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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웅 Nov 17. 2018

앤써니 루이스: 발언의 자유

2015년 10월 8일 

오늘 염규호 선생님과 논의한 책은 앤써니 루이스의 <Freedom: For the thought that we hate>였다. 오레곤에 오자마자 선생님으로부터 선물인지 숙제인지 모를 책을 받아들었는데,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이라 틈틈이 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가 완전 당했다. 대박이다. 만약 어떤 초인적 저술가가 미국 수정헌법1조를 둘러싼 모든 논란을 가장 간략하게, 그러나 요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리하기로 한다면 바로 이 책이 될 것이다.  


앤써니 루이스는 미국 최초의 연방대법원 출입기자였다. 이른바 법조기자의 원조다.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탄 경력을 보면 누구나 능력있는 기자임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저그런 법조기자가 아니었다. 첫 번째 퓰리처 경력으로 니먼 장학금을 받아 하버드 법대에 1년간 다니는 동안, 루이스는 (1) <하버드 로 리뷰>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법원은 이 논문을 Baker v. Carr 라는 역사적 판결에 인용하기도 한다), (2) 로스쿨 학생이 몇 년에 들을 강의를 단 번에 들었으며 (이때 하트와 웩슬러의 Federal Courts and the Federal System이란 전설적 강의도 함께 듣는다), 그러면서 (3) 하버드 교수들의 입소문을 타고 프랑크푸르터 대법관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염규호 선생님께서 전하는 말을 듣노라면 그는 절대 ‘그냥 기자’가 아니었다. 기자이며 <기드온의 트럼펫(Gideon’s Trumpet)>와 <법을 만들지 말라(Make No Law)>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라서가 아니다. 법조기자는 루이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단다. 그는 옆방에 연방대법원 판사를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후배 기자에게 기사를 구술할 수 있었던 기자였다. 


책의 전반부는 미국 수정헌법1조가 법조문이라기보다 일종의 ‘입법권고’ 취급을 받았던 초창기부터, 선동법과 방첩법 시대의 주요 사례를 거쳐서 <뉴욕타임즈 대 설리번> 그리고<브란덴부르그> 판결로 이어지는 역사를 다룬다. 이렇게 보면 그저그런 개론서처럼 들리겠지만, 천만에 말씀. 그의 서술은 수정헌법1조를 둘러싼 연방대법원 판례에 대한 요약이나 정리, 해석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루이스는 매디슨이 실현하려고 했던 이상을 직접 보고 증거하는 자이다. 그는 홈즈-브렌다이즈-브레넌을 관통하는 원리로서 매디슨이 Report on the Virginia Resolutions에 예지적으로 제시했던 권리(권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권리라고 명시된 바로 그 이상한 권리), 즉 “공적 인물과 정책을 자유롭게 검토할 권리”가 미국 정치체제의 핵심 원리로 실현되는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이 ‘언론의 특권’을 다룬 6장에 있다. 리버럴 중의 리버럴이며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로 30년을 넘게 지낸 그가 언론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순 아닐까? 엄밀하게 말해서 앤써니 루이스는 취재원 은닉권 등 언론의 특권을 부정한다기보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중이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정보 접근권’을 공중과 함께 누리면 충분하고 보는 입장이다. 언론의 취재권한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방패법’ 등 법적 보호를 유지한다고 해서 좋을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를 받은 개인이 (정부나 다른 권력체가 아니라!) 민사소송 등을 통해 법적으로 구제받을 여지가 제한될 것이라 본다. 


무엇보다 그는 언론인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좋은 기사를 쓰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그렇지 않나!) 언론이 취재활동에 법의 보호를 받지 않고 심지어 제재를 받을 것을 예상하더라도 전문적 판단에 따라 취재해서 쓰는 것이 기자의 참된 도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DC 항소법원 타텔 법관이 2005년 제시한 ‘언론인의 한정된 권리’를 인용할 때, 그의 방점은 ‘언론인에 대한 면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폭로가 초래하는 해악과 그것을 통해 공중이 얻을 이익을 형량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루이스가 말년에 부시 행정부의 행정권력 남용에 대해 비판적이고 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그가 2000년대 이후 Bush v. Gore 판결과 Citizens United v. Federal Elections Commission 판결 등 법원의 결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 역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는 언론의 특권을 제한적으로 보았을지언정 언론의 권력 비판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또한 권력 비판을 실천하는 것을 소홀히 한 적도 없다. 


2014년 미주리 법대는 로리뷰 한권을 통째로 앤써니 루이스 특집호로 편집해서 출판했다.이  학술지에 실린 논문 중에 예일 로스쿨에서 가르치며 잡지 편집장을 지낸 캐플란의 글이 통찰을 제공한다. 앤써니 루이스가 하버드 법대 로스쿨 방문기자 시절에 들었던 하트와 웩슬러의 Federal Courts and the Federal System 강의는 법과정론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캐플란의 주장에 따르면, 루이스 특유의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판결이 갖는 법률형성적 권능에 대한 인정, 정치적 제도로서의 사법부, 그리고 공중의 신뢰에 의존하는 법원 등과 같은 생각이 바로 이 강의에서 온 것이다. (1) 일단 과연 정말 그랬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2) 만약 그렇다면 법과정론자인 루이스가 아닌 실증주의나 자연법론자인 루이스였다면 뭐가 달라졌을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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