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연애학 - 자존(自尊)

사랑에서 나를 지키는 힘

by 정담훈

《감각 연애학》


11화. 자존 감각 — 사랑에서 나를 지키는 힘


✒️ 정담훈 (Jung Dam-Hoon)


사랑은 둘이서만 완성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얼마나 단단히 붙잡고 있느냐에서 시작된다.


자존(自尊),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감각이 흔들리는 순간, 사랑은 금세 불안해진다.

“저 사람이 날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내가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강박이 천천히

관계의 뿌리를 좀먹는다.


처음에는 그 불안이 애정처럼 보인다.

자꾸 확인하고, 끊임없이 맞춰주고,

한없이 내어주는 마음이 ‘헌신’이라 착각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부담이 되고,

마침내는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면, 상대도 결국 나를 잃는다.

사랑은 ‘나 없는 우리’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거울에 내가 비치지 않으면 상대의 얼굴도 흐려지고,

뿌리를 잃은 나무가 오래 서 있을 수 없듯이.


진짜 자존은 상대보다 위에 서려는 우월감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 존중을 바탕으로 상대를 대하는 힘이다.

그래서 자존이 단단한 사랑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사랑을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있을 때도, 홀로 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확신이 관계를 지켜낸다.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사랑받고 싶어 지나치게 맞춰주다

결국 내가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에 휩싸인 적.

혹은 상대의 인정이 전부가 되어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져 버린 적.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자존이 약해진 사랑은 결국 사랑이 아니라

존재 확인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진짜 자존은 고집이나 자존심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방어적 단호함이 아니라,

“나는 너와 있어도, 없어도 여전히 나야”라는

조용한 확신이다.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사랑이 떠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사랑이 머물러도 지나치게 취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소유’가 아니라 ‘나눔’으로 감각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능동적인 활동’이라 말했다.

받기 위한 애착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힘을 건네는 행위라는 뜻이다.

자존이 없는 사랑은 늘 채워 달라며 손을 내밀지만,

자존이 있는 사랑은 이미 채워진 자신을

상대에게 흘려보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존은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훈련된 감각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작은 습관들이 모여

자존이라는 기초 체력을 만든다.

내 하루를 정돈하는 시간,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다정한 습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허락하는 선택.

그런 일상의 누적이 결국 사랑 속에서도 나를 지켜낸다.


사랑에서 자존 감각을 지킨다는 건

상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안의 나를 먼저 껴안는 일이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만,

상대도 나를 존중할 수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두 개의 온전한 자아가 만나

조율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자존이 없는 만남은 융합이 아니라 붕괴다.



사랑을 지켜내려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그 수용 위에 세워진 관계만이 오래 버틴다.


자존은 결국 사랑의 근육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쓰러지려는 순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

사랑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내는 힘이다.


사랑은 나를 잃지 않을 때만,

끝까지 남는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사랑 속에서 나를 지키고 있는가?


이전 10화감각 연애학 -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