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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Oct 04. 2023

지방대생의 눈물

사회적 인식, 냉혹함

지방 : 서울 이외의 지역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수도권의 어느 대학을 나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지방'의 정의에 따르면 내가 다닌 대학교는 서울 내에 속해있지 않기에 지방 대학교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고등학생 때에는 당연스레 '인서울'할 줄 로만 알았고,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안일한 생각과 함께한 고등학교 생활의 결과는 결국 실패로 이어졌다.(엄밀히 따지면 실패라고 하기는 뭐 하다.) 다행히도 수도권 대학교 한 곳에 합격할 수 있었고, 나름의 정을 붙여 졸업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후 사회로 나와 맡은 바 하고 싶은 분야에 커리어를 쌓아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졸업한 곳이 좋은 대학교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나쁜 곳도 아니라는 생각도 줄곧 갖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곳이라 그런 것일까. 괜스레 같은 학교 출신인 분들을 보게 되면 잘 되었으면 하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최근 쇼츠/릴스를 보다 보면 가끔 우리 학교의 학생분들이 올린 영상, 학교와 관련된 영상이 뜨곤 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하고, 내가 입학할 때 보다 높아진 경쟁률과 점수를 보다 보면 그래도 학교와 학우분들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음을 느낀다. 학교가 기울어 가는 것보다야 잘 되는 것이 좋으니, 뿌듯하지는 않더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정도는 든다. 그날도 우연히 우리 학교를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입시생들을 위한 분석 영상과 마주쳤고, 무심코 댓글 창을 열어 봤다.


얼핏 보아도 수많은 분쟁이 있던 모양이다. 이 학교 정도면 괜찮다, 좋은 편이다라는 댓글 절반, 들어 본 적도 없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는 댓글 절반. 괜스레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내가 다닌 곳에 대한 인정을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욕을 들어야 할 정도의 수준인가에 대해 심히 안타까웠다. 그중 한 댓글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딱 한 문장이었지만, 마음속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할 정도로 바늘과 같은 말이었다.

"이 학교 다니는 애들은 반성해야 됨"

물론 나라고' 더 좋은 학교에 갔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반성보다는 후회라고 부른다. 그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마음을 후벼 팠다.




인생을 살아오며 반성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반성 1(타인) : 어릴 적 부모님께 혼나고 나서 반성하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나들과 싸우고 나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훈육이었으니 반성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이에게 반성하라는 말을 들은 건 이때가 마지막인 듯하다.

반성 2(혼자) : 스스로 반성한 경험도 있다. 군생활을 하며 후임들에게 너무 모진 말을 한 것이 아닐까 후회한 적이 있었다. 나의 잘못이었기에, 이때의 후회는 반성까지 이어졌다. 다른 이에게 너무 경직된 태도로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의문 : 조금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지 못한 것은 후회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반성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것도 비공개된 무명의 인스타 계정으로부터 말이다.


사실 SNS, 인터넷의 댓글로 상처받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기는 하다.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손가락을 놀리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에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듯, 의미가 없음을 알더라도, 말에는 힘이 있고, 악의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힘과 악의는 상처로 남곤 한다. 좋은 말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기만 해도 바쁜 세상에, 악담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참. 세상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넘쳐나는구나 느끼곤 한다.


물론 학벌에 의한 구분이 현실이라 함은 부정하지 않겠다. 학벌이 좋으면 통상적으로 학문에 대한 학습도, 이해도가 높다. 학창 시절에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직관적인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채용 시에도 좋은 학교가 선호되며, 같은 학교의 라인을 형성해 끌어당겨주고, 밀어주는 모습 또한 종종 보이곤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전통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Gattaca 포스터

영화 '가타카'에서는 유전자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우성 유전자를 가진 이들은 사회 요직에 진출할 수 있지만, 열성 유전자가 가득한 자연 출생아들은 사회의 벽에 가로막혀 이루고 싶은 꿈에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 출생아임에도 불구하고 우주 비행사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성공해 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치 학벌이 가타카의 유전자같이 느껴진다. 사회적 계급과도 같다 해야 할까. 당연히 우성 유전자,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은 좋은 퍼포먼스를 낼 확률이 높다. 허나 그것은 확률일 뿐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리하자면,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현상은 이해하나, 사회적 인식, 장치로써 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제한하는 장치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만큼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잔존해 있음이 자명하다. 오히려 인터넷 속의 익명 세상에서는 더더욱 심화된 것 같기도 하다. 왜일까. 다른 이를 무시하며 얻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재하고 있는 현상이다.




나보다 좋은 학벌을 가진 이를 보고 벽을 느끼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강점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사회적 인식이 수많은 지방대생들의 의지를 꺾지 않고, 응원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표지 사진 : Kat J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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