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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웅 Nov 17. 2018

강명관 (2014).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2014년 3월 10일 

교보문고에서 출간 즉시 집어 들면서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다. 강명관이라면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2007)’이후로 계속 주목했던 작가다. 그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서구적 근대'를 우리 문학에서 찾으려는 헛된 시도를 성공적으로 비판한 적 있다.


그 이후 몇 권의 흥미로운 소품도 출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대중서로 기획되었음이 틀림없다. 얼굴과 화장을 보면 안다. 그러나 제기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중요하다. 


조선의 책과 지식의 역사라니. 벌써 제목부터 본격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 책의 내용은 조선 전기의 서적의 제작 및 유통에 대한 정리가 전부다. 이것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 되고도 남기에, 애초에 내 기대가 과도했던 것부터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관한 사진과 반복된 내용을 정리했더라면 좀 더 긴밀하고 알차게 내용을 담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일단 책의 서두에 제시한 질문이 엄중하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에 왜 서적 및 저술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나? 이 질문은 과거 언론학회 강연에서 최정호 선생님께서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정말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기대하고 읽어 나간다. 그런데 고려조 사료의 망실로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는 저자의 답변 아닌 답변은 그래서 약간 실망스럽다.  


실록과 집서에 남아 있는 조선조 초기 출판기록을 보면 그나마 사정을 짐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저자에 따르면 금속활자는 유교 이념을 근간으로 한 통치를 위해 사용되었다. 금속활자는 그러나 (가) 중앙정부 독점으로 주조되었고, (나) 유교경전의 다종소량 출판을 위해 이용되었으며, 그나마 (다) 구리 등 물자 부족과 비용 때문에 지속적으로 출판에 이용되지 못했다. 중앙과 지방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진 목판인쇄나 공사에서 모두 활발히 이루어진 필사를 고려하면 ‘금속활자’는 조선조 출판문화의 지배적 매체기술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자는 조선의 금속활자 출판이 구텐베르그 금속활자 출판과 다른 이유를 나름 정리해서 제시한다. 조선의 그것은 인쇄기술의 확산과 연결되지 못했고, 상업적 목적의 출판도 아니었으며, 중국자체의 활자화가 알파벳의 활자화와 효율이 다르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저자는 조선 초 출판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사업이었음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출판문화 부진의 원인으로 명시적으로 지목하지 않고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세종 때 금속활자가 유려하고 종류도 많아서 모범이 된다는 후세의 기록을 거듭 인용하는 것을 보면, 영명한 훈민적 군주의 출판의지가 계속됐다면 사정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나는 지적하고 싶다. 서양의 출판문화의 융성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의 전파에 따른 것뿐만 아니라, 집요하게 대항적 권력을 형성하고자 했던 상인, 설교자, 문필가, 호사가 등의 이익과 합치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조선의 출판문화란 사실 하나의 이념공동체였던 왕과 사대부의 이익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이점은 강명관도 명확히 인식하고 지적한다), 바로 이것이 전부이기에 즉 다른 사회적 세력의 이념과 이익의 추구과 그에 따른 투쟁과 연결점이 없었기에 (이걸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적의 생산 및 유포가 문화 융성의 원인이 되려야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읽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조선의 왕들은 왜 그리 중국의 경서를 수집하는 데 집착했는지, 조선 초 책값이 왜 그리 비쌌는지, 서점은 왜 발전하지 못했는지 (사실 이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등이 그렇다. 그리고 조선 초 일본이 우리에게 집요하게 요구했던 책은 다름 아닌 대장경 완질이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확실히 의외였으며 또한 흥미로웠다.


결국 자료를 넘어선 해석이란 없다. 읽다 보니 새로운 사료의 발굴이 없는 한, 조선 초 출판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이 정도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래서 우울해진다. 결국 김두종의 ‘한국고인쇄기술사’나, 안춘근의 ‘한국서지의 전개과정’, 천혜봉의 ‘한국전적인쇄사’, 이준걸의 ‘조선시대 일본과의 서적교류’, 또는 윤병태의 ‘조선 후기의 활자와 책’ 등을 구해 읽고 따로 고민해 봐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16세기 어숙권의 ‘고사촬요’ 또는 유희춘의 ‘미암일기초’에 기초한다. 역시 사가의 기록을 뒤져야 뭐라도 나올 것 같다.


강명관은 서두에서 이 책의 후속작품을 쓸 것이며, 그것도 한두 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약속한다. 그의 약속을 믿고 일단 기다리자. 조선 후기와 개화기의 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나도 뭔가 분명히 말하고 싶을 내용이 생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와 독자, 기술과 문화, 그리고 지배와 저항과 관련된 내용이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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