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Eric Heinze (2016). Hate speech and democratic citizenship. Oxford University Press.
미국 예외주의 비판
증오발언 규제에 대한 찬반론을 읽다 보면, 이른바 (가) ‘미국 예외주의 논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1조와 표현자유 판례법으로 확립한 전통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인권협약을 따르는 규제적 전통과 역사적으로 다른 맥락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예외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사한 주장으로 (나)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나 나찌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적 역사를 공유한 국가들은 ‘소수자 보호적 규제’를 채택했다는 해석적 관찰을 제시한 논지가 있다. 덧붙여 (다) 미국의 수정헌법1조 전통은 평등권에 비해 자유권을 과도하게 강조한다느니, (라) 미국 판례에는 독일 기본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최상위 개념이 없다느니 하는 견해가 있다.
서로 갈래는 다르지만 이는 모두 미국과 유럽의 표현의 자유의 보장을 둘러싼 법리적 접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논지들이다. 이는 법적 질서의 역사적, 문화적 결정론을 전제로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법은 사회적 규범일 뿐이라는 법실증주의적 전제를 공유하며), 미묘하게도 법-다수결주의적인 양상을 보인다. 즉 비록 명확하게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수정헌법1조 전통은 국제적으로 예외이기에 무시할만하다는 암시를 흘린다.
반론이나 변명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예일 법대 학장인 로버트 포스트가 <증오발언의 내용과 맥락>에서 몰나르와 대담을 통해 밝힌 훌륭한 반박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반박은 어쩐지 무시 받고 만다. 증오발언 규제론자 중에는 편리하게도 증오발언 규제반대론을 ‘미국적이다’, ‘역사적 성찰이 없다’, ‘자유지상주의적이다’라고 후려치는 비난으로 이론적 논변을 대신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국의 법학자 하인즈가 등장한다. 그는 유럽의 증오발언 규제론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결정론과 문화적 규범을 따르는 논지들을 하나씩 격파한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5장과 6장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함정이다 ㅠㅠ) 하인즈는 법의 타당성은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무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배경만으로 타당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거나 제한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혹은 소수집단 존엄성을 보장하거나 말거나 할 이유가 있으면, 바로 그 이유에 대해 논해야지 다른 논지는 부차적일 뿐이다.
하인즈는 존엄성 논변에 기초한 증오발언 규제론이 ‘결과론적 논변(consequentialist arguments)’을 채택할 수 없을 것이고 한다. 증오발언 규제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벌판에 끝까지 남아 싸울 수 있는 논지는 ‘의무론적 논변(deontological arguments)’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증오발언 규제찬성론 중에서는 제레미 왈드론의 ‘정치적 미학논변’과 스티븐 하이만의 ‘존엄성주의 논변’이 남는다. 규제반대론 중에서 로버트 포스트와 도날드 드워킨 등이 남게 된다.
하인즈는 이 모두를 하나씩 반박하거나 보완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이론을 제시한다. ‘민주적 시민성에 근거한 공론에 대한 관점규제 금지론’이다. 이름이 약간 과도하게 들리지만, 내용은 실제로 미국 수정헌법1조 판례법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미국 법학자들의 표현의 자유이론을 정제한 것이다. 하인즈의 이론은 핵심은 하버마스의 <사실과 규범>과 포스트 <헌법적 영역>의 주장을 이론적 자원으로 삼고 있다. 하인즈 이론을 소개하기 전에 그의 결과론적 논변에 대한 반론을 보자.
결과론적 논변들
당연히 증오발언 규제론자는 결과론적 논변을 좋아한다. 증오발언이 해악을 초래하기에 규제해야 한다는 식이다. 문제는 해악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은 (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적 위협일 수도 있고, (나) 대인적 평판의 훼손일 수 있고, (다)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낳기도 한다. 증오발언 규제론자는 더 많은 종류의 해악이 있다고 한다. (라) 집단적 소외감을 유발할 수 있거나, (마) 집단적 평판의 하락을 초래하거나, (바) 소수자의 위협감을 낳거나, (사) 해악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논지도 더 한다. (아) 홀로코스트 부정과 같은 역사적 사실의 부정도 ‘해악’으로 볼 수 있다면, 여기에 포함할 수 있겠다.
미국의 수정헌법1조는 (가)부터 (다)까지 결과를 초래하는 발언을 당연히 규제한다. 공적 사안에 대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발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어디에서도 (가) 싸우자는 말 (fighting words), (나) 명예훼손 (defamation), (다) 직장이나 조직 내 평등권 위반은 당연히 처벌대상이다. 수정헌법1조 판례법의 원칙들(doctrines)도 실은 결과론적 논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까지는 증오발언 규제론자와 다툼이 없다. 다툼은 (라) 이하의 해악은 물론 (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의 부정’과 같은 발언 행위조차 규제하려는 데서 시작한다.
하인즈의 결과론적 규제론에 대한 반론은 세세하고 구체적이지만, 그 반론을 뒷받침하는 전제는 결국 한 가지이다. 그는 인과성 입증을 문제 삼는다. 증오발언 규제론에서 인과성 입증은 해악의 구체성 입증과 규제효과의 입증 등 두 과정에 걸쳐있다. 요컨대, 증오발언 규제론은 특정한 내용을 포함한 발언이 (따라서 오직 그 발언으로 인해서) 구체적 해악을 초래한다는 인과성을 입증할 책임을 진다. 또한 증오발언을 처벌하는 규제를 도입하면 증오발언은 물론 그로 인한 해악효과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거증책임도 있다. 하인즈는 증오발언 규제론자가 이 두 과정에 대한 입증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한 전례가 없으며, 실은 둘 중 하나라도 확인된 경우가 없음을 지적한다. 단지 일화적이거나, 역사해석적이거나, 수사적인 예시만 있을 뿐이다.
하인즈는 결과론적 논변을 따르는 증오발언 규제론은 변죽만 울릴 뿐 증오발언 규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본다. 증오발언 규제론자는 결국 ‘증오발언이 개인적, 대인적, 집단적 해악을 유발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결과론적 논지가 아닌 ‘증오발언 그 자체가 악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가치에 반한다’는 의무론적 논지로 미끌어져 들어가게 된다. 유럽인권조약이나 각 국가의 헌법에 따른 판례법의 요지는 결국 인간 존엄성 논변으로 돌아가는 데, 이는 규제찬성론의 결과론적 논변의 파산을 증거한다.
하인즈의 ‘민주적 시민성’ 이론
자유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자유’와 ‘민주’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와 같은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는 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제도적이거나 이념적 장치를 갖추었으며, 충돌을 통해 습득한 지혜로 제도를 보완하고 이념을 정련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이행기의 국가는 흔히 이념적으로는 물론 제도적으로도 이 충돌에 대처하지 못해 자빠질 지경이다.
자유주의적 권리와 민주적 시민성 간의 충돌은 최고의 지성도 헷갈려 하는 문제이다. 드워킨이 대표적이다. 그는 권리의 우선성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론가이지만, <극단적 발언>에 소개된 그의 증오발언 규제반대론을 보면 민주주의 과정론을 중심으로 다른 권리중심적 규제론을 물리친다. 롤즈가 <정의론>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로 전환한 이유 역시 이 충돌의 문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유와 민주 중 하나를 중심에 놓고 다른 하나를 보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언제나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이 방법을 하인즈는 성공적으로 전개한다. 하인즈는 ‘민주적 시민성(democratic citizenship)’을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하인즈에 따르면, 국가가 발언과 언론을 규제하기 원할 경우 법적으로 (가) 내용기반 발언규제, (나) 내용 중립적 발언규제, 그리고 (다) 관점차별적 규제를 채택할 수 있는데, 민주적 국가는 (다)를 원리적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공적 사안에 대한 관점차별적 규제(viewpoint discriminatory regulation)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즉,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의 공적 담론을 규제하는 정부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왜 공적 담론에 대해서 관점차별적 규제를 법적으로 도입하는 나라는 왜 민주적 정부가 아닌 걸까?
하버마스, 포스트, 그리고 드워킨이 위의 질문에 이미 답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답변의 요점은 같다. 입법을 민주적 의지형성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는 오직 공적 사안에 대한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여론형성을 방해받지 않는 조건에서만 그러하다. 즉 민주적 의견 교환과 숙의를 방해하는 법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법이란 일종의 당착이며 제대로 된 민주적 의지형성이라고 볼 수 없다.
하인즈가 보기에 증오발언을 규제하는 법이란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을 관점차별적 이유에서 정당화하는 일로서 민주적 정당성 조건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일련의 증오언론 규제법은 각 국가의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하인즈는 덧붙인다. 사적 영역에서 개인에 해악을 초래하는 발언을 규제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일반적 교의를 따른 것으로서, 명예훼손이나 차별금지 등과 같은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가능하다. 또한 국가는 다른 기본권과 충돌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용기반 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고, 내용 중립적 규제도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제는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교환과 토론을 직접적으로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인즈는 유럽의 권리기반 자유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정당성에 소홀한 역사적 배경도 검토한다. 예컨대, 독일 기본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최상위 권리로 삼게 된 역사적 성찰성이 사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허약한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프랑스의 홀로코스트 부정이 2차 대전을 겪은 역사적 감수성을 반영한 것으로서 동시에 자신의 공화국 역사에 대한 염려에 기초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하인즈가 보기에 ‘강건한 민주주의’라면 이럴 필요가 없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된다. 공적 사안에 대한 관점차별적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민주주의 정당화 조건을 훼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아, 재미있도다. 누군가 이 책을 번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