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훈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은 1988년에 발표된 노래다. 최명섭이 가사를 쓰고 최귀섭이 곡을 붙였으며, 최호섭의 목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삼 형제였고 즉,〈세월이 가면〉은 두 형이 만든 노래를 막냇동생이 부른 곡이다. 단순히 사랑의 끝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안고 세월을 묵묵히 견디는 인간의 모습이 담긴 곡이었다. 1980년대 말, 사회가 여전히 격변의 한가운데 있을 때, 이 노래는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은밀한 위로가 되었다.
이 노래의 매력은 절제에 있다. 목소리는 크게 터져 나오지 않고, 마치 혼잣말처럼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 담백한 호흡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화려한 기교가 없는 자리에, 듣는 이의 기억과 상실이 들어앉는다. 그래서 곡은 특정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세대를 넘어 공유되는 집단의 감정으로 확장된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으면 이상하게 이 노래를 꼭 부르게 된다. 처음엔 그저 익숙해서 선택했을 뿐인데, 몇 번 불러보니 가사와 멜로디가 내 세월과 겹쳐진다. 반주가 흐르는 동안 오래전에 놓쳐버린 순간들이 떠오르고,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고개를 든다. 부르고 나면 마음 한쪽이 젖어들면서도, 묘하게 후련하다. 마치 잠시 동안 세월의 무게를 노래에 맡겨두고 나온 기분이랄까.
이 곡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새로운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공식적으로 음원으로 남은 리메이크는 김조한과 박보람의 버전이 대표적이지만, 방송과 무대에서는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다시 불렀다. 웬디는 맑은 음색으로 곡을 새롭게 물들이고, 성시경은 따뜻하면서도 깊은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양요섭은 호소력 짙은 보컬로 곡의 애틋함을 드러냈다. 같은 가사와 멜로디이지만, 부르는 이의 나이와 삶, 시대의 공기에 따라 곡은 전혀 다른 울림으로 살아났다. 결국 이 노래는 세대를 이어 불리는 집단의 목소리가 되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세월은 아픔을 옅게 만들기도 하지만, 흔적을 지우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위로가 아니라, “상처는 희미해져도 사랑은 남는다”는 역설을 들려준다. 1988년의 최호섭,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수많은 가수들의 목소리가 증명하듯, 〈세월이 가면〉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이 노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노래방 기억 속에서도, 유명 가수들의 무대 속에서도, 각자의 세월을 불러내는 특별한 힘을 가진다. 세월이 흐르며 잊히는 것도 있지만, 끝내 남는 것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이 노래는 지금도 위로처럼 흘러나오고, 우리는 그 노래에 기대어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