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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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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ug 23. 2020

나도 예쁘고 싶었는데





강보에 싸둔 아기


언니는 예뻤다. 제조처가 같으니 바탕은 나와 비슷한 얼굴이었지만 눈이 엄마를 닮아 아주 크고 쌍커풀이 또렷하며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누구나 한눈에 '미인'이라고 할 만한 얼굴이었다. 키도 나보다 훨씬 컸다. 반면에 나는 아빠를 닮아 눈이 작고 쌍커풀도 없었다. 

언니가 엄마를 닮았다는 데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우리 엄마도 예쁜 사람이다. 엄마는 소위 동네 얼짱 출신. 동네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동네 사진관에 사진이 걸리는 젊은 날을 보냈다. 친구 엄마들을 모두 모아놓고 봐도 우리 엄마가 객관적으로 제일 예뻤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탤런트 만큼 예쁘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엄마는 왜 못생긴 아빠를 만나 결혼을 해서 나처럼 못생긴 딸을 낳았을까?' 

그게 어린시절 내 인생의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내 외모를 두고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너 어릴 때는 코 위로 버스 지나갔다고 했어. 콧대가 너무 없어서." 

"애기를 보겠다고 친척들이 왔는데 내가 창피해서 강보에 싸서 저 구석으로 밀어놨지 뭐야. 애가 통통하고 예뻐야 보여주고 그러지, 맨날 울어대서 깡마르고 얼굴도 볼품이 없었어." 

그런 말을 내내 들으며 자라는 동안 나는 당연히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한번도 나는 '예쁜 여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기 너무 어려워


언니는 또한 모범생이었다. 학교에서는 전교 1등을 자주 했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게다가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한번 안 가고 혼자 그렇게 공부를 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기특한 첫째 딸, 그게 언니의 포지션이었다. 언니가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밤 늦게 들어와도, 이부자리를 개지 않아도, 설거지를 절대로 하지 않아도, 아무리 버릇없이 굴어도... 부모님은 많은 것을 용인해 주었다. 

나는 늘 중간 정도의 성적을 얻고 조용히 책만 보는 세상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언니와 끝없이 비교당하며 주눅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언니에게 허용된 많은 기준들이 나에게까지 너그럽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었다. 내 마음속에서 나는 못생기고 멍청하고 뚱뚱한 여자였다. 



허벅지의 감동


나는 소위 하체비만 체형으로, 상체에 비해 다리가 굵은 편이다. 허벅지는 아주 튼실하다. (요즘은 운동하러 가면 이런 체형이 건강하다고 칭찬받는다. 허벅지가 굵고 근육이 많으면 노폐물 배출도 잘 되고 건강에 아주 중요합니다.) 당시에는 굵은 내 다리가 부끄러워 항상 가리고 다녔다. 치마는 거의 입지 않았다. 나의 적나라한 허벅지를 룸메가 처음 본 날은 우리가 연애를 하던 시절, 한 여행지에서였다. 저녁에 씻고 반바지로 갈아입고 나온 나를 보며 룸메는 '허벅지가 예쁘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섹시하다고 한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나는 내 허벅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내가 싫어하던 나의 일부를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예뻐해 준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감동을 느꼈다. 

그는 내 허벅지만 예뻐한 게 아니라 몸 구석구석을, 심지어는 내내 못생겼다고 생각한 내 얼굴까지 예뻐했다. 나도 사랑하지 못했던 내 몸을 정말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니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나의 자존감이 올라갔다. 이전에도 로맨틱한 관계의 남성들이 있었는데 왜 유독 룸메만 나의 자존감에 도움을 주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전의 남자들은 애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너무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나는 나를 좋아한다. 당연히 단점도 많지만 그래도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서 어느 정도 놓여난 이유도 있겠으나 끝없이 이데아의 예쁘고 멋진 여자와 나를 비교하는 짓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걸 온전히 내 스스로 해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랜 세월 스스로 깎아먹은 자존감이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올라가기란 꽤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딱히 그게 룸메에게 엄청나게 고마운 건 아니다. 나도 그를 많이 예뻐해 줬으니까.) 

아직도 남들이 보기에 나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일지라도, 괜찮다. 나에게 멋지고 예쁘면 되니까. 내가 나를 믿으면 되니까. 그래도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자존감이 떨어지려고 하면 주변의 도움을 좀 받자. 나를 마음껏 예뻐해 줄 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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