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소고

-인생은 거진 지겨워-

by Mori


네가 지겨워’, 여섯 글자 안에는 이상 사랑하지 않아’, ‘ 이제 이상 매력이 없어’,’ 이상 너에게 설레지 않아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굳이 기억을 더듬자면 해전 만났던 아주 거지발싸개만도 못한 놈에게 들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인간이라면 인간에게 해서는 되는 말임에도 사람들은 예의도 없이, 염치도 없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을 내뱉는다. 이런 말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역학관계는 분명 한쪽이 기울었을 거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쪽에서 듣게 마련이다.

파견된 지 삼 년째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자니 이 생활이 슬슬 지겹다. 매일매일 정수리로 내려 꽂히는 태양빛도 지겹고, 맑다가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퍼 붇는 스콜도 지겹다. 가장 지겨운 건 각자의 모국어가 섞여 만들어낸 이상한 영어 발음을 듣고 알아듣는 척하며 꾸역꾸역 살고 있는 나 인 것 같다. 넷 플릭스에 빠져 하루를 온종일 휴대폰에 눈을 고정하고 날려버린 날의 공허함과 자괴감은 이런 감정을 휘휘 저어 놓는다. 코트자락 펄럭이며 걷던 한국의 겨울이 몸서리나게 그립기도 하다. 처음에 가졌던 빳빳한 마음들이 무슨 돌부리에 넘어져 엎어 버린 것처럼 쉽게 주어 담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지겨워졌다고 보통의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모름지기 '너의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노래 가사처럼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라 배워왔기에 그 마음을 접고 지겨워졌다는 비겁한 말을 뱉고 이별을 고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그 상대가 아주 후진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파견 생활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살 결심을 한 사람들의 경우 아무 생각 없이 이주를 결심하지 않는다. 대단할 것 까진 없지만 나름의 목표와 조금은 발전된 나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여기까지 나를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파견교사들에게는 돌아갈 나라가 있다. 이 생활이 끝나면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내 나라가 있기에 훨씬 덜 절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처럼 내가 마음만 막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때로는 마음을 약하게 한다. 마치 대학에 적을 두고 반수, 삼수하는 수험생의 마음이랄까? 버틸 필요도 없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그 이유가 지겨움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학교 다니기는 지겨웠고 때로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지겨웠다. 살아가는 일은 아프리카든 어디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지겨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론은 나는 이 지겨움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이곳에서의 삶도 지겨움 뒤에 스스로 칭찬할 만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그게 무엇인지,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에 오늘도 견딜만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친절한 금자 씨의 중학교 졸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