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연습, 매일 1회

by 정담훈

✒️ 정담훈 (Jung Dam-Hoon)


12화. 비우는 연습, 매일 1회


하루의 첫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오늘의 나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내려보내는 건 어제 먹은 음식뿐이 아니다.

삼킨 말, 넘긴 감정,

제때 꺼내지 못한 표정,

억지로 눌러 넣은 생각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묵은 장처럼 서서히 부풀다가

아침이라는 신호에 맞춰

조용히 아래로 향한다.


나는 그걸 ‘비운다’고 부르지만,

사실은 ‘놓아준다’에 가깝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어떤 기억은 변기 물살처럼 쓸려가지만,

어떤 감정은 배관 어딘가에 걸려

오래 삭아 남는다.


그 짧은 몇 분의 반복만으로도

나는 꽤 오래

나 자신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화장실은 참 이상한 곳이다.

거울이 없어도

내 안의 더러움이 선명하게 보이는 방.

숨기고 싶었던 생각들,

흘려보낸 말들이

다시 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어제 누군가에게 받은 모욕,

대답하지 못해 목구멍에 걸린 말 한 조각,

꺼내면 상처가 될까 참아낸 서운함.

그 감정들이 장 속에서

미묘하게 끓어오르다가

오늘 아침, 깊은 변기로 향한다.


물론, 기적처럼 깨끗해지진 않는다.

화장실이라도

감정의 잔여까지 말끔히 지워주진 못한다.

그렇다고 헛된 건 아니다.


매일 한 번쯤,

의식적으로라도 비우는 연습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조금은 덜 다치게 만든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내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민하고,

눈치를 보는 인간인지.

소리마저 조심스럽고,

냄새조차 누군가에게 미안해진다.


체면은 문 앞에 두고 들어왔다고 믿었지만,

실은 가장 먼저 따라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배설이 아니다.

‘용기 있는 민망함’이고,

‘정직한 수치심’이며,

‘아주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회복’이다.


나는 이 시간을

감정의 정리 시간이라 부른다.

비우는 것이 회복이고,

회복이 결국 인간을 버티게 한다면,

우리는 모두

이 방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셈이다.


근심을 씻어내는 곳,

말로도 풀지 못한 것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마지막 안식처.


누구에게나

말 못 한 마음이 있다.

꺼내면 울 것 같고,

말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애써 쌓아 놓은 감정들.


가끔은 그런 감정들이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삶이 너무 막혀서

나를 이 방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앉아,

비우고,

닦고,

숨을 고르고,

조용히 문을 연다.


누구도 대신 비워줄 수 없다.

감정도, 후회도, 체면도—

결국은 내가 직접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


인생이란,

결국 내 감정을 내가 직접 닦고 나가는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가장 조용한 자기 회복 의식.


매일 1회,

습관처럼,

기도처럼,

해방처럼.


그리고 오늘도

나는 아주 잘 비워내고,

어제보다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간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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