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격살》 7화. 겉과 속 사이에서 구워지는 사람들
✒️ 글: 정담훈
오늘 구워볼 부위: 갈매기살
이중성 (二重性 / Duality)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진심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진심까지 버텨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성은 거짓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사람은 단순히 한 겹으로 살아갈 수 없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진심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진심까지 버티고 나서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성은 거짓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이다.
삼겹살집에 앉으면 사람들은 흔히 삼겹살이나 목살을 고른다.
기름지고 직선적인 맛, 담백하고 묵직한 맛.
그 사이, 자주 선택받지 못하는 고기가 있다.
갈매기살.
돼지 한 마리에서 손바닥만큼만 나오는 귀한 부위.
목과 갈비 사이, 어디에도 딱 떨어지지 않는 자리.
눈에 잘 띄지 않고, 메뉴판에서도 잘 고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점.
불판 위에서 은근히 익은 갈매기살을 입에 넣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든다.
“어? 이거 뭐지?”
씹는 감촉은 단단한데 부드럽다.
쫀득한 듯 미끄럽고, 익숙한 듯 낯설다.
겉과 속이 다른데,
그 다름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는 잘 웃지만 속은 무표정한 이가 있고,
겉은 냉담해 보여도 마음은 따뜻한 이가 있다.
어릴 땐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르지?
왜 사람은 자꾸 변하지?
하지만 살아보니 알게 된다.
사랑과 질투, 위로와 경계, 믿음과 불신은
늘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자리한다.
모순은 비정상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였다.
갈매기살은 자기 정체를 쉽게 확정 짓지 않는다.
삼겹살처럼 기름지지도 않고,
목살처럼 단단하지도 않다.
그래서 구울수록 진짜가 드러난다.
사람도 그렇다.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고,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단단한 말 뒤에 숨어 있는 망설임,
밝은 표정 속에 깔린 그림자,
정리된 척하는 문장 밑에 눌린 진심.
우리는 모두 갈매기살처럼
겉과 속 사이 어딘가에서 익어가고 있다.
예전엔 그런 이중성이 불편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멀리했고,
스스로 솔직하지 못한 날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방어, 진심과 연기가 공존한다.
그 모순 덕분에 성장하고,
타인에게 더 민감해지고,
때로는 혼자 울기도 한다.
단순한 사람보다,
복잡한 사람이 더 오래 남는다.
갈매기살처럼.
구워지는 과정도 특별하다.
갈매기살은 불판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익혀야 한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지고,
한쪽만 태우면 속이 질겨진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야만
그 속에 숨어 있던 결이 드러난다.
사람도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땐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모습이 있다.
상처, 후회, 애정, 오래된 외로움.
그 모든 것이 익어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표정이 되고, 말이 된다.
겉과 속이 다른 건 모순이 아니다.
그건 삶을 버티는 방식이다.
가면을 벗는 게 아니라,
가면 속에서도 진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갈매기살은 겉과 속이 달라서 특별하고,
사람은 겉과 속이 달라서 더 깊어진다.
오늘도 나는 갈매기살 한 점을 굽는다.
불 앞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그 고기를 보며
문득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
겉과 속 사이 어딘가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갈매기살은 두껍지 않다.
얇아서 금세 익을 것 같지만
막상 올려놓으면
겉은 먼저 타고 속은 아직 덜 익어 있다.
조급하게 젓가락을 들면
끝내 질기고 뜨거운 맛만 남긴다.
사람도 그렇다.
겉은 금방 달라진 듯 보여도
속은 아직 제 온도를 찾지 못한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고,
불을 낮추고,
가끔은 가만히 뒤집어 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견디는 동안
비로소 속살까지 부드러워진다.
나는 불 앞에서 그것을 배운다.
내 안의 겉과 속도
그렇게 어긋나며 익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금세 드러나는 말과 표정보다,
늦게 따라오는 마음과 결심이
더 깊은 온도로 완성된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갈매기살 한 점을 굽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조급해하지 말자,
타버리지도 말자,
겉과 속이 함께 익어갈 때까지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