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녀양육의 영적 역동성을 회복하라’의 34 챕터 제목이다. “강한 펀치를 받아넘기는 유머를 가지라.”
마음이 침착하지 못해서일까? 혼자 있을 때에도, 은설이랑 있을 땐 더더욱 신경이 곤두서고 뭔가 하려고 하면 떨어뜨리고 놓치고 꼬이기 일쑤인 요즘이다.
대체로 내가 화나는 상황은 이렇다. 얼마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지도 못했는데, 혹은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벌써 하원 시간이 코앞이다. 은설이 하원 시키고 집에 오니 집안이 그지 꼴이다. 설거지거리며 분리수거들 너저분한 거며, 발에 치이는 작은 장난감들 무더기들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등원시키고 청소도 안 했으니, 늘 청소를 하지 않으니 당연한 상황인데도 난 그것을 못 받아들인다.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화장실이 못마땅하여 씻다 청소를 한다. 자잘한 물건들이 너무 많다. 청소하기 용이하지 않아서 화가 난다. 다 바깥에 내놓고 청소를 하려고 내리다가 우당탕탕 변기 위의 선반이 흔들리며 다 쏟아진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아주려고 보니 마땅히 둘 곳이 없다. 어디에 둬도 쓰레기 더미처럼 보인다. 식탁 위를 정리해보니 또 잔짐들 투성이다. 제자리 없이 여기 있다가 저기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 항상 물건 찾을 때마다 헤맨다. 설거지를 하려니 배수구에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다. 뭐 해먹일까 냉장고를 여니, 계속 외면했던 조리 불가 상태의 식재료들이 그대로 있다. 뭐 이런 식이다. 매일 이런 일이 일어남에도 나는 정리가 잘 안 된다. 매 순간 무능력함을 느낀다.
며칠 전에도 부글부글 끓는 마음에 괴물처럼 포효하듯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은설이는 대번에 불안한지 다가와서 안긴다. 그러고는 “엄마 이제 진정됐어요?” 하고 묻는다. “숨 크게 쉬었어요?” 점검한다. 그 말을 듣고는 숨을 크게 복부로 들이쉬고 입으로 쉬이이- 하며 내쉰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포기가 된다. 내가 너무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어 하는구나. 모든 게 잘 안된다고 생각하니 더 힘들게 느끼는구나. 큰 소리로 외친다. “아~ 나는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화가 나는 건, 그만큼 잘하고 싶은데 안 돼서 좌절감이 커서 그렇구나.” 은설이는 이런 내가 웃긴가 보다. “엄마 누구한테 말하는 거예요?” 하고 묻는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면 은설이 곁으로 가서 안아준다. “엄마 이제 좀 나아졌어. 아까 화내서 미안해. 엄마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날까?” 사과인지 자책인지 혼잣말인지 구분되지 않는 말들을 털어놓는다.
어제도 자꾸 화가 나서 부들부들하다가 울었다. 싱크대에 기대어 주저앉아서 울었다. 뭐 이리 일상생활이 힘든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전업주부이면서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지저분한 게 싫으면 더 청소하면 될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괴로워할 일이야? 스스로 몰아세운다. 도둑놈이 따로 없다. 뭐 하나 하지도 않으면서 멀끔한, 정갈한 집안을 기대하다니. 은설이가 우는 날 보더니 울먹이며 “엄마가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날려고 그래.” 한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한다. “아니야. 은설아. 엄마. 금방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있으면 이제 안 울 수 있어.” 폭풍이 지나갔다. 은설이한테 애써 웃으며 말을 걸어본다. 괜찮다고. 은설이도 금방 배시시 웃는다.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웃어넘길 수 있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
한 번은, 내가 직장 생활하던 때, 새벽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서웠다. 욕설이 오고 가고 던지는 소리가 났다. 발걸음 소리도 들리는 것 보니 엄마 아빠가 서서 서로 몸을 밀치며 싸우는 소리 같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뿐이었다. 다 컸는데, 성인인데, 개입해서 말릴 수 있는데, 아니면 더 화를 내며 멈추게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출근하면서 같이 출근하는 DTS 동기이자 직장동료였던 언니에게 말했더니 언니는 웃는다. 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심각하게 얘기했는데, 언니는 아버님 아직도 그러시냐며 웃어넘긴다. ‘한나 너도 그냥 울고만 있었어?’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 마냥 묻는다. 그런데 그게 서운하지 않았다. 이해받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언니의 태도로 “별일 아니야. 괜찮아” 하는 위로를 받았다. 진짜 별일 아닐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래도 별일 아니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괜찮을 것 같다. 당장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아프긴 해도, 어차피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시간이 흐르니까 괜찮은 것 같았다. 언니의 그 태도에 마음이 놓이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은설이가 하원 하자마자 화장실 가고 싶은지 묻는다. 유치원에서 쉬 마렵다는 말을 부끄럽다고 안 하고 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 친구가 괴롭혔어?’라고 묻는다.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한다. 그게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불안하니까 계속 체크하게 된다. 모르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 아이에게 은설이가 계속 당하기만 하니까, 다른 아이들도 보고 은설이를 괴롭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년엔 그 아이와 은설이를 다른 반으로 배정을 해주신다고 가정했을 경우, 남은 2월까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은설이가 괴롭힘 당하는 게 익숙해지고 체념하면 어쩌지,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사그라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가 예전에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혀서, 이렇게 벌을 받는 건가 하는 자책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해학을 즐길 수 있을까? 유머로 지나갈 힘을 얻어낼 수 있을까?
화를 폭발하다가 웃긴 표정으로 상황을 연출한다거나, 화나는 그 에너지로 막춤을 춘다는 건 해볼 만하다 싶다. 가끔씩 그랬던 것 같다. 미친년처럼 보이긴 하지만, 은설이에게 “얘야,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단다. 이 상황을 즐겨보자꾸나.”하고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스타그램에 팔로우한 일러스트 작가님이 있는데, 그분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상당히 이런 유머가 풍부해서 신비로워보이기까지 하다. 어머님은 현재 치매로 치료를 받는 중이시다. 추천해본다. 나중에 다들 한 번씩 구경해보셨으면. “펀자이씨툰” 엄유진, 엄마는 소설가 우애령이다.
2020.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