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적진으로 적진으로

울산 팬이 포항으로 가다, 본격적인 직관의 시작

by JS

# 공교롭게도


고등학교 3학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입시를 향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대학에 가보려 생기부를 다듬고, 자소서를 쓰고, 수시 원서를 접수하고.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하루가 그새 저물고 나면 그다음 날이 밝아오고, 다시 하루가 지나가고. 수시 접수가 모두 끝난 나는 누구보다 병든 삶을 살고 있었다. 연초 수능 공부의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을 시작으로 점점 수능 공부가 뒤처져가더니, 이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수시러'가 되고 만 것이다. 남목 거리의 PC방을 전전하던 사이 나도 모르게 받아 든 수능 수험표는 여러 의미로 공교로웠다.


현대고등학교. 내 수험표에 적혀있는 학교는 현대고등학교였다. 울산 현대 축구단이 창단된 이후로 수많은 프로 선수들을 배출한 학교다. 수능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마치 대학생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를 거치는 듯 수능을 보는 나로서는, 그들이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인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을 거쳐간다는 것이 나에게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수능 날 아침, 수능을 포기한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사진 한 장의 여유.


대학에 붙었다. 동생의 졸업식이 있었던, 22년도의 12월 15일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를 나와 졸업식에 참석하려 집에 잠시 들어갔을 때,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준수야, 포스텍 합격자 발표 떴으니까 확인해 봐."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건, 추가합격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대학이니 추합 기간까지 잘 버티자 하는 다짐이었다. 마침 집에 도착했을 때 내 폰 배터리가 없었던 참이었기 때문에, 충전기가 있는 거실 한켠에 서서 핸드폰으로 대충 합격자 조회 사이트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축하합니다!'


이제는 흐려져가는 기억 속에서 대학에 합격한 그때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참 눈물겨운 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학년 때부터 시작된 과중한 양의 공부와, 3등급 하나에 웃고 4등급 하나에 씁쓸함을 삼키고 5등급 하나에 눈물 흘렸던 때가 떠오른다. 교내 공론장 플랫폼을 만들겠답시고, 기숙사에 몰래 반입한 노트북으로 무작정 코딩했던 그날 새벽이 떠오른다. 교실 밖 신발장 위에 노트북 하나를 올려놓고 머리를 싸매며 자소서를 쓰고, 기하 성적이 B가 떠버려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기하탐구대회 준비에 밤을 새우고, 입학사정관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 생기부 한 자 한 자를 꾹꾹 눌러 담아 썼던 3학년은 매일매일이 고역이었다.




??? : 톨게이트를 지나 포항으로 오는데, 마음이 뻥 뚫리더라고요


그래서였을까, 내가 합격한 대학이 '포항'공과대학교였음을 인지한 것은 좀 나중의 일이었다. 아마도 고3의 겨울방학을 누구보다 잉여롭게 보내던 찰나였을 것이다. 나는 울산 현대의 모기업인 현대중공업 산하의 현대청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포항 스틸러스의 모기업인 포스코 산하의 포항공과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울산'에서 '포항'으로의 이적. 둘 간의 라이벌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울산 팬의 입장에서 보면, 이만한 배신자가 또 없다.


울산에 대한 충성심이 솟구친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적진의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낼 차례가 왔다는 것, 서포팅에 대한 가장 강한 동기부여가 아닐 수 없다.



# 본격적인 직관의 시작


시간적 제약과 금전적 제약이 따랐던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직관을 갈 수 있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23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직관을 가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우리 학교가 2월 중순에 개강하는 미친 학교이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이러한 미친 개강 일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친 학업량 때문이었다. 여기에 신입생이기 때문에 생기는 여러 술자리들과 약속들이 겹쳐 축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23시즌 초반 울산은 미친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개막전 현대가 더비에서 김정훈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역전골을 꽂아 넣은 신인 루빅손을 시작으로 정통 스트라이커 주민규와 최고의 드리블러 바코가 만나는 상대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울산은 개막전 이후 6연승을 달렸다. 다음 상대는 K리그 신입생 대전. 이 경기를 이기게 된다면 울산은 개막전 이후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 경기가 마침 시험이 끝난 직후였으므로, 무려 4년 만의 직관을 나의 첫 원정 경기로 장식할 수 있었다.


경기장 가는 길. 무슨 연유로 에비앙이 내 좌석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저 때 돈이 많았나?


이 날 아마도 시험이 끝난 김에 본가에 들렀다가 대전으로 향했을 것이다. 울산역부터 보이는 유니폼 행렬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년도만 생각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 날 대학교 앞 거리에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보이는 것도 그 당시엔 신기한 광경이었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K리그는 어느새 전국 방방곡곡으로 원정 팬들을 실어 나를 만큼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대전에 와본 적이 있었던가? 축구로 대전을 처음 들르게 될 줄이야. 대전은 무려 지하철이 있는 도시였다. 울산 도심은 지반이 약해 지하철을 놓을 수 없어 이동수단으로 주로 고래를 타곤 했는데, 이곳 대전은 그럴 필요 없이 대전역에서 지하철만 타면 월드컵경기장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노은도매시장을 지나 바라본 대전월드컵경기장은 웅장했다. 어색하게 원정석 쪽으로 넘어가 표를 챙기고, 4년 만에 경기장 안에 들어서니 감회가 남달랐다. 분명 나도 한 응원하던 녀석이었는데, 고작 4년이 뭐라고 이렇게 어색하고, 새삼스럽고, 그리고 설레는가.



대전이란 장소 역시 참 공교롭다. 대전은 포항공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적진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전에는 카이스트가 위치하고 있다. 포카전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전통적인 라이벌리는 언뜻 보면 울산과 포항의 라이벌리와도 맞닿아있는 듯하다. 울산의 상대팀으로서, 포항공대의 라이벌 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서 그 경기는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그러나 인생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울산은 이른 시간에 골을 얻어맞았다. 이진현이었다. 박스 오른쪽에서 완벽하게 왼발로 감은 슛은 조현우도 막지 못했다. 이진현의 골이 들어가자 쟁쟁하게 귓가에 울려퍼지는, 평생에 처음 들어보는 상대팀 홈 팬들의 함성소리를 잊지 못한다. 울산 홈경기에서 원정 팀이 골을 넣었을 때의 환호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울산 홈경기에서 골을 먹히면, 주변은 온통 조용한데 먼발치 원정석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가 홈 팬들 귓가에 스치운다. 이 함성 소리는 홈 팬들의 탄식 소리와 섞여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진현이 이제는 우리 팀 선수라는 사실 마저 공교롭다.


그러나 원정 팬으로서 듣는 홈 팬들의 함성소리는, 마치 메아리 소리같이 귓가에 한동안 맴돈다. 삼면에서 내지르는 함성소리는 마치 적군이 삼면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공격을 퍼붓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홈에서와 같이 '아쉽다'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실제 전쟁인 것처럼, 적군의 함성 소리를 묻고 이 포위망에서 탈출하려 우리는 더 크게 소리를 내지른다. 전의를 다지지 않을 수 없다.


루빅손은 9분 만에 만회골을 넣었다. 반대 전환한 패스를 떨궈놓고 때린 왼발 킥이 이창근을 뚫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4년 만에 느껴보는 이 전율. 인고의 시간 끝에 만들어낸 결실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만큼 달콤하다. 이제는 7연승을 위해 한 골이 더 필요한 상황.


그러나 이 말이 무색하게도 전반 추가시간 이현식에게 추가골을 얻어맞고야 말았고, 후반전동안 고군분투했으나 이를 끝으로 경기는 끝이 나고 만다. 패배였다. 그들은 승격 팀의 위치에서 디펜딩 챔피언을 무너뜨렸다. 그들은 승전가로 울산의 시그니처인 '잘 가세요'를 불렀고, 우리를 향해 서슴없이 걸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저날 빵 못 사갔다.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신고식을 호되게 당한 첫 원정이었다. 저 날 분이 안 풀려 대전역에서 포항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폭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만 원어치 밥을 시켜놓고는 정작 배불러서 다 먹지도 못했다. 결국 첫 원정을 패배로 시작하고야 말았다. 사실 6연승이니 7연승이니 하는 일종의 '타이틀' 얘기가 나오니 내심 불안한 느낌은 있었다. 축구라는 것이 기록에 집착하는 순간 승리도, 타이틀도 모두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7연승에 대한 부담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멀리 보면 이번 패배로 예방 주사를 맞은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패배는 패배였고, 귀가 아프도록 들려오는 상대의 승전보 소리만큼이나 마음이 쓰라렸다.



# 포항에서의 첫 원정


포항 이야기를 해 놓고 포항 원정을 빼놓으면 섭하다. 첫 포항 원정은 7월 8일 스틸야드에서의 경기였다. 당시는 방학 기간 중이어서, 학기가 끝나고 요양이 필요했던 나는 울산에 내려가 있었다. 본가에 있는 김에 동네에 친한 친구 한 명과 원정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당시 여건이 좀 좋지 못했다. 출발할 당시에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고, 원정 버스를 타러 문수구장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포항 원정은 근거리 원정이라 28인승 버스가 배정되지 않는 탓에, 45인승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이동해야 했다.


스틸야드는 확실히 희한한 곳에 있었다. 형산강을 건너 포스코 공장 쪽으로 나있는 큰길로 들어가다가 포스코 본사 건물이 보이면 다 온 것이다. 스틸야드로 들어가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가 있는데, 홈석으로 가려면 포스코 본사 건물 쪽 입구로, 원정석은 포스코 홍보관 쪽 입구로 가야 한다. 이 경기가 있기 몇 개월 전 새내기 새로배움터를 진행할 때 포스코 견학이 있었는데, 그때 버스를 타고 포스코 홍보관 근처를 지나다가 경기장 비스무리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설마 저게 스틸야드인가 했는데, 그게 맞았다. 저기에 경기장이 있다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정말이지 산속 희한한 부지에 지어놓았더라.


포항 원정 이모저모. 비가 좀 오던 날이었다.


포항 원정길은 비장하다.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야 한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지'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택도 없다. 처용전사는 이미 안티콜 두 곡을 이번 경기를 위해서 내놓았다. 마치 울산이 하나의 종교인 것처럼, 그들을 위한 광신도로서 목을 갈아 넣어야 한다. 배에서부터 끌어올린 숨이 단전을 지나 엄청난 소리와 함께 목 밖으로 내뱉어질 때 비로소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의 응원이 머릿속을 울리고 그 어떠한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때, 상대를 향해 엄청난 야유를 퍼붓고 우리 선수들을 위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응원가를 부를 때, 그들은 마침내 결과를 내놓는다.


설영우의 페이크 동작 이후 올린 크로스가 깔끔하게 주민규의 발을 타고 골망을 가른다. 엄청난 환호 소리. 살면서 그 정도로 미쳐볼 일은 축구밖엔 없으리라. 같이 온 친구와 부둥켜안고 난리를 치고, 한이 맺힌 듯 상대에게 안티콜을 퍼붓고 나면, 머리 한 구석이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잡념도 사라져 버리고, 머릿속은 열광 혹은 분노로 가득 찬다. 이것이 내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축구장에서 나는 이토록 순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을 잘 찾아보면 나와 그 친구가 보인다.


조현우를 앞세워 포항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고 한 골 리드를 지킨 울산은 동해안 더비를 승리로 가져왔다. 포항에서의 지난 한 학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떨쳐버리듯 '잘 있어요'를 한 맺혀 불렀다. 나와 친구는 경기 동안 큰 생수 한 통을 다 비워냈고, 맛이 간 목소리로 부르는 '잘 있어요'는, 부른다기보다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4월 22일 재수학원 친구를 데리고 홈에서 지켜봤던 동해안 더비의 아쉬움은 완벽하게 씻어낸 채 적진의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카니발은 더할 나위 없었다.


이 경기를 회고하면서 나에게 다시 생각해 볼 것이 있었다. 이제는 포항에도 발자취를 남기는 나에게 있어서, 동해안 더비란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하는 것에 나는 답해야 했다. 동해안 더비와 현대가 더비로 대표되는 울산의 라이벌리에서 유독, 동해안 더비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지난 시간들보다 그들에 대한 적의와 함께 알 수 없는 끈끈함이 더해진 연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EP 03에서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 대전 하나 시티즌 공식 인스타그램, 울산 HD FC 홈페이지, FAPhotos 및 본인 촬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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