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괴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을 것이다.
양면성을 지닌 괴물. 그 이름 참 아름답다. 에어컨
마룻바닥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누워 부채질하던 여름.
엄마는 얼음 동동 띄운 보리차 주시고,
수박 한 통 썰어 놓고 온 가족이 베어 물던 시절
아빠는 선풍기 바람 쐬며 신문지 덮고 잤다.
그땐 ‘여름’이 그 자체로 계절이었다.
근데 요즘은?
에어컨 없으면 집이 아니라 지옥이다.
에어컨은 참 시원하다.
그런데 웃긴 건 그걸 끄는 순간,
더위가 등에 와서 때린다.
“꺼? 그래, 꺼봐. 내가 누군지 보여줄게.” 하는 느낌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기계, 우리 집주인이 맞나?
아니면 우리가 에어컨 집사인가?
요금 고지서 볼 때마다 심장이 얼음이 된다.
더위를 날리려다 통장이 날아갔다.
한 달 전기요금 보고,
“이 돈이면 제주도 갔다 오겠다…”
하고 중얼거리는 나 자신을 본 적이 있다.
가족들도 이상해졌다.
예전엔 식탁에 모였는데,
지금은 에어컨 바람 나오는 곳에 자연스레 집결한다.
싸우던 부부도 에어컨 켜면 잠시 휴전이다.
근데 그게 꼭 평화는 아니다.
그냥... 에어컨 아래에서 조용히 외면하는 거다.
이상하게 웃긴 건,
“타이머 몇 시간 맞췄어?”
“잠깐만 더 틀면 안 돼?”
이 말들이 마치 가족 사이의 협상처럼 되어버린 거다.
이 집의 기온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기요금의 눈치를 본 독재 체제다.
요즘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선풍기 앞에 얼음 놓고, 맥주 마시며 여름 보내기’ 같은.
그런데 이건 낭만이 아니라 실험이다.
실제로 해보면 그냥 땀만 더 난다.
에어컨 없이 여름 나겠다는 건,
땀을 예찬하는 철학자나 가능한 얘기다.
에어컨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필요하고, 고맙고, 시원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요금을 핑계 삼아 가족을 쪼개고,
눈치를 만들고, 침묵을 만든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버튼을 누른다.
냉방 23도, 강풍.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에서,
마음만은 뜨겁다. 전기요금 생각에.
에어컨은 참 시원하다.
근데 그놈 요금은 왜 이렇게 뜨겁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