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잃은 것 같다.
여기서 더 가다가는 또...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은 구질구질해 보인다. 순식간에 집안 곳곳 쌓인 뒤죽박죽 물건들이 나에게 존재감을 발산한다.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다. 남편을 원망하고 싶고 은설이가 붙어있으려 하는 것이 숨 막힌다. 심호흡은 일시적일 뿐이다. 평화를 되찾고 싶다. 약을 먹고 잠잠해지길 바라고 싶다. ...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맨날 밤을 새운 것도 아닌데. ... 하긴 지난주도 힘들었다. 연휴가 끼어서 그런 것도 같다. 남편이랑 붙어있는 시간이 많으면, 청소를 했다거나 요리를 한 게 아니라면, 나는 의미 없다고 느낀다.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느낀다. 생리주기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럴만하다. 또 이 고비를 넘기면 평온한 며칠이 찾아올 것이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방학이 앞으로 2주 하고도 이틀 더 남아있다. 그게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집은 엉망인데. 은설이 자는 중에는 정리하고 싶지 않다. 은설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윽박지르고 감정을 쏟아내는 내가 보이니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 경험상 예측한다. 내가 못 보는 것이 있을까. 내가 못 보는 것이 있을까. 그래서 더 부정적으로 예상하는 걸까. ... 그런 거라면 좋겠다.
2021.1.3.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댔다가 그냥 집으로 왔다.
병원 가서 약을 타려고 주차장에 차를 댔다가 코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먼지가 너무 많아서 지저분해 보여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와야지. 깨끗하게 먼지 다 떼어내고.
악을 쓰며 울어댔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맘껏 욕을 지껄여도 괜찮다. 종이랑 펜을 챙겨 올걸 하다가 어차피 쓰고 싶어도 못 쓸 상황이었을 거다. 녹음을 할까 하다가, 아무런 기록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지나치는 바깥 풍경처럼 내 뱉어내는 말들도 지나쳤으면 하는 바람에서 , 그냥 말았다.
가슴에 돌덩이가 턱 하니 얹혀서 끄억끄억 울음을 삼키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은 자꾸 흘렀다. 나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뭐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데. 나도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숨 쉬고 싶을 뿐인데. 내 인생에서는 유한나라는 몸 안에서는 그게 결코 쉽지가 않다.
잘해보고 싶었다. 잘 될 줄 알았다. 약 끊는 것. 잘 해내고 싶었다. 좋아 보였으니까. 나에게도 좋은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애써보았다.
2021.1.4.
결국은.
결국은 한 알 남은, 다 먹고 통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어제 확인해보니 한 알이 남아있던 항우울제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결국은 이렇게 될 일이었다. 자꾸 나에게 불만을 표하는 은설이를 어르고 달랠 능력이 내게는 없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알았다. 나는 지금 아이를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명목으로 화를 내는 것도 아닌, 그저 아이에게 내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삐쳐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힝, 엄마는 자꾸 화만 내고. 엄마는 자꾸 화만 내고.”
이 말을 계속하는 것이 내게는 도발처럼 들렸다.
“그래서, 지금 화를 내달라는 거야? 왜 계속 그 얘기를 하는데!”
곁에 붙어 서서 쉴 새 없이 불만을 표현하는 아이를 나는 견뎌낼 재간이 없다. 분명 방금 전까지 평화로웠는데 왜 또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자리를 떠 버리니 아이는 불안이 두려움이 되어서, 화를 내는 엄마가 무서워도,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이 엄마밖에 없으니, 엄마를 졸졸 따라오면서,
“엄마 어디 가요? 왜요?”
하며 확인하려 든다.
“진짜 너 조용히 안 해? 또 울기만 해 봐.”
아이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지만 또 멀리 도망가지도 못한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두 손으로, 그 작고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자동적으로 똑 부러지게 말을 뱉는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미안해요. 이제 엄마 화나지 않게 할게요.”
“아 듣기 싫어. 저리 가.”
하고 뱉어내니 오도 가도 못하고 울지도 울음을 멈추지도 못하는 아이가 아까보다 조금 더 크게 보인다. 침대에 자리 잡고는
“이리 와.” 하니
“네” 하면서 온다.
곁에 앉게 하고 안아주려 하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운다. 다시 화를 내려는 충동을 억제하기가 어렵다.
“제발 아빠한테 가!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운다. 왜 알 것 같은지 모르겠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품에서 손발을 흔들면서 고개도 흔들고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한다. 그 자지러지는 장면을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이다. 나는 나의 뺨을 세차게 갈겼다. 그러고는 아빠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한다. 이건. 이건. 마치 인질로 잡힌 사람이 구조요청을 하는 장면 아닌가.
고집을 부려서 병원을 가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워낸 장본인인 내가 또 남편한테 싫은 소리는 듣기 싫은데, 내가 달래주지도 않고 남편에게 전화마저 걸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어떻게 그 두려움을 다룰 것인가 싶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나 보다. 음성메시지라도 남길 것인지 물으니 그러겠다 한다. 아까는 나와 신경전을 벌이듯 아빠에게 다 이를 거라고 하던 아이는 고작 ‘아빠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는 말 뿐이다. 그 말을 하던 눈동자는 두려움에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구하러 와주세요.’는 아니었을까.
약을 먹어야겠다. 더는 미루고 버티면 안 되겠다. 먹지 뭐. 그게 뭐라고 안 먹으려고 버텼을까. 정수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다시 한번 뺨을 때린다. 약을 먹고 가만히 양 손을 움켜쥐고 분노도 삼켜본다. 이 분노는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은설이에게. 남편에게. 나에게. 아빠에게. 엄마에게. 그냥 나라는 인생에게. 뒤에서 아이가 물어온다.
“엄마 왜 거기 가만히 있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불안하고 무서운 아이의 목소리는 신기하리만치 침착하다.
화장실에 가려하니 아이는 다시 무서워진다. 덩달아 쉬가 마렵다고 한다. 볼일 보는 것을 도와주면서 화장실 거울로 나를 본다. 저건 어떤 얼굴인가. 낯설고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아이에게 잠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었다. 다 닫으면 분명 또 무서워할 것이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다. 성에 찰 때까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때린 것에 대해서 몸에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돼버렸다. 둔탁한 소리에 밖에서 서성이는 아이가 물어온다.
“엄마 뭐해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그리고 약간 상기된 얼굴로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세수를 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그 눈빛은 독기가 가득했다. 아직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용서할 수가 없다. 죽일 듯 노려본다.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 다짐한다.
다시 침대로 와도 자꾸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이가 덩달아 울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자꾸 불안해하길래 말해주었다.
“은설아. 엄마가 미안해. 은설이가 잘못한 게 아니고. 엄마가 잘못한 거야. 자꾸 화 내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내일 병원 갈게. 병원 가서 약 먹을게. 그럼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못 견딜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을 가겠다고 다짐이 선다. 어리석기도 하지. 다시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기를 욕망하지 말아야지. 나는 시궁창에서 우러러보는 하늘로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해. 저 바깥세상은 내가 맛봐서는 안 되는 곳이야. 하고 다짐한다.
20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