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dignity에 관하여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의 의미를 배우다

by Mori

어린 시절 충주시 교현동에서 자라다가 서초구 방배동으로 초4 때 전학을 온 나는 타의에 의한 촌아이 다운 컬처쇼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나이키 신발이 없어서 이기도 했고 우리 집은 여느 친구들 집처럼 아파트가 아니어서 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열두 살 어린아이에겐 고향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어려웠을 테고, 공터 천지라 시골과 별반 다를 게 없던 80년대 강남이라지만 ‘서울’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주는 위화감이 나를 긴장시켰을 거란 생각이다. 지금도 전학 가던 날 내가 맸던 책가방이며 쉬는 시간에 나를 둘러싸고 반 친구들이 “너네 시골이 어쩌고 저쩌고”하며 묻던 질문에 자존심 세우며 ”거기 시골 아니거든”하고 째려보며 대답했던 꼬꼬마 시절의 내가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난 고향 충주에서 서초구 방배동으로 순간이동 후 나름 ‘걸 크러쉬’ 했던 생활을 접고 당분간은 조신한 흉내를 내며 답답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내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난 덕도 있지만 나의 4학년 때 담임선생님 공이 컸다. 선생님은 시골에서 전학 온 내가 혹시라도 위축될까 신경이 쓰이셨던지 나의 행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 너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내지는 “너 참 관찰력이 좋다”, 등등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난 그때부터 관찰력이 좋고, 설령 내 마음은 인정이 안 되더라도 착한 사람이 됐어야 했었다.


나중에 교사가 되고 보니 학생들의 사소한 행동에 칭찬을 하고 때론 진정성 있는 꾸지람을 주는 일은 섬세한 관찰이 없이는 없음을 깨달았다. 학생의 작은 행동에 너머의 가능성을 보고 칭찬을 하거나 행동의 의중을 읽는 일은 어쩌면 교사에겐 숙명 같은 숙제가 아닐까 한다.


교사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의 스승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고자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모교를 찾은 적이 있다. 후박나무가 있던 교정 뒷길과 밤에 표정이 변한다던 교정의 흉상을 돌아보고 지금도 유명한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학창 시절 까만 머리핀이 아니라 빨간 머리핀을 했다고 머리를 후려 맞았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 “미친놈 아니었냐”하고 비말과 거품을 물고 친구들에게 동조를 구했었다.


“맞아 미친놈들 천지였지”, “선생도 아니었어”,

“근데 그 선생 아직도 학교에 있는 거 알아?”,

“더 웃긴 건 그 선생 교무주임 됐던데”, “아 정말?”


왜 그런지 같은 사립재단의 여중고를 같이 나온 나와 내 친구들의 기억 속엔 좋은 교사의 모습보다는 치기 어리고 미성숙의 모습을 보여줬던 선생님들의 기억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학교에서 우리 마음속에 잊지 못할 큰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 당시 불법이었던 전교조에 가입하셨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셨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수업 중에 경찰관을 불러 교단에서 끌려 내려오셨던 선생님들을 보며 친구들이 펑펑 우니까 나도 덩달아 울어야 하나 반신반의하며 울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학교의 예의 없음과 무자비함에 화가 나는 일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에게서 신념을 갖고부끄럽지 않게 사는 의미를 배웠다.


가끔 정말 오랜만에 제자들이 군대를 갔다 오거나, 스승의 날이 되어 찾아오거나 하면 뜬금없이

그때 선생님께서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며 너무 고마웠다며 철든 얼굴로 말할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심코 한 그 말들이 너에게 힘이 되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애써 담담하게 대답한다.


나의 기억 속에 따뜻한 말들로 나를 지켜주셨던 선생님들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처럼 제자들의 기억 속에도 나의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구나.


선생을 시작하면서 내가 세운 몇 가지 ‘이런 선생이 되어보자’는 다짐들 중에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구체적인 칭찬을 많이 하고, 가능성을 찾아주고, 언제든 생각나는 믿을 만한 어른이 되자’는 소박한 바람을 적어놨었다. 누군가 온전히 나를 믿어주고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날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크게 엇나가지 않으니까 말이다.


존 반 다이크는 ‘가르침은 예술’이라고 했다.


사랑과 지혜와 감사를 배워나가서 사람이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 교감을 하며 서로 성장하는 일은 어떤 멋진 예술작품 보다도 가치가 있다.


성경에 나온 정의처럼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로잡게 하고, 옳게 되기 위해 훈련하고 훈련시키는 일. 그래서 한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선생의 할 일이 아닐까 한다. 하나하나의 정의를 곱씹어 보면서 나는 어떤 모습의 선생이어야 하는가, 난 과연 선생으로의 품위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나는 왜 가르치나를 또 고민해 본다.


동네에 있는 dignity 학교에서 운영하는 cafe, dignity학교는 시리아, 예멘 등 난민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요리와 기술교육 중심의 커리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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