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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Sep 20. 2023

뉴럴링크, 인간의 이기인가 진보인가.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영화 '매트릭스' 중 모피어스
You take the blue pill, 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you stay in Wonderland.
And I'll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영화 '매트릭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이 네오(키아누 리브스)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장면 中

<한글>
파란약을 고르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너는 일어나서 그저, 네가 원하는 걸 믿으며 살면 돼.
하지만, 네가 빨간약을 고르면 너는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남게 될거야.
그러면 내가 너에게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빗대어 표현)


오늘 아침 한 신문 기사를 읽고, 갑작스레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습니다. AI가 지배한 세상에서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격리되고, AI가 만들어준 허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보통의 우리가 살아가는 것처럼 직장 생활을 하고, 먹고, 자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세상이 아닌, 가짜 세상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AI와 싸워가기 위해 당당히 진실을 맞이하는 사람들, 영화 매트릭스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가상현실, AI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영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실제로 AI에 대한 발전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lon Musk, JOE PUGLIESE, GQ, December 12, 2015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지신 분이죠.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 링크'의 블로그에 23년 9월 19일 새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사상 최초로 인간을 대상으로 뇌에 칩을 이식하는 실험자를 모집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제목을 읽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수십 년 이후에나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23년 지금 대상자를 모집한다니요. 평소 우스갯소리로 '머리에 칩을 심을 수 있으면 심을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극구 거절하던 저였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서 조금 궁금한 감정이 떠오르기는 했습니다. 단순히 생각만 해도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기기들을 움직이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떠한 느낌일지. 상상의 나래가 자동으로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몇 분간의 상상 끝에 내린 결론은 같았습니다. 아, 나라면 못하겠다.


다만, 이번 임상 시험의 대상자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시험의 주요한 목적은 '질병, 장애로 인한 사지 마비 증상을 겪는 환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뇌의 전기적 신호를 기록, 해독하여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 키보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의미만 두고 본다면 너무나도 긍정적입니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분들이 사회적 활동, 업무 등을 수행하는 데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없애 그들이 느낄 수 있는 장벽을 허무는 것이죠. 이러한 의미에는 어떠한 사람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허나, 이것이 나중에 상용화된다는 상황을 가정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일례를 들어볼까요? 저번 달 '국내 기상장비에서 중국산 스파이 칩이 발견되었다.'라는 기사가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악성코드가 심어진 부품을 사용할 경우 데이터를 빼갈 뿐만 아니라, 주변 도청까지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추후 기상청에서는 하드웨어가 아닌 윈도우 OS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된 것이라는 정정 보도를 내기는 했지만, 해당 기사로 인해 모든 기관에서 중국산 부품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행하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뉴럴링크에서, 혹은 이와 비슷한 제품을 제공하는 타 기업에서 정보를 빼내고자 한다면 얼마든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연스레 주변의 정보를 취득하고 전송하며, 심지어 도청까지 하게 된다면 너무 무섭지 않나요? 어찌 보면 완벽한 빅브라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감시하는 빅브라더 말입니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는 빅브라더, 1984 Big brother is watching you poster



Animal Testing, The REPROCELL Blog

사실 지금의 뉴럴 링크도 완전히 윤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해당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1,500마리 이상의 동물이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제도 고기를 먹었으며, 다양한 의약품을 복용하는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은.) 그 방식이 윤리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축과 제약품 생산, 더 나은 삶을 위한 칩 이식은 확연히 성격이 다르니까요. 사지 마비, 신체적 불편을 겪고 있는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해하겠지만, 10년, 20년 이후에 일반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된다면 과연 같은 선상에 두고 볼 수 있을까요? 저도 인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며, 기술의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지만서도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결론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참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과연 인간의 진일보일까요. 혹은 오만의 극치일까요. 비행기를 만들어 삶을 편하게 만든 라이트 형제일지,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에 다가가다 떨어진 이카루스일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빨간 약을 선택해야 할지, 윤리성을 지키며 인간 그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 파란 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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