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담훈 (Jung Dam-Hoon)
7화. 공용화장실의 침묵학(上)
공용화장실.
모두가 다녀오지만, 아무도 깊이 말하지 않는 그 방에는
인간관계의 가장 원초적인 윤리와
문명이라는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들이 숨어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고립되고, 또 연결된다.
서로를 보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뼛속까지 의식하게 되는 공간.
그곳에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익히게 된 침묵의 문법을 따른다.
헛기침.
물 틀기.
한 박자 느린 휴지함 돌리는 소리.
어쩌면 그것은 배려일지도,
혹은 체면을 유지하려는 마지막 저항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갑자기,
그 침묵을 뚫고 자기 존재를 선언하는 소리가 들린다.
뿡~ 찌지직~
쏴아~
그건 단지 위장의 반란이 아니라,
체면을 포기한 인간의 절규이자 해방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니, 왜 저런 걸 참지 못하나?”
하지만 진짜 참지 못한 건
예의가 아니라 장(腸)이었다.
그곳은
안도의 한숨이 가장 많이 들리는 방이기도 하다.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몸.
심지어 숨까지 다시 쉬게 되는 순간.
하지만 창피함이 먼저 떠오른다.
누가 방귀 소리를 들을까?
쏟아내는 소리를 들었을까?
변비로 고생하며 끙끙대는 그 소리까지 들렸을까?
아니, 누가 녹음이라도 하겠냐만
그 순간엔 CCTV보다 더 무서운 게 '타인의 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숨을 죽이고,
자존심을 세우며 앉아 있어야 할까?
배는 아파 죽겠는데
참는 건 미덕이 아니고,
병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 휴지 없네. XX...”
당황했는지 속마음이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이건 감정 표현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그 욕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비상벨’ 같은...)
그 욕도 들렸을까?
그 한숨도, 그 절박함도 들렸을까?
화장실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곳이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그 숨소리와 끙끙거림만으로도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조용히 알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를 위해 조용히 조연이 된다.
괜히 손을 씻고,
물을 반복해 내리며,
천장을 보며 시간을 끈다.
누군가의 쏟아냄이,
"세상의 조롱이 아니라, 휴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이 공용화장실의 침묵학이다."
비언어적 윤리.
눈치라는 이름의 사랑.
소리 없는 위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칸을 닫은 누군가가
숨소리조차 급하게 틀어막은 채 앉았고,
곧이어 마치 장대비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화장실 안 모두가 멈췄다.
누군가는 물을 틀고,
누군가는 기침을 하고,
그건 동정이 아니라, 배려였다.
위로가 아니라, 연대였다.
화장실에선
오직 한 가지 기준 누가 먼저 급한가.
그 순간, 인간적인 것들로 돌아간다.
그 방에서만큼은 누구도 ‘강자’ 일 수 없다.
모두가 똑같이 급하고,
똑같이 부끄럽고,
똑같이 서로를 기다린다.
침묵은 어쩌면
이 사회가 남겨둔 마지막 온기다.
말로 하지 않아도,
모두는 알게 된다.
누군가의 방귀를 감싸주는 물소리는
어쩌면 이 도시에서 가장 따뜻한 배려의 박자다.
그건 사운드 이펙트가 아니라, 사회적 이불이다.
공용화장실은 이상한 곳이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이
가장 절제된 예의를 지키는 곳.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방에서는 존엄을 덮어주는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닦고 떠날 때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그 침묵은,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려준 시간이다.
말없이, 아주 조용히 사랑한 시간이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민망함을 덮어준 게 언제였나요?
ⓒ 정담훈 (Jung Dam-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