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서평

by 정담훈

『젊음의 나라』 손원평


✒️ 정담훈 (Jung Dam-Hoon)


서평단 특별가제본으로 이 책을 먼저 읽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든 생각은, ‘먼저 읽은’ 것이 아니라

‘먼저 애도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젊음’이 부러움이 아닌 부담으로 들리는 시대.


손원평 작가는 늘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이번엔 이렇게 묻는다.

“늙은 나라에서 젊다는 건, 여전히 가능성인가? 아니면 끝까지 돌봐야 할 의무인가?”


『젊음의 나라』는 그 질문에 대한 소설이자, 하나의 장례식이다.

젊음을 향한, 혹은 젊음을 빼앗긴 이들을 위한, 조용하고도 단단한 애도문이다.

소설 속 ‘시카모어 섬’은 남태평양의 고요한 이상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곳은 ‘돌봄을 받는 자’와 ‘돌보는 자’가 세대에 따라 분리된 구조다.

노년은 존엄하게 대우받지만, 젊음은 노동으로 환산된다.

시카모어 섬은 노인을 위한 낙원이지만, 젊은이들에겐 감옥이다.

‘존엄한 늙음’을 위해 ‘소진되는 젊음’을 바치는 제단이다.

이것은 근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의 축소판이다.


주인공 유나라는 29세.

그녀는 특별하지 않다.

희망도 없고, 분노할 힘도 없다.

그저 무해하게, 조용히, 소진되지 않기 위해 버틴다.

유나라는 미래를 포기한 게 아니다.

단지 미래가 자기 몫일 거라 믿지 않게 된 세대의 초상이다.

그녀는 이민자와 함께 살고, AI에 밀려나고, 가족과 단절되며

‘젊다’는 이유로 더 많은 희생을 강요당한다.

이 소설은 그 현실을 어떤 미화도 없이 응시한다.


놀랍게도, 이 소설엔 ‘악당’이 없다.

AI도, 노인도, 이민자도 모두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손원평 작가는 갈등 대신 공존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이해’가 아니라 ‘함께 버티기’다.

이 세계에선 누구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조심히, 더 고립된 채,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손원평 특유의 정직함이며, 서늘한 연민이다.


『젊음의 나라』는 젊음을 회복시키지 않는다.

구원도 없다.

하지만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의 존재를 그려낸다.

그 자체로 작지만 단단한 저항이다.

살아남는 것이 곧 윤리이고, 증언이 되는 서사다.

젊음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이 아니라고 해서, 사라져도 되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은 다정하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냉정한 방식으로 애도하는 법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젊음을 보내고, 늙음마저 버거워하는

거대한 요양병원일지 모른다.


책을 덮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젊음을 기념하지 말고, 조문해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젊음의 나라』는 젊음을 찬양하지 않는다.

그저 그 죽음을 목격하게 한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미래는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현재를 점령한다.”

이 말처럼, 『젊음의 나라』 속 시카모어 섬은 먼 미래가 아닌

우리가 이미 진입한 사회의 또렷한 거울이다.

더 이상 ‘젊음’이 축복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

젊음은 가능성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는 고요히 소진된다.


『젊음의 나라』는

젊음에게 보내는 장례식 초대장이다.

그리고 그 초대장 속에서,

우리는 끝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