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담훈 (Jung Dam-Hoon)
2화. 인간은 왜 ‘일’을 처리해야 하는가
화장실.
그 방은 인간이 가장 진실해지는 곳이다.
명품을 걸치든, 직책을 달든,
그 앞에선 전부 무의미하다.
대통령도 그곳에서는 벗고,
대기업 회장도 그곳에선 끙끙댄다.
강단에서 목청껏 강의하던 사람도,
회의실에서 권위를 휘두르던 사람도
그 방 안에선 결국 배에 힘주는 한 인간일 뿐이다.
일을 보는데 무슨 품위가 필요한가.
쾌변이면 인생이 다 풀릴 것 같고,
변비면 시인이 된다.
“무(無)에서 유(有)를 짜내는 고통…”
설사는 재난이고,
혈변은 두려움의 신호다.
그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를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를 마주한다.
눈 돌리고 싶어도,
자신의 흔적만큼은 확인하게 된다.
“나는 안 그래요”라고 말할 사람?
없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부끄럽다고? 아니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지로 감추려는 태도야말로
진짜 가식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 한 번 이상,
그 방에서 인간으로 환원된다.
자존심도, 허세도, 타이틀도
전부 내려놓은 채 앉는 그 자세.
그게 진짜 인간이다.
냄새, 자세, 소리, 표정…
모든 포장이 찢겨 나가는 순간.
결국 남는 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주한 내 민낯.
화장실은 ‘존재의 껍질’을 벗겨내는
지구 최후의 진실의 방이다.
며칠 전 새벽 1시,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매운 짬뽕처럼 속을 뒤집었다.
나는 소파에서 등을 돌리고 잠들었다.
아침이 와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했지만,
속은 요란했다.
버스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참고,
결국 화장실 앞에서 무너졌다.
앉는 순간,
아내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제야 들린 그 울림.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배탈 난 기분이었다.
또 한 번은, 아이에게 화냈던 밤이었다.
“왜 넌 항상 문제야?”
내 말이 아이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화장실에 앉아 알았다.
말도, 때로는 배설되어야 한다는 걸.
걸러지고, 정리되고, 흘러나가야 한다는 걸.
우린 너무 많은 걸 참는다.
화를 참고, 질문을 삼키고,
말해야 할 것까지 눌러둔다.
참는 데 익숙해지면
비우는 법을 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비극은 공포와 연민을 배출해
인간을 정화한다고.
그 카타르시스를 나는
변기 위에서 더 깊이 이해했다.
몸이 놓이는 순간,
감정도 따라 흘러내린다.
그건 영화도, 시도, 상담도 흉내 낼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정화의 순간이다.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의 공간이 아니다.
내 안의 잔해와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잠시 내려놓는 곳이다.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이 흔한 말이,
사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정직하고 철학적인 선언일지도 모른다.
“나, 나 좀 정리하고 올게요.”
그리고 돌아온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으로,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진짜 볼일’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