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담훈 (Jung Dam-Hoon)
《6화. 급할수록 천천히 앉아라》
우리는 빠른 속도의 세상을 살아간다.
생각보다 느리게 걷기만 해도
마치 뒤처지는 느낌이 드는 세상.
모든 게 재촉이다.
배송은 하루도 모자라 반나절로 줄었고,
메시지는 1분 안에 답장이 없으면
뭔가 이상한 낌새로 느껴진다.
우리는 어쩌다
속도가 곧 예의이자 능력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토록 빠른 하루 속에서도
누구도 예외 없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화장실에 갈 때다.
그 순간만큼은
사람도, 스케줄도, 말도 중요하지 않다.
회의 중이라도, 데이트 중이라도,
누구도 그 급함을 무시하지 못한다.
문을 닫고 앉는 그 짧은 시간,
모든 속도가 멈춘다.
세상의 소음이 닫히고,
오직 내 안의 소리만 또렷해진다.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과 단둘이 마주한다.
이 공간은 특별하다.
그 어디보다 ‘자세’를 요구하는 곳.
속도가 아니라 중심이 중요한 유일한 장소.
서두르면 튀고,
억지로 밀어내면 상처가 남는다.
참으면 썩는다.
무리하면 피가 난다.
삶도 그렇다.
감정도, 관계도, 말도 다 마찬가지다.
한 번도 꺼내지 못한 말.
속으로 삼켜온 수많은 감정.
지금 미뤄둔 결정들.
그 모든 것이 결국 몸 어딘가에서 막힌다.
변비는 단지 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말하지 못한 사과고,
억눌러 온 분노고,
선택을 미뤄둔 태도다.
참는다는 건 곧 쌓인다는 뜻이다.
쌓인다는 건 결국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끔 아프다.
이유를 몰라서 더 아프다.
그런데 그 고통이 사실은
‘제때 비우지 못한 감정’에서 왔다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래 걸린다.
입으론 웃지만 속은 뒤틀리고,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관계는 서서히 썩어간다.
그래서 앉는다는 건,
멈춘다는 건,
단순한 신체의 행위가 아니다.
그건 감정의 자세이고,
삶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흘려보내려면
먼저 조용히 앉을 수 있어야 한다.
비우는 기술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무대 위에서보다
변기 위에서 더 진실해진다.
가식도, 표정도, 허세도
그곳에선 모두 벗겨진다.
그 진실한 순간에
비로소 중심이 선다.
혹시 오늘,
누군가에게 화가 났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 감정을 꺼내지 못하고 삼키진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은 아직,
당신 몸 어딘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번 비우는 데 실패하면
다음엔 더 아프게 비워야 한다.
몸도, 마음도, 관계도 다 그렇다.
그리고 화장실은
매일을 통과하는 작은 철학이다.
이 공간은 말한다.
급할수록 천천히 앉으라.
속도보다 자세가 먼저고,
결정보다 감정이 먼저며,
행동보다 비움이 먼저다.
천천히 앉을 줄 아는 사람은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속도보다 중심을 택한 사람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비우지 못하고 있는가?
✒️ 정담훈 (Jung Dam-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