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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un 27. 2019

Bon Voyage!

괴짜들의 시대를 위하여!

얼마 전 캐리비안의 해적을 다시 봤다. 넷플릭스를 정기 구독중인데 추천에 갑자기 캐리비안의 해적 전 시리즈가 따 올라오기에 한번 옛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각난 것을 적어보았다.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포스터(아마존)

해적은 시대의 최고 인재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와 그의 배 블랙펄이 그들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마법과 같은 사건들, 해적사회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이 주요한 스토리이다. 어릴 때는 그저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에 취해서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자란 지금 이 영화를 다시보니 영화에 나오는 해적 한명한명, 해군, 동인도회사의 한명한명이 엄청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들은 그 시대에 최첨단을 달리는 사람들이었고 천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하나. 대항해시대에 항해기술은 가장 최신의 기술이고 가장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바다를 항해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망망대해에 떨어져도 GPS만 있으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도 알 수 있으니까. 또한 식재료 가공이 엄청나게 발전하여 과거와 달리 오랜 항해에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고 위생관리도 더욱 용이해졌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에는 그 반대였다. 항해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야했고 그러고도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실수없이 대처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항해기술은 그 다시 모든 최첨단 기술의 복합체였고 이를 한 사람이 온전히 익힌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찾을 것인가? 어디로 가야할지 정할 것인가?(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시대에는 GPS는 없다.) 답은 별을 보는 것이었고 해류를 읽는 것이었고 바람을 읽는 것이었다. 이것이 항해를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각각에서 읽은 정보를 취합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정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정함에 있어 실수란 용납되지 않았다. 실수하면 표류하다가 식량이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이 다반사였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이 엄청난 노력과 지식이 필요한 항해를 영화 속 해적들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나침반과 해도만 가지고 이루어 낸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면들이지만 성공적인 항해를 몇번이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배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정상급의 칼싸움 실력, 오랜 항해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고려한다면 지식과 체력을 갖춘 그야말로 이상적인 존재라 할 수 있겠다.


- 둘. 대항해시대에도 신화나 부정확한 정보는 존재했다.


영화의 주요한 이야기는 주로 신화나 소문에 근거해서 시작된다. 실제로 엘도라도를 찾아 아메리카를 모험한 콩키스타도르와 같이 대항해시대에도 합리적이도 않은 신화나 정보에 근거해 항해를 떠나는 사람은 넘쳐났다. 사실 대항해시대 자체가 세상의 끝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한 것도 아니다. 실제 신화나 소문을 따라 올라가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하는 재보는 아니지만 그와 상응하거나 더 가치가 있는 보물을 찾은 이야기는 대항해시대의 성공이야기에 꼭 등장하는 요소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신화나 소문을 종합해 신빙성 있는 해석을 해내고 그를 따라 모험을 한다. 아즈텍의 저주받은 황금을 찾아내 훔쳐내기도 하고 어딘가 있을 데비 존스의 함을 위해 기꺼이 모험을 떠나며 데비 존스의 로커로 떠나기도 한다. 인어도 나오고 죽은자들의 군대와 마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실제 당시 떠돌던 이야기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실제와는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저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고 해석할만한 지성과 기꺼이 허구에 뛰어들만한 용기가 있으며 허구에 사람들을 매료시킬만큼의 언변이 있었던 것이다. 


위의 두가지 이야기를 종합하면 영화 속 인물들은 당시 최신의 기술을 습득한 동시에 놀라운 신체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허구를 해석해 현실의 수준으로까지 해석할만한 통찰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험에 사람들을 설득시켜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의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대에 몇 안되는 인재들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의 카리브해, 실리콘밸리


이런 사람들이 서로 경쟁했던 카리브해는 현대로 치면 실리콘 밸리와 같다. 현대의 괴짜인 실리콘밸리의 창업가, 기술가들은 최신의 ICT 기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을 실행시킬 통찰력과 지식을 기르고 있다. 또한 자신의 비전에 동참할 사람들도 모으고 있다. 이미 앞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시대를 지나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의 시대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며 이미 다음 세대의 새로운 경쟁자들도 나타났다. 시대의 흐름과 달리 말도 안되는 공상으로 실리콘 밸리의 괴짜들에게도 손가락질 받는 엘론 머스크와 같은 사람도 있고 그들의 성취에 의해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라고 영원하지는 않다. 카리브해도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곧 아메리카 대륙, 태평양 등으로 대체되어 갔다. 현대는 전세계의 국가 마다 자신들만의 실리콘밸리에서 과거 실리콘밸리의 괴짜들이 세운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과거 빌 게이츠가 말했듯 가장 두려운 경쟁상대는 지금 어딘가 차고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밤을 새고 있는 누군가라고 했듯이 그 중 누군가는 성공하여 세상을 또다시 바꾸어 낼 것이다.


역사의 반복 우리는 어디인가

토르데시야스 조약 (위키피디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역사의 한복판에 있다. 인구가 어쩌고 산업이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하는 사이에 이미 저 바다 너머의 누군가는 새로운 말도 안되는 공상을 하며 이를 어떻게 이룰까를 고민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이루어내고 있다. 우리가 현실에 안도하고 하루하루를 대충 수습하는 법을 배우는 사이 저 멀리 누군가는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내려 움직이고 있다.

과거 대항해시대 제국을 이루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세계를 반 잘라 자신들의 것이라 선언할만큼 강대했지만 결국 뒤따라 온 네덜란드, 영국 등 신흥국에게 그들의 자리를 뺏기게 된다. 지난 세기 말 한국은 신흥국이었고 가장 최신의 기술들을 지체없이 받아들였고 새로운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 용기가 있었으며 인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공무원 시험에 빠져있고 당장의 내일을 걱정하기에 바빠 공상에 빠질 틈이 없다. 이런 우리가 옛날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새로움을 잃고 모험심을 잃어가며 침전해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부정적 이야기만 늘어놓긴 했지만 한국도 스타트업이 잘 성장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중국이나 미국과는 비교를 못하겠지만 최근 it기업 최초로 카카오가 재벌반열에 오르기도 했고 라인 메신저로 유명한 네이버와 같은 회사도 있으며 용감한 형제들과 같이 일상에 깊이 파고든 스타트업도 많다. 매일 새로운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는 어느새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매일매일 뉴스에는 신기술 개발이나 혁신 사례가 소개되기 보다는 이미 지난 일에 대한 재평가와 조사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 모습이 범람한다. 공무원 시험에 실업률 지표가 바뀔만큼 공무원에 매달리는 청년들이 많고 기업은 역설적이게 일할 사람이 없어 짐을 싸고 있다. 파산하는 업체가 신기록을 기록한 것은 이미 놀랍지 않은 기사가 되었고 광화문은 온갖 종류의 시위로 끝도 없이 시끄러워져 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그랬다. 대항해시대의 달디단 열매로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지만 어느새 내부적인 싸움에 골머리를 싸매고 안정에 매몰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신흥국에 그 열매를 모두 넘겨주게 되었다. 

나는 한국이 여전히 신흥국으로 앞서 나아가는 선진국의 위협이 되길 바란다. 도전에 큰 가치를 두고 이를 위해 뛰어드는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며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며 그런 사람들이 득실득실하길 바란다. 쉴새없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목표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며 역동성을 부어주길 바라며 괴짜들이 나타나 세상을 뒤엎어주길 바란다. 


잭 스패로우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영화얘기로 넘어와 잭 스패로우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해보자. 잭은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독특한 자신의 스타일이 있고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그만의 스타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타인이 잘 따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따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를 이해 평생 바다를 떠돌 생각까지 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괴짜다. 괴짜들이 모인 해적 사회에서도 괴짜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런 잭 스패로우가 한국인이라면 어떨까? 아마 초중고를 거쳐오면서 부적응자 취급을 받으며 온갖 종류의 비난은 다 들으며 자라나지 않을까?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가더라도 교수님의 생각과 다른 창의적인 답안을 남발하여 학점은 바닥을 기게 되지 않을까? 군대에서는 자유를 억압당하고 특이한 그의 언변과 행동을 비난하는 동료들에게 학대당하지 않을까? 취업을 하고자 해도 그의 낮은 학점과 특이한 행동, 낮은 스펙에 서류에 탈락하기 일쑨이라 결국 공무원 시험을 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잭 스패로우와 같은 사람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라 생각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비난받지 않는 사회, 남과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안정은 당연한 것 아닐까?


Bon Voyage!


과거 항해를 나갈 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Bon Voyage! 

역동성을 잃어가는 나라에서 다시 한번더 괴짜들이 모험에 나서길 바란다. 평범한 사람도 모험에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저렇게 Bon Voyage! 하고 격려를 해주었음 좋겠다. 그냥 집구석에 박혀있는 것이 최고라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용기있는 도전에 박수를 쳐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모든 괴짜들이여 모험을 떠나자! Bon Voyage!




쓰고 보니 굉장히 오글거리면서도 꼰대 같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내용만큼은 진심을 담았다. 스스로도 현재 글 속에서 말한 도전을 환영하고 더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능하면 재밌는 걸 계속하고 싶다. 기업의 부품이 되기 보다는 파도를 직접 맞으며 바다를 누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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