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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Jul 19. 2020

비출산에 꼭 거대한 결심이 필요한가요

이런 사소한 이유뿐이라도 



꽤 오래 전에 쓴 비출산 관련 글에 댓글이 달렸다. 요지는 '부모의 희생으로 태어나 놓고 자기는 계산기 두드려 애를 안 낳겠다니 이기적이다'는 말이었다. 맞다. 나는 모부의 희생으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그 수혜를 입고 있다. 출산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린 것도 맞다.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출산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더 가난하고 더 아파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 

이것말고 그 어떤 거창한 이유가 더 필요할까?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누구도 내 애를 대신 키워주지 않는다. 그 선택은 되돌릴 수도 없고(결혼은 이혼으로 되돌릴 수 있다) 평생의 중압감을 준다. 나는 그런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우리 둘 다 그런 준비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임신하고 싶은 욕구, 출산하고 싶은 욕구? 나에게는 없다. (그런 욕구가 존재한다고는 들었지만.)  


최지은 작가의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에는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다양한 배경의 여성 18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의 비출산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의 비슷한 점은 지금의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꽤 큰 위로를 얻었다. 




별거 없지만 기록하는 날들 

아이가 있는 집들은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끝없이 아이의 사진을 찍는다. 커가는 모습을 한시라도 놓치기 싫은 마음이겠지. (나도 조카들 사진을 많이 찍고 많이 본다)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생활을 자세히도 기록해서 가정에 보내준다.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의 기록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부터도 삶을 기록하지를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셀카도 안 찍게 되고, 파트너의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 매일 함께 있기 때문일까?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감각을 잊기가 쉬운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물 먹은 솜처럼 권태기에 푹 파묻혀 사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기쁜 일이 있고 알콩달콩한 순간도 있고 배꼽 빠지게 웃는 때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중에 우리가 헤어지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영영 떠나게 될지라도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의 순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서. 아이가 없이 나이먹는 여자(또는 커플)의 이야기도 즐거울 수 있고 그 끝이 불행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누군가는 이런 문장마저도 미워할 수 있겠지만.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
최근 페미니즘의 실천으로서 비혼, 비출산을 지향하는 분들이 늘었다. 나는 기혼여성으로서 그들의 선택을 응원한다. 총선에서는 최근 창당한 여성 정당에 투표했다. 젊은 여성이 국회에 들어가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기혼'이라는 상태는 일시적이며 언제든 '비혼'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나도 나의 이익을 위해 비혼 여성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바라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 응원하고 있다. 

종종 인터넷에서 보이는 어떤 페미니스트에게는 기혼자는 무조건 남자편, 무조건 가부장제 부역자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았다. 제도 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부역자가 맞다. 이 나라에 사는 한 자동으로 자본주의 부역자가 되는 것처럼. 기혼 여성은 부역자이자 피해자이고 동시에 이 거대한 일의 당사자다. 비혼여성이 비혼을 실천함으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기혼자는 자신의 태도와 위치를 변화시킴으로서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실천을 믿는 만큼 다른 여성의 실천 또한 믿어야 한다. 그것도 일종의 연대가 아닐까.  



어제는 룸메와 함께 각자 가벼운 외출용 가방을 하나씩 샀다. 뭔가를 사기만 하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이 죄책감. 이번에는 룸메의 배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사람의 모든 지출이 전부 식재료일 수가 있어. 가끔 갖고 싶은 것도 한번씩 살 수 있잖아.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만 살아. 그치?" 룸메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가방이 오면 그걸 메고 달리기를 해야지. (요즘 런데이앱을 켜고 달리고 있다. 이제 겨우 초급 4주차입니다.) 

돈이 없어도 가끔 즐거운 소비를 하자. 서로의 통통한 배를 만지며 웃음을 짓자. 이기적이라고 남들이 미워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자. 내 삶은 내꺼니까. 그것만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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