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 씨의 중학교 졸업식

내 인생의 분모

by Mori

“응, 엄마”

“엄마 졸업식 28일이지?”, “졸업식 맞춰 한국에 꼭 갈게”

“아유 몰 와, 뭐 대단한 날이라고”

“아이고 어머니, 정말 중요한 날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갈 거야, 우리 끝나고 짜장면도 먹으러 가자, 졸업식은 짜장면이지”

“고맙다. 우리 딸”


해외파견 이후 거의 매일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오늘 뭘 했고 뭘 먹었으며 다른 식구들의 근황과 때론 요즘 엄마가 푹 빠져 있는 미스터 트롯의 '이찬원' 얘기로 길어지는 전화통화는 거의 한 시간 가량 계속된다. 집 앞 단지에 무슨 무슨 꽃이 피었고, 엄마 친구 영자 아줌마 얘기를 한참 하시 다가는 김칫거리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느라 오늘은 엉치뼈가 많이 아프다는 말엔 나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어쩌면 한국에 살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의지하며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엄마와의 전화통화는 공전궤도를 잃어버린 행성이 된 것 만 같은 나의 일상을 강한 중력으로 끓어 당겨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처럼 무한대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냥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은 엄마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작년 겨울, 나의 엄마 금자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셨다. 그리고 77세의 나이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셨다.

학교에 다니신 뒤로 엄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인강을 듣거나, 영어단어를 이면지에 빼곡하게 쓰시면서 영어공부를 하셨다. “오늘 뭐 했어?”라는 나의 질문에 거의 여지없이 “공부했지” 라며 수줍게 대답하시고는 늘 “돌아서면 다 까먹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나 싶다”라고 덧붙이셨지만 엄마의 성적표는 우리 남매들 그 누구보다 우수했다. 그리고 지난겨울 개근상과 경기도 교육감 표창을 대표로 수상하시면서 자랑스럽게 중학교를 졸업하셨다. 엄마의 졸업식날 언니와 핑크색 꽃다발을 사서 시청각실 가족석에 자리 잡았다. 부모님들의 졸업을 축하하러 온 자녀들과 손주들로 식 장안을 꽉 찼고, 우리 엄마처럼 자신의 인생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학업의 기회를 놓친 엄마의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로 훈훈했다. 많은 아줌마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사진을 찍고 계신 엄마는 중학교에서도 '왕언니'로 통하는 핵인싸였다.


“아니 이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양반이 그동안 공부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


언니들과 내가 쉬어 쉬엄하라며 건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중학생이 되어 근의 공식을 외워 방정식을 풀고 화학원소기호를 암기하는 엄마를 보며 그 성실함과 열정에 우리 형제들은 감탄을 했었다.


“딸, 오늘 엄마 음악시간에 맘마미아랑 캣츠에 대해서 배웠어. 예전에 사람들이 맘마미아가 뭐라고 얘기하면 그게 영화제목인가...... 뭔가 했는데 오늘 제대로 알았네. 나중에 한국 오면 엄마랑 캣츠 뮤지컬 보러 가자.”


언제나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나로 인해 기쁨과 슬픔을 이기지 못했던 나의 엄마, 많이 배우지 못했기에 살아가기에 바쁜 나날로 엄마의 젊은 날은 늘 고단했다. 하지만 그 정직한 노동과 성실함,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과 자녀들에게 보여줬던 무한한 사랑은 나에게 평생의 교훈이 되었다.

이건 아마도 진짜의 삶을 몸소 보여줬던 엄마의 인생을 통해 보고 배운, 이미 나에게 염색되어 쉽사리 물이 빠지지 않는 마음 깊이 뿌리내린 신앙 같은 것일 테다. 나는 엄마에게 지혜롭게 사는 게 뭔지, 진짜 용기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약자를 돌보고 겸손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담대해야 그 상황을 이길 수 있다는 지혜와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엄마의 70대 학창 시절이 더없이 감사하다.



예전엔 인생의 굴곡에서 배운 눈물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내가 가엽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미안해지는 걸 보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의 대부분은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서 온 긍정적이고 밝은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상처는 상처대로 나에게 깊이를 더하지만, 나를 구성하는 터 큰 분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성실한 그리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금자 씨'에게서 왔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도 엄마에게 배운 지혜를 무기로 담대하게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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