄 사람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단순히 용종의 변화를 확인만 하면 끝날 일에 지방에 살고 계신 부모님을 모시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힘들게 겨우 보호자를 구했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제가 받아야 할 내시경 진료는 제때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앞사람을 진료하다가 제거해야 할 용종들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많이 밀린 것도 있었겠지만, 중간중간 얼마나 많이 지연될 것인지를 놓고 문의해도, 별다른 구체적인 대안 없이 계속 하염없이 기다리라고만 하는 안내가 화가 많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종합병원이 이 정도 시스템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 전날 식사를 못해서 상당히 예민한 상태에 놓인 것도 분노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1시간 동안 별다른 안내 없이 계속 기다렸고, 제 보호자로 와준 사람이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죠.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또다시 그냥 무작정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그냥 진료받는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에 대놓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호자는 반드시 데려오라고 강제하면서 이런 식으로 진료 시간을 무작정 배치하면 어떻게 하느냐, 평균적으로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음을 사전에 고지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문제를 놓고 한참을 따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렇게 화를 내가면서 따진 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적당히 차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복잡한 심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냥 참고 넘어갔어야 했나 싶은 마음도 들고, 환자가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누군가는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요. 그래도 제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은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나의 요청은 정당할는지는 몰라도, 환자가 미어터지는 상황에서 일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얼굴을 보고 따질 일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시스템을 바꿔달라고 충분히 좋게 얘기할 수 있었음에도 직접 따지지 않고 분노를 표출한 것 역시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있죠.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면 된다는 말, 정작 어른이 되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 될 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굳이 어린이들에게 사과를 가르치는 것일까요. 화를 낸 게 너무나도 죄송해서, 내시경 결과를 들으러 오는 날, 다시 내시경 센터에 들렀습니다. 마스크를 썼던 탓에 제가 누구인지 못 알아보셨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리니 저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화를 내서 정말 죄송했다고 말하면서 연신 머리 숙여 사죄를 드렸고, 간호사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다면서, 충분히 환자 입장에서 화내실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제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에 익숙하게 대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도 이런 일이 많이 있으셨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더욱 죄송하고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러운 제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뒤에 각자만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하는 상황까지 보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말 얼마나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인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시는 이런 후회할 행동, 여유 없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지요. 말씀해주셨던 꽤나 아픈 성장통이란 말, 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 같습니다. 솔직하게 마음을 나눠주신 경험을 통해 저 역시도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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