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5. 다시, 서울

여름의 서울로 향하다 - 서울에서 살 곳 알아보기

by JS

# 2025. 05. 17.


다시 서울로 가보겠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내가 서울에서 살 방을 1학기 중간고사 치기 전부터 알아봤으니까. 나는 여름의 서울이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여름의 서울 살이는 어떨까. 지난번 겨울의 서울 살이가 특히나 아쉬웠던 건, 서울의 살벌한 겨울 날씨 때문에 좀처럼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던 탓이 가장 컸다. 실제로도 그때 한강철교 쪽으로 출사를 다녀왔다가 영하 십몇 도의 기온에 정말 숨질뻔한 기억이 난다. 서울의 것들을 눈으로 보고, 듣고, 즐겨야 하는데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진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생각보다 이번에는 서울에 방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지난번에는 너무 쉽게 방을 구했었다. 피터팬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연세대를 검색하고는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에 적힌 번호로 무작정 문자를 넣었더니, 모든 일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됐었다. 보증금이 없는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했고, 무엇보다 그 형이 보내준 사진에서 보이는 방 컨디션이 너무 괜찮았다. 더욱이 서울에 올라가서 룸 투어를 직접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다른 방을 더 알아볼 것도 없이, 종강하자마자 그 방으로 올라가서는 방세를 바로 붙였다. 일이 순탄하게 풀린 건 좋았지만 다른 집들이랑 비교하고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이 흠이었다.


지난 서울 살이는 두 명의 형들과 함께했던 만큼, 이번에는 서울에서 혼자 지내보리라고 생각했다. 여러 플랫폼을 활용해 이곳저곳 살 곳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플랫폼에 내놓아진 방의 컨디션들이 너무 좋지 못했다. 대부분의 30~40만 원대의 고시텔, 원룸텔들은 내가 아는 '고시원'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개인 화장실이 없는 건 예사였고, 한 평도 안 되어 보이는 방에 침대, 책상과 옷장을 욱여넣은 곳도 있었다. 사진으로 보이는 방들의 모습이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을 찾는 데에 주로 이용했던 플랫폼은 '고방'이었다. 고방의 검색 필터에 개인 화장실, 에어컨 등 조건들을 걸어놓고 관악, 신림 등지의 마음에 들었던 방들을 쭉 정리해 보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들은 못해도 달에 65만 원은 줘야 하는 듯해 보였다. 엄마께 방 값을 대강 얼마나 지원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마음에 들었던 방들에 하나씩 컨택해 보았다. 웬걸, 이번에는 빈 방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알아본 방 중에는 달에 95만 원씩 하는 원룸텔이 있었는데, 비싼 월세에도 불구하고 방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대로변에 있어 창밖 시야가 트여있고 채광이 말도 안 되게 좋았으며, 방에 건조기와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이 모조리 구비되어 있었다. 이전에 이 원룸텔에 연락했을 때는 내가 원하던 방이 있었는데, 비싼 금액 때문에 망설이던 사이 그 방이 나가고 만 것이었다. 차순위 원룸텔들에도 연락을 돌리니 그새 방이 다 나가고 없다거나, 기숙사 퇴사일 한참 이후에야 방이 나온다고 했다.


방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기어코 서울로 룸 투어를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룸 투어가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울산 HD FC 덕분이었다. 마침 5월 17일에 춘천에서 원정 경기가 있었는데, 이미 서울을 들러 춘천으로 가기로 하고 표를 다 예매해 둔 참이었다. 다만 미리 예매해 둔 표는 서울에 체류할 걸 생각하지 않고 끊어둔 터라 기차 시간대를 옮겨야만 했다. 급하게 표를 바꾸게 된 탓에 새벽 시간대 아니면 빈자리가 없어, 포항에서 출발하는 첫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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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역 첫 차는 정보처리기능사 실기 치러 갈 때 이후로 처음 탄다. 4시 반 기상은 언제나 고역이다.


내가 이 날 보기로 한 방은 총 네 군데였다. ① 벨라스테이, ② 픽셀하우스 신정역점, ③ 포레스트레지던스 신림점, ④ 픽셀하우스 신대방삼거리역점. 방문 일정을 잡기 전 후보지들을 아예 새로 리스트업 하면서 관악구뿐만 아니라 양천구와 서초, 동작, 금천 등지의 지점들도 함께 찾는 바람에 뜬금없는 지점명들이 조금 등장했다. 서울대 근처의 지점들에 국한하다 보니 도저히 좋은 매물들이 없어서, 아예 통학시간은 고려하지 않고 이곳저곳 모두 선택지에 넣기로 했다. 그래도 서울은 교통이 편리하니까.


그런데 픽셀하우스 신정역점과 전날 통화하면서 룸 투어 신청서를 써달라고 하셨는데, 내가 신청서를 픽셀하우스 플친 상담 종료시간 이후에 넣는 바람에 담당자께 전달이 안 되었다. 서울에 오전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터라 신정동 쪽에 먼저 가서 9시부터 방을 보려고 했는데, 플친 상담이 시작되는 시간이 10시인 터라 신청서를 담당자분이 보실 리가 없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픽셀하우스 신림점에서 8시쯤 연락이 와 빈 방이 급히 생겼다며 원하시면 방을 보러 오라고 하셨다. 하여 신정역점은 포기하고 아예 신림동을 쭉 둘러본 다음 대방동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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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보러 간 방은 벨라스테이였다. 위에서 언급한 비싼 방이 바로 이곳이다. 좋은 방은 가격대가 월 90만 원대를 호가하고 보증금 역시 30만 원으로 다른 업체보다 비싼 편이다. 물론 방 가격 자체는 75만 원부터 시작하긴 하는데, 그렇게 저렴한 타입의 방들은 진작 다 나가고 없고, 내가 예약 가능한 방 중 하나가 이날 보러 간 정가 월 95만 원짜리 방이었다.


벨라스테이의 첫인상은 '돈 값 한다'였다. 입구부터 정말 깔끔했다. 사실 여기가 처음 둘러본 방이다 보니 다른 원룸텔들의 공용공간도 다 이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정도 퀄리티의 공용공간을 가진 원룸텔은 이날 둘러본 네 곳의 원룸텔 중 여기밖에 없었다. 그러나 첫인상이 무색하게도 방이 너무 아쉬웠다. 우선 가격이 월 95만 원인 것치고 방이 생각보다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다. 방의 모습 자체는 사진으로 본 것과 거의 똑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방이 비좁게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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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테이 2층 현관의 모습과 이날 둘러본 309호의 모습.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뷰였다. 원래 들어가려고 했던, 뷰 좋은 313호가 나가버리는 탓에 이 방을 보러 오게 된 터라 창밖 풍경이 좋지 않을 걸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두 방의 뷰가 차이 날 줄 몰랐다. 아무리 실내가 좋다고 한들 다른 건물이 창문 코앞에 붙은 뷰를 두 달 동안 보고 살 수는 없었다. 채광을 포기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이니 사실 여기에서 나의 방 선택지는 하나 지워진 셈이었다. 수납 공간이나 책상 바로 앞에 붙은 모니터 등 아쉬운 부분은 더 있었지만 여기서 줄인다.


주변 풍경을 살피고 사진을 연신 찍으며 밖으로 나왔다. 서울대입구로 뻗은 대로변이 시원스러웠다. 주변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상가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2호선을 타고 신림역으로 향하기 위해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건너갔다. 이번엔 픽셀하우스 신림점을 둘러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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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하우스 신림점의 방 모습.


신림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픽셀하우스 신림점이 위치하고 있었다. 픽셀하우스는 나름대로 이름 있는 원룸텔 체인이다. 픽셀하우스 지점들의 특징이라면 깔끔하고 필요한 것만 잘 갖춰져 있는 방 인테리어를 꼽을 수 있겠다. 군더더기 없는 내부와 화장실 모습, 세탁기와 전자레인지, 에어컨 등의 시설까지 내 마음에 쏙 들어서, 방을 알아볼 때 거진 픽셀하우스 지점들을 중심으로 검색한 게 사실이다.


내가 여기서 둘러본 방은 이전에 이곳 사장님과 컨택했을 때 사진으로 보여주신 방과 같은 방이었다. 픽셀하우스의 기본적인 인테리어를 잘 지키고 있으면서도, 나쁘지 않은 넓이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뷰가 가장 아쉬웠다. 건물 뒤쪽에 위치한 방이라, 반대편 건물이 사선으로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감점 사유는 또 있었다. 이 방을 둘러본 후 위층의 방을 하나 더 보러 올라갈 때 공용 주방을 둘러보았는데, 벨라스테이와는 달리 시설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층과 층 사이의 공간에 창고만 한 크기의 주방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원래부터 주방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방 천장이 굉장히 낮고 공간 역시 좁았다. 여기서는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는 것 외에 다양한 요리를 해 먹기는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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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하우스 신림점의 주방 모습. 공용 주방을 마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러한 단점들만 빼면 이곳 신림점이 사실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신림이라 등하교하기 편리하고, 특히 주변에 먹거리들이 정말 많았다. 각종 패스트푸드점이 종류별로 늘어서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들도 즐비했다. 특히 근처에 하천이 있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러닝 등의 운동을 하기 좋아 보였다. 장단점이 확실한 방인 만큼, 보고 느낀 것들을 메모장에다 적어놓고 다음 룸 투어 시간까지 카페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신림역 1번 출구 앞 스타벅스에서 말차 라떼 한 잔을 시키고 늘어져 있을 때 즈음, 주환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디냐고 묻는 말에 신림이라고 대답했더니, 네가 거기 왜 있냐는 반응이었다. 심심해서 그냥 전화를 건 모양이었는데, 주환이도 서울에 올라와 여친을 기다리는 타이밍이어서 시간이 뜨는 와중이었다. 고속터미널에서 신림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며 주환이가 바로 신림역으로 온 덕에 갑작스러운 만남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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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오랜만에 만난 주환이었다.


스벅에서 좀 떠들다가 옷 얘기가 나와 옷 가게들이 있는 건물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 그래도 나 역시 버뮤다 팬츠를 하나 사겠노라 하던 참이었다. 스파 브랜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탑텐에 들어가 옷을 구경했다. 주환이는 티셔츠를 두 장 샀다. 나는 버뮤다 팬츠가 괜찮아 보였지만 야외에서 충동적인 소비는 하지 않기로 다짐한 탓에 굳이 사지는 않았다. 서울에 온 목적이 이게 아니기도 하고, 잔고 이슈도 좀 있기도 하고.


주환이는 내 다음 목적지인 포레스트레지던스 신림점까지 같이 가주었다. 하천을 가로질러 큰길 따라 쭉 걸었는데, 가면 갈수록 상가들이 사라지며 주거단지로 접어드는 느낌이었다. 왕복 8차선은 되어 보이는 큰길 옆이라 이번 방은 소음이 상당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환이를 보내주고 이곳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룸 투어를 시작했다.


룸 투어를 다니면서 가장 의외였던 곳이 바로 이곳 포레스트레지던스 신림점이었다. 고방에서 보기에는 시설이 꽤 괜찮은데도 가격이 무척이나 저렴해서, 실제로 보면 공용 공간이 좀 별로라던가 방이 보기보다 훨씬 좁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곳 사장님께 컨택을 드렸을 때 문자 메시지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이곳에 대한 인식이 더욱 좋지 않았었다. 그러나 걱정과 불신이 무색하게도 생각보다 방이 너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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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레지던스 신림점의 모습. 위는 A타입, 아래는 B타입.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채광과 뷰는 지금까지 둘러본 방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도로변에 위치한 방이야 시야가 당연히 트여있을 테니 도로 반대편에 위치한 방이 뷰가 좋을지가 관건인데, 웬걸 창밖을 보니 아기자기한 동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전의 두 원룸텔과 다르게 다른 건물이 바로 앞에 붙어있지 않아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보였고, 이날 날씨가 좋아서인지 인근 야산 나무들의 푸릇한 색감과 근처 빌라들의 붉은색 벽돌이 어우러져 동네 풍경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원래 채광과 뷰 때문에 도로변의 방을 줄기차게 선호해 왔던 나인데, 이 풍경을 보자마자 여기를 계약하게 된다면 도로 반대편의 방을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의 퀄리티 역시 다른 업체들과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오히려 몇몇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둘러본 방들보다 훨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B타입의 방에는 싱크대가 붙어있었고, 화장실의 넓이가 다른 곳들보다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B타입의 방이 다른 곳들보다 훨씬 넓은 듯하게 느껴져 좋았다. A타입이 65만 원, B타입이 70만 원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만한 방이 또 없었다. 모든 부분을 둘러보고 나니 룸 투어 전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곳 포레스트레지던스를 계약하는 쪽으로 마음이 크게 기울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바로 계약하겠다고 하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내가 오늘 둘러본 방이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바로 위에 있는 세 장의 사진에 나온 방을 가장 계약하고 싶었는데, 사장님께서 방의 위치나 구조는 달라질 수 있다고 하셨다. 게다가 계약하는 시점에서 내가 원하는 B타입이 모두 나가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둘째로는 또다시 공용공간 문제를 들 수 있겠다. 공용 주방이 픽셀하우스 신림점의 그것과 같이 층 사이의 작은 공간에 위치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픽셀하우스 신림점보다는 컨디션이 나아 보였는데, 이곳의 건조기는 픽셀하우스 신림점과 달리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 짜치는 포인트였다.


이러한 점들을 감수하더라도 사장님과의 소통 문제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룸 투어를 하기 전, 컨택 단계에서부터 내가 남긴 문자에 사장님이 답장하신 내용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가 구체적인 거주 기간을 언급하며 공실 현황을 문의드렸는데, '현재는 예약이 가능하다'는 조금은 부족한 답신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예약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씀드리니 미리 준비된 멘트를 복붙하고는 어떤 타입을 예약하고 싶은지를 물으시지도 않고 예약금 20만 원을 붙이면 된다고 답하셨다. 입실 가능한 룸 타입이나 방 사진 정도는 미리 좀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룸 타입은 A타입이며 도로변에 위치한다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고, 방 사진은 이미 방문한 적 있는 포레스트레지던스의 블로그 링크를 보내주시는 걸로 갈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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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의 방은 보여주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차라리 말씀이라도 하시지.


사장님께 가장 실망했던 포인트는 룸 투어 중에 발생했다. 제일 먼저 둘러봤던 방이 2층에 위치한 A타입의 방이었는데,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니 웬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화장실 불도 켜져 있길래 사람이 아직 있는 방인 줄 알고 깜짝 놀라 후다닥 문을 닫았는데, 사장님께서는 빈 방이 맞다고 하셨다. 내가 오늘 룸 투어를 하는 걸 분명히 알고 계셨을 텐데, 정리도 되지 않은 방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퇴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이라 그런 것 같은데, 그러면 적어도 이 방이 정리가 좀 덜 되었다고 나에게 양해는 구해야 했을 것이다. 방에 나뒹굴고 있는 이불과 드라이기와 잡동사니들, 그리고 태연한 사장님의 태도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계약 의사를 표시하고 먼 길 올라온 손님에게 너무하지 않은가.


계약을 하지 않기에는 방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저렴했지만, 그렇다고 덜컥 계약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안 좋은 포인트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복잡한 심경을 뒤로하고 밥을 먹으러 신림역 쪽으로 다시 향했다. 나중에도 소개하겠지만 나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갈 때마다 맥도날드를 가 빅맥 세트를 챙겨 먹는 습관이 있다. 신림역 주변에 음식점들은 많았지만 달리 땡기는 음식도 없고, 결정장애도 도질 것 같아 원래 습관대로 맥도날드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는 신림선과 7호선을 타고 대방동으로 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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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선은 처음 타보는데 신기했다. 지명도 생소한 신대방삼거리에 오게 될 줄이야.


스포를 하자면, 이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픽셀하우스 신대방삼거리역점이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되었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앞서 둘러본 세 곳의 업체의 장점을 모두 합쳐놓은 듯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대방삼거리역에 내려 3번 출구를 나서니 픽셀하우스 신대방삼거리역점 건물이 버스 정류장과 함께 눈앞에 바로 보였다. 첫 번째 장점이었다. 극한의 역세권과 3초컷 버스 정류장. 지난해 겨울 6호선 증산역에서 내려 엄청나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 집으로 향했던 기억과 대조되며 룸 투어를 시작하기 전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날 둘러본 방은 A타입, 월 72만 원의 방 하나였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용 주방이 있어 그곳을 먼저 둘러봤다. 이곳 공용 주방은 벨라스테이의 것과 포레스트레지던스의 것을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주방 시설은 꽤 괜찮았고 건조기가 두 대와 정수기가 갖춰져 있었다. 사실 주방 시설보다도 나는 주방의 위치에 크게 만족했다. 픽셀하우스 신림점과 포레스트레지던스처럼 층과 층 사이에 위치한 것이 아닌, 벨라스테이처럼 층 내부에 주방이 위치하고 있어서 굳이 바깥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주방 이용이 가능했다. 주방에 위치한 건조기를 이용하기 위해 무거운 빨랫감을 들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거니와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간단하게 집밥을 차려먹기에 너무도 좋아 보였다. 요게 두 번째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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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방삼거리역 3번 출구와 대림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그리고 픽셀하우스 입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방 내부는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픽셀하우스의 방 구조 그대로였다. 다양한 수납공간과 함께 구비되어 있는 세탁기와 전자레인지, 냉장고와 책걸상. 특유의 깔끔한 방 디자인을 잘 따르고 있었다. 방 자체는 픽셀하우스 템플릿 그대로이니 칭찬할 거리가 딱히 없었다. 다만 픽셀하우스 신림점과의 차이점은 방의 관리 상태에 있었다. 신림점을 둘러볼 때 수납장을 하나하나 열어봤는데, 약간 이상한 냄새가 조금 났었던 반면, 신대방삼거리역점은 악취가 전무했다. 마지막으로 이곳 역시 뷰를 살펴봐야 하는데, 오늘 본 방은 도로 반대편으로 창이 난 방이었다. 아쉽게도 빌라 비슷한 건물이 가로막고 있어 풍경과 채광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장님께 내가 계약하게 될 방은 어느 방향이냐고 여쭤보니, 도로변 쪽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날 직접 도로변 쪽 뷰를 보진 못했지만, 고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풍경이 나쁘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도 가산점.


다른 이유보다도 내가 이 지점을 꼽은 건 지점 자체의 관리, 운영 상태 자체가 우수했고 매니저분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룸 투어 시작을 위해 사장님께 전화를 걸고 2층 현관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도어락을 직접 원격으로 열어주셨다. 다른 지점들 룸 투어를 할 때는 사장님들께서 현관 비번을 직접 알려주셨던지라 이곳은 시설 보안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향기. 신발장 위쪽에 전동 탈취제를 달아놓고 복도에는 디퓨저를 꽂아놓아 온 복도에 좋은 향기가 퍼져있었다. 픽셀하우스 신림점이나 포레스트레지던스를 방문했을 때는 향기고 자시고 복도에서 딱히 느껴지는 포인트가 없었던 반면 여기는 룸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곳 사장님은 다른 원룸텔 사장님들과는 많이 비교되어 보였다. 픽셀하우스 신대방삼거리역점의 유일한 걱정거리가 1층에 고깃집이 있다는 점이어서, 2층에 거주하게 될 경우 냄새가 올라오지 않느냐고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원래 우리가 이 건물에 먼저 들어왔는데 나중에 1층에 식당이 들어오려고 해서, 건물주께서 픽셀하우스가 먼저 들어왔으니 식당 냄새가 절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식당에 요구하셔서 위층으로 냄새가 올라올 일은 없다'며 썰까지 줄줄 풀어주셨다.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 안심도 되는 한편 이곳 어필을 잘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아 호감이었다. 다른 지점 사장님들께는 받지 못했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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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하우스 신대방삼거리역점의 방 모습.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방과는 살짝 다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룸 투어가 이로서 끝났다. 신대방삼거리역점으로 마음이 확 기울어버린 탓에 이걸 바로 계약해, 말아 하다가 여기만 한 곳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바로 계약하겠다고 카톡을 드렸다. 여러모로 고생스러운 일정이었지만, 방을 사진으로만 보는 것과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느낌이 많이 달랐던 만큼 시간 내서 와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중간고사 때부터 장장 두 달 정도를 시달렸던 방 구하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니 속이 후련했다.


룸 투어 일정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30분 정도 일찍 동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남는 시간 동안 화장실을 다녀오고 핸드폰을 충전했다. 이놈의 폰 배터리는 이제 반나절을 못 버티더라. 시간이 되어 춘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이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러 적진으로 출발했다.


EP 06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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