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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룸메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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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ug 16. 2021

"너는 무슨, 마네킹이니?"


지난 밤 꿈 속에서 나는 친구 재희와 만났다. (재희는 실제로 내 친구이지만 근래 만난 적은 없는 사이다.) 그 친구와 드디어 만난 자리는 떠들썩한 어느 술자리 모임이었다. 나는 룸메와 함께 참석했고 재희는 혼자 왔다. 나는 오랜만에 재희를 만난다는 사실에 들뜨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재희는 눈이 동그랗고 예쁘며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타입이다. 그런 재희가 어느 순간 술에 잔뜩 취해서 몸을 흐느적거리더니, 내 룸메의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나, 너랑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응?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그 남자는 내 법적 배우자인데? 

 

어리둥절한 나를 보며 재희는 웃었다. 그냥 웃은 것도 아니고 룸메의 팔짱을 끼고선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는 웃음을 나에게 보냈다. 룸메는 이것 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싫지는 않은지 팔을 빼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재희가 심한 장난을 친다 생각하고, 

"뭐야, 그런 장난은 그만 해." 하고 어물쩡 상황을 넘겼다. 


술자리가 파하고 주변 정리를 할 무렵이었다.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응, 그러니까 내 룸메와 재희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촉이란 걸까? 내가 찾아낸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두 사람이 껴안고 있었다. 옷을 다 입은 채였지만 분명히 무언가 일을 치른 후의 느낌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 웃었다. 그 와중에 룸메는 또 난처하다는 표정을 하고 가만히 있었다. 재희는 예의 사랑스러운 웃음을 나에게 지어보였다. '헷, 어쩌지? 저질러 버렸어.'라고 말하는 듯한 웃음. 


재희는 나를 보고선 곧장 내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렸다. "아니 근데 왜인지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어. 잘 안 되더라."라면서. 나는 그 상황이 어이 없으면서도 웃겨서 하하 웃어버렸다. 그러고는 재희에게 말했다. 

"야, 나도 니 남친이랑 잘 거야. 알았어?"

재희는 곧장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 니가 먼저 했잖아. 나 니 남친이랑 잔다. 알겠어? 지금 약속해."

나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재희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손가락을 걸었다. 여전히 애교를 부리듯 몸을 비비 꼬면서. 그런 재희가 얄밉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기도 하여서 나는 참으로 기가 찼다. 재희에게 또 나 자신에게도 기가 찼다. 


짠. 

그렇게 꿈에서 깼다. 

꿈에서 주인공은 나와 재희였는데, 일어나보니 옆에서 자고 있는 룸메에게 화가 났다. 

"야, 너는 무슨, 마네킹이니? 왜 가만히 있어?"

비몽사몽하는 룸메에게 꿈 얘기를 해주고 이렇게 일갈하자 그는 허허 웃으며,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확실히 거절할게."라고 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확답을 들으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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