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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ug 16. 2020

반려인간의 조건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하려면 몇 년이나 살아야 할까? 10년? 20년? 50년?!! 

우리 부모님만 하더라도 벌써 40년이 넘게 함께 살아오셨고, 근래까지만 해도 이혼이 죄악시되던(여자에게만) 시대였기에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파트너로 살아온 커플은 정말 흔하다. 


나는 겨우 결혼 8년 차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들에 대해 한마디 얹고 싶어도 내 경력?이 부족한 건 아닌가 싶어 쉽게 입을 다물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내 말이 일말의 도움이 될 수도 있을까? 비혼인 한 친구는 나에게 "결혼한 커플 중에 부럽다고 느낀 건 니네 커플뿐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가장 큰 차이는 아이가 없다는 점이었지만 그것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평가를 발판 삼아 우리의 좋은 점, 나아가 파트너로서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직도 결혼이 환상이니?


TV를 보면 아직도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할 사람은 처음 본 순간 딱 느낌이 온다던데, 정말 그래요?" 나는 이 질문이 정말 별로다. 심지어 더 별로인 것은 그 질문에 "네! 저는 그녀를 본 순간 머릿속에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어요!" 같은 말을 해맑게 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에 그건 결혼할 운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첫눈에 외모에 반한 순간이 아닐까. 


결혼에 대한 저런 운명론적 환상이 불행한 커플을 양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딘가 내 짝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환상. 혹은 소개로 만났더라도 일단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면 신비로운 무언가의 작용으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될 거라는 환상. 비혼주의자가 늘어나는 시대에도 이런 질문과 환상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다. 물론 짧게 만나더라도 잘 맞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를 만나 파트너가 되었다면 큰 행운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곁에 있으며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고 서로를 맞추어 나가는 사이는 분명히 더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굳이 어떤 사람을 반려인간으로 추천하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바로 '절친'이다.  



웃음 포인트보다 빡침 포인트가 우선 


흔히 좋은 파트너의 조건으로 '웃음 포인트가 맞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은 지점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 생각만 해도 따듯하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다. 그림 속에는 노란색 조명을 켜두면 좋겠지. 하지만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웃지 않는 지점이 같은 사람'이다. 약자를 놀려먹는 비하 개그에 내 파트너가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면? 여성 혐오 콘텐츠를 파트너가 소비하고 있다면?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일을 두고 "에이, 장난이잖아~. 뭘 심각하게 그래?"라며 능글맞게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웃음 포인트가 다르더라도 나와 '빡침 포인트'가 같은 사람이 훨씬 낫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이 비슷해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아이가 본드도 아니고  


2세 계획이 없다는 말에 흔하게들 들고 오는 것이 "나중에 부부 사이가 멀어져."라는 말이다. 우리 언니 부부도 아이를 키우며 일종의 동지애가 생겼다고 하더라. 아이를 같이 키우면서 부부 사이는 더 끈끈해지고, 나중에 부부 사이가 소원해져도 아이가 있으면 헤어지기 어려우니 어떻게든 같이 살게 된다고 한다. 함정은 이 말이 전제하는 절대선이 '이혼하지 않기'로 설정돼 있다는 점이다. 

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동지애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 어려움이 없다면? 싸울 일도 줄어들고 각자 더 편안하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꼭 힘들고 지치고 서로의 밑바닥을 두드리면서 속을 박박 긁으며 그렇게까지 동지애를 쌓아야 할까? 

나중에 사이가 멀어지면 아이 때문에 살게 된다고? 우리는 그렇게 "애 때문에" 억지로 붙어살면서 불행해진 수많은 가정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가정에서는 부부 각자가 행복하기는커녕 그 위한다는 '아이'도 불행한 부모 사이에서 불행하게 자란다.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건 더 이상 현대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아이가 본드도 아닌데 벌어진 부부 사이를 어떻게 붙이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면 빠른 이혼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어디까지 대화해야 할까 


다들 알고 있는 좋은 배우자의 조건이 있는데 이는 가장 수행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바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다. 많은 부부들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대화의 부재다. 어떤 어려움이든 사랑한다면 그리고 대화가 통한다면 대부분의 것은 함께 넘어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오만일지 모른다. 글 첫머리에 쓴 대로 나는 아직 경력이 부족하니까. 

우리는 8년을 연애한 뒤에 결혼했다. 그 연애의 전 단계 그러니까 소위 '썸'은 2년 정도가 되었다. 썸 2, 연애 8,  결혼 8. 합이 18. (계산해보고 나도 놀람)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20년 가까이 친밀한 사이로 지내고 있는 남녀다. 처음부터 우리는 거칠 것 없이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애초에 당시 같이 다니면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친해졌기 때문에 교회에서 시작된 각종 사회문제부터 학문적 이야기, 직장 생활이나 알바를 하면서 겪는 고충들, 인간관계 등으로 확장되었다. 초반에는 어려웠지만 관계가 깊어지면서 '관계 자체에 대한 대화'도 차츰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당연히 서로의 가족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나 우리 집안에서 같이 겪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대화로 소재로 넘어왔으며, 법적인 관계가 되면서 그만큼의 관계 대화도 깊어졌다. 심지어 서로 다른 이성을 만나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결혼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들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우리끼리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답하겠다.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단점 등 나의 불만을 마음껏 분출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다 알고 있겠지만. 




결혼이 필수인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일은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좋은 파트너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보다 훨씬 든든하다. 또 집안일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는 생활 공동체로서도 참 좋다. 내가 아프거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한동안 일을 못해도 돈을 버는 사람이 같이 살고 있다면 불안함이 줄어든다. 돈이 없어 라면만 먹어도 같이 먹으면 웃을 수 있다. 경제 공동체로서의 기능이다. 

결혼은 비추지만 동거는 추천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반려인간은 바로 내 절친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절친이 되지 못한다면 좋은 반려자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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