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담훈 (Jung Dam-Hoon)
11화. 소리는 죄가 없다
화장실이라는 이 조용한 방은,
사람이 가장 본능적인 일을 하러 들어가지만,
그 본능조차 가능한 한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숨기려 애쓰는 참으로 이상한 공간이다.
문을 닫았지만, 닫은 것뿐이지
결국 모든 소리는 새어 나온다.
누군가 물을 내리는 소리,
휴지를 뜯는 소리,
그보다 더 인간적인 소리들
참을 수 없어 새는, 참아서 더 쏟아지는
그 소리들이, 어김없이 닿는다.
아무도 알려준 적 없지만
우린 그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지시받지 않은 침묵의 예절을 익히며,
자기도 모르게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
먼저 물을 틀어주는 사람의 손끝엔
자신보다 먼저 누군가를 배려하려는 무의식이 배어 있고, 헛기침 하나로 존재를 암시하는 이는
그저 목을 가다듬는 게 아니라
어쩌면 상대의 민망함을 나눠지려는 일종의 연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무도 손가락질할 수 없는 ‘죄 없는 소리’와,
아무도 책임지지 못할 ‘의심받는 소리’가
이 방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앉아 있다는 걸.
소리는 본디 죄가 아니다.
몸이 무언가를 내려놓았다는 증거이고,
어떤 이에게는 마음까지 조금 비워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망함이 얼굴에 스치고,
머릿속엔 괜히 죄책감이 남으며,
애써 물소리로 덮어보거나,
헛기침으로 그 공기를 흔들어보려 한다.
왜일까.
이토록 솔직한 공간에서조차,
소리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건
얼마나 이상한 풍경인가.
어쩌면,
부끄러운 건 그 소리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고개를 숙이며 외면해야 했던
우리의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배출’이 예의가 되었고,
마치 감정조차 소리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인 듯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배출이란 건
본래 감정과 매우 닮아 있다.
억지로 누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참는다고 묻히는 것도 아니다.
참을수록 복부에 쌓이고,
눌러둘수록 마음 어딘가에 부패하며,
가장 건강한 방식은
적절할 때 비워내는 것뿐이다.
이 방.
우리가 누구의 허락도 없이
조용히 들어와, 문을 잠그고 앉는 이 방은
단순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불교에서는 이곳을 ‘해우소’라 불렀다.
근심을 푸는 방.
찝찝함을 씻어내는 물리적 장소이자,
속에서 끓어오르던 어떤 마음의 덩어리까지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 있는 정직한 방.
누군가는 방귀를 뀌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울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정지된 채로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그 모두는,
다시 사람이다.
흠도, 결도, 흐름도,
사람의 것이다.
때론 유독 소리가 컸던 그 칸의 사람을
무례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가장 아팠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지금,
변기와 협상 중이다.
아니, 인생과 막장 교섭을 벌이고 있었는지도.
그 소리가 고통을 토해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침묵 속에 삼킨 고통보다,
소리로 흘러나온 고통이 더 정직하니까.
그만큼의 절박함은,
한 인간이 견뎌야 할 무게를 대신 증언해주기도 하니까.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다.
소리는 죄가 아니다.
죄가 있다면,
그걸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기침 한 번으로 대응하거나,
허둥지둥 수돗물을 틀어 외면했던 나의 체면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알고 있다.
소리를 냈던 사람보다
그걸 들은 내가
더 오래, 그 잔향을 품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하지만 결국,
그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들은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불편했지만
결국 둘 다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있는 그대로,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
그래서 나는 이 화장실을,
가장 정직한 교회라 부른다.
이 방에서는
누구도 신 앞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비우고,
다시 일상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날, 그 소리는 죄가 아니다.
죄가 있다면,
그 소리를 듣고도 끝내 웃지 못했던 당신의 마음이
이미 너무 오래 참아온 증거였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우리는 다만, 조금 지쳐 있었던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