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꼰대의 변명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이젠 청바지를 사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 적이 있다.
그땐 ‘이젠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청바지 입을 일이 없을 거야’라는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불어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엄청 늙었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사뭇 어른이 된 것 같아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무지기수로 청바지를 많이 사 입었고 청바지는 군살 때문에 엉덩이가 네 개가 되어 fit이 안 예뻐서 안 입게 되는 옷이지 결코 나이 먹어서 못 입는 옷이 아니란 걸 아주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몸뚱이를 만들기 위해 비루하게 몸부림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난 참 어리석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고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치 로만 판단하는 '똥 멍청이'었다.
그런데, 게 다 가 난 그저 어리석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먹은 일은 당좡~ 롸잇나우~ 일사천리로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열정 부자였다. 양은냄비 같이 물 붓자마자 호로록 끓어버렸다 식어버리는 나의 열정은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나를 세웠고, 매번 무릎을 치는 후회와 돈으로는 환산이 안 되는 수업료가 나를 따라다니게 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기특하게도 씩씩하게 툭툭 털고 잘도 일어났다. 그 이유는 8할은 남들 보기 창피해서였고 나머지 2할이 넘치는 자기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졸업 후 회사를 다니다 통역대학원에 가겠다고 호기롭게 회사를 때려치웠지만 결국 실력 부족을 통탄하며, 통대는 떨어지고, 공부한 김에 궁여지책으로 교대원에 가서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난 이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는 선택지가 없어서 선택한 선생일이었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내 인생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아주 잘한 일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가끔 “라떼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후배들과의 대화시간에 차선이 최선이 될 수도 있다는 '구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아무튼 그러다가 해외파견교사로 또 직업을 바꾸고 나니 그동안 밥벌이를 해줬던 나의 일본어와는 '사요나라 쟈 마타~'하고 그 대신 일본어로 굳어진 나의 혓바닥에 철사라도 심어 번데기 발음과 'work'의 'r'발음을 완벽하게 구사하고파 몸서리 치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을까? 회사를 다니다 선생이 되겠다고 스물여덟에 교대원에 갈 때도 나는 내가 너무 늙었다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나이를 말이다. 나중에 서른이 훌쩍 넘어 한국어 대학원에 갈 때도 나는 너무 늦지 않았나 걱정했다. 하지만 인생에서 너무 늦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만약 그때 그 조그마한 용기를 내어 그 선택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난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무궁무진 도전정신 덕에 여전히 진로를 방황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물론 타이밍도 중요하다.
언제 어떻게 누굴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노선이 확 바뀌어 버리는 경험들에게서 이렇게들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인생은 용기인 것 같다. 결코 혼자서는 가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길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갔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할 때도 있고, 고집스럽게 또는 어리석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무엇을 선택하던 그건 개인의 몫이다. 그 선택에서 잘못 가면 또 어떤가, 우리에겐 유턴이라는 기가 맥힌 길이 있는데. 조금 돌아서 온들 안가 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소소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고 버릴게 하나 없는 경험들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게 해 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조금 용기를 내면 기가 막히게 날 돕는 사람들이 나타나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넘치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있는 애정 하는 친구, 후배들에게 “인생 별거 없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