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팀 옮길게요.
팀장이 되기 전, 나는 내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조직의 사수와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은 신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그 당시에도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대부분의 기획 혹은 보고와 같은 업무를 그가 담당하고 있었으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때부터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친절하지 않다기보다는 조금 불쾌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는 업무에 대해 미리 알려주기보다는 나 스스로 부딪히며 배워가게 뒀는데, 이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업체에 보낸 메일을 읽고, 내가 실수한 내용이 있다면 이를 적어 개인적으로 회신하곤 했는데, 항상 퇴근 후 이메일을 보내놓는 바람에,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이를 읽으며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왜 이런 내용들을 미리 말해주지 않고 이미 저지른 후 말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말을 붙일 수도 없이 쌀쌀맞았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출근해서 이메일을 여는 게 고역이었다.
알고 보니, 내 사수는 일잘러로 회사에서도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는 매우 야심 찼다.
그리고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모두가 그가 하는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항상 자기가 빛나고 싶어 했다. 무엇이든 주요한 이슈가 발생하면, 그는 그의 손을 담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항상 본인은 의사 결정하는 포지션에 있어야 하고, 후배들은 그가 결정해 온 의견에 따라 나머지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그리고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보고할 거리를 만들곤 했다.
내 일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는 보고서를 만들고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무엇인가 말도 안 되는 대안을 만들어오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담당자가 모르게 몰래 그런 일을 진행했다는 것은, 본인도 무엇인가 켕기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나는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다.
가끔은 너무 솔직했던 순간들이 밤마다 나를 찾아와 괴롭히지만,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자기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남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가는 삶. 모든 세상을 본인 중심으로 보는 유아적 사고. 그리고 챙김을 핑계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위선적인 삶.
그런 그가 팀장이 됐다. 이제는 그가 그동안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해 왔던 일들에 대해 빗장이 풀어졌다. 이제 그는 그의 팀에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을 맘대로 할 수 있다.
난 이 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