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양념학 - 참기름

끝에 남는 은은한 향

by 정담훈

12화. 참기름 — 끝에 남는 은은한 향


✒️ 글: 정담훈


오늘 꺼내볼 양념 : 참기름


참기름은 언제나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국이나 나물무침은 불을 끈 뒤 살짝 둘러주고,

비빔밥은 모든 재료를 고루 섞기 직전에 더해진다.

앞에서 요란하게 나서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야 은근하게 스며들어

전체의 맛을 감싸 안는다.


참기름 몇 방울은 단순한 향 이상의 힘을 가진다.

그 한순간 음식의 결은 달라지고,

입 안 가득 남는 여운은 오래 이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무리는 참기름이지”라고 말한다.


사람 사이에도 이런 참기름 같은 순간이 있다.

긴 대화 끝에 남는 짧은 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잡아주는 손길,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눈빛 하나.

그 작은 행동들이 하루의 끝을 달래고,

관계의 향을 은근히 이어준다.


때로는 지친 하루도 “수고했어”라는 짧은 말에

달라진다. 은은한 위로가 밤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조용히 건네는 참기름

같은 제스처가 삶의 균열을 다시 붙여 놓는다.


참기름은 다른 양념처럼 앞에 나서지 않는다.

소금처럼 존재를 주장하지도,

고추장처럼 불꽃같이 강렬하지도 않다.

대신 마지막에 더해져

모든 맛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지닌다.


관계도 그렇다.

요란한 말이나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지막에 남는 따뜻한 기억,

은은히 스며드는 향 같은 순간이

사람을 오래 붙잡는다.


삶 전체를 돌아봐도 그렇다.

우리는 화려한 장면을 기억할 것 같지만,

끝내 마음속에 남는 건 향이다.


시골집 부엌에서 퍼지던 참기름 냄새처럼.

맷돌에 빻은 깨를 짜내던 어머니의 손,

장독대 옆에 줄지어 서 있던 작은 병들,

밥상 위 나물 무침에 스며들던 고소한 기운.

그 향은 집이라는 울타리와

사람 사이의 온기를 오래도록 붙잡아 주었다.


어릴 적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퍼져 나오던 고소한

냄새, 엄마 손끝에서 묻어나던 따뜻한 향기, 늦은 밤

부엌에서 들리던 참기름 병의 뚜껑 돌아가는 소리.


그 향은 추억을 열고, 사라진 얼굴을 다시 불러내며,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참기름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다.


인생의 마지막에도 필요한 건

찬란한 불꽃이 아니라, 향처럼 은은히 퍼져드는 고요한

온기일 것이다.

끝에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맛,

그것이 참기름이 알려주는 삶의 지혜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에게 참기름 같은 여운을 남기자.

크지 않아도 된다.

짧은 배려, 사소한 따뜻함 하나면 충분하다.

그 은은한 향이 퍼져 나갈 때,

우리의 관계와 삶은 마지막까지

고소하고 따뜻하게 완성될 것이다.


― 에필로그 ―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며 수많은 맛을 지나왔다.

짠 순간도 있었고, 달콤한 위로도 있었으며,

때론 매운 고통과 쓴 기억도 스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 모든 맛은 다투듯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한데 섞여 우리 안에 남아 있었다.


인생은 늘 그렇게 완성된다.

거창한 사건보다도

사소한 순간, 작지만 따뜻한 마음,

은근히 퍼져드는 향 같은 기억들이

사람을 오래 지탱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은은히 스며드는 온기다.

그것이 관계를 이어주고,

삶을 단단하게 묶어준다.


이 글을 덮는 지금,

당신의 오늘에도 작은 향 하나가

조용히 스며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 향이 오래도록 여운이 되어

당신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줄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긴 여정을 함께 걸어준 모든 독자님께

깊은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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