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사람을 관찰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배움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감대가 이루어진 차후의 일이다. 그래서 적어도 학생들이 마음을 나누고픈 선생이 되고자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수업을 넘어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학생들을 더 살피게 된다. 그래서 선생이라는 직업에 제일 우선시되어야 하는 소양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교실 안에서 같은 것을 함께 배우고 가르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제 각각이다. 이제 겨우 14살인데, 고작 한국어를 배운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해서 손바닥에 ‘-에’와 ‘-에서’의 차이가 궁금하다며 투둥(히잡의 말레이어)을 휘날리며 수업 후에 뛰어와 질문하는 ‘응용력 갑’녀석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여전히 “어디에 가요?”라는 질문에 “밥 먹다”로 대답하는 ‘기본형 충실’ 형 녀석도 있다.
선생의 입장에선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예쁘지만, 여전히 맹한 눈으로 기본형 단어도 못 떠올리고 수업 시작하면 딴생각에 필통 정리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의 나는 후자 쪽에 더 가까웠으니까.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아 계획표세우다, 배고프면 라면 먹고 잠들었던, 무엇을 공부해야 성적이 잘 나오는지 아무 생각 없던, 성실의 아이콘으로 줄 창 개근만 했던 평범한 내가 선생이 되고 보니 이런 아이들이 지금 어떤 상태일지 한참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이 녀석들에게 한 번 더 가까이 가서 나름의 용기로 잘했다고 칭찬을 건네지만 이 녀석들의 반응은 늘 시든 상추처럼 시답잖다. 눈빛은 “약간 선생님 부담스럽네요”, “가급적 저를 무시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나의 시선도 길을 잃게 된다.
2학년 학생 중에 ‘Y’라는 아이가 있다.
한국어 반은 제2외국어 선택할 때 인기가 많아 거의 대부분 1 지망 아이들로 채워지기에 똘똘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학생이 어느 날 쫄래쫄래 나를 따라와서 “선생님, 저 정말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데, 한국어 반 인기가 너무 많아요, 저 좀 한국어 반에 꼭 넣어 주시면 안 돼요? 라며 특별한 부탁을 했다. 이 학생의 첫인상은 물에 젖은 새처럼 어딘가 불쌍해 보이고, 교정기를 끼고 있어 발음이 부정확하고, 도통 영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열심히 공부하는 거다”라고 약속하고 도장 찍고 카피하는 한국스타일 약속을 했더니 그제야 ‘베시시’ 웃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Y’는 정원 외로 한국어 반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말 그대로 ‘필통 정리’과 학생이었다. 교과교실로 이동해서 수업하는 한국어 시간에 책과 공책을 안 들고 오는 것은 기본이고, 친구 노트 한 장 찢어서 쓰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몰래 매점에서 공수해온 간식거리를 먹거나, 로맨스 소설을 읽다가 책을 뺏기거나 하기가 일수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보딩스쿨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시험에서 유일하게 낙제를 받거나 어떤 날은 수업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아파서 기숙사에 쉬러 갔다는 의심쩍은 대답을 듣곤 했다. 때론 한심하기도 하고 때론 잘 따라오지 못하는 ‘Y’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14살의 아이에겐 이게 자연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는 내 경험에 비춘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며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이날은 ‘우리동네에 _____이/가 있어요/없어요’를 배우는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색연필과 종이를 주고 내가 그린 우리 동네 지도를 샘플로 주고, 아이들이 자기 동네를 그려서 우리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장소명사를 활용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뭐예요?””이건 모스크예요” 내 지도엔 빠져있는 모스크를 모든 학생들이 그리고 있어 “아, 여긴 말레이시아지”를 깨닫고 있는데 ‘Y’의 우리 동네 지도가 눈길을 확 끌었다.이 녀석 그림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거였다. "아이고 신은 공평하시네, 아 너무 잘 그렸는데"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건네고 아이들에게 “이것 봐, 너무 잘 그렸죠?”하며 ‘Y’의 그림을 보여주자,여태 한 번도 본적 없는 환한 미소가 교정기를 넘어 ‘Y’의 얼굴에 번진다.
맞다. 모든 사람은 얼굴도, 재능도 다 다르게 만들어졌다. 그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친다 하여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음에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은 때론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Y’는 "지금 뭐해요?" 의 물음에 대답을 외면하는 '배시시'소녀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한국에서 온 선생님이 나름 너를 이해해 주고 위로를 건네었던 사람임을 기억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