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화장실의 침묵학(下)

by 정담훈

✒️ 정담훈 (Jung Dam-Hoon)


8화. 공용화장실의 침묵학(下)

공용화장실은,

사실상 가장 복잡한 '침묵의 연극 무대'다.
우리는 그 공간에 들어서면서
무언의 시나리오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게 된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

헛기침은
“나는 지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는 선언이다.
물 트는 소리는
“지금의 이 소리를 희석시켜 줄 배려의 사운드트랙”이며,
세 번에 걸쳐 천천히 휴지 돌리는 소리는
“나 역시 사람이다. 이해해 달라”는 애절한 SOS다.

우리는 그 방 안에서
말 대신 소리의 볼륨을 조절하고,
존재 대신 체면의 각도를 다듬는다.

그곳에서는 ‘얼마나 잘 비우는가’보다
‘얼마나 조용히 비우는가’가 중요하다.
불청결보다 더 두려운 건, 체면의 실추다.

누군가는 30초 만에 문을 나서고,
누군가는 10분을 버틴다.

“이 기다림은 침묵 속의 눈치 싸움이며, 동시에 존중의 기술이다”
“사람이 나가기를 기다리는” 그 기묘한 대치 속에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 동물’이 된다.

그러나 이 침묵의 룰에도 예외는 있다.
때때로 등장하는,
세상의 기준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자.

이어폰으로 노래를 틀고
당당히 비워내는 그에게는
침묵의 룰도, 체면의 장벽도 없다.
그는 그 공간의 '선언자'이며, 동시에 '파괴자'다.
그의 존재는 우리 모두의 ‘침묵’이라는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글은 단순히 화장실이라는 ‘더러운 공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과
가장 문명적인 얼굴이 맞붙는 경계를 들여다본다.

삶은 때때로
헛기침처럼 꾸며야 하고,
물 트는 소리처럼 숨겨야 하며,
때론, 아무도 없는 그 방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공용화장실은 결국
우리 삶의 은유다.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존재를 의식하는,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는
그런 공간.

어쩌면 그 침묵은
예의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극도의 공포일지도 모른다.

'나의 민낯'이 들킬까 두려운 마음.
'문명의 가면'이 벗겨질까 두려운 본능.
그 두려움이 침묵이라는 룰을 만들고,
그 룰이 다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결국 우리는 그 방 안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
‘짐승처럼 드러내지 않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명의 얼굴을 다시 쓴다.

모든 사람은
일상 속에서도 한 번쯤은 비우러 간다.
몸을, 그리고 마음을.

그곳에서는 정말로 비워낼 수 있다.
비움으로 시원해지는 건,
결국 몸만이 아니다.


그 공간이 청결하고
마음까지 맑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금상첨화겠는가.

공용화장실이 빛나는 순간,
우리의 인생도 함께 빛날 것이다.


“비움이란, 결국 삶을 다시 채우기 위한 준비다.”





✒️ 정담훈 (Jung Da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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