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과 정리로 보낸 저녁
좋은 기회가 생겨 제주에 오게 되었다. 무려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머물 예정이다.
어느 분이 출장을 떠나시는데 키우고 있는 세 마리 고양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신 오래된 집을 무료로 빌려주는 조건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가슴이 뛰어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제주에 며칠만 다녀온다고 해도 너무나 좋은데, 무려 40일이라니!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도 걱정도 된다.
낮에 헤어지며 조금 울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살게 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지는 건 처음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연애를 할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걸, 이번 별거를 통해 새삼 알게 되는 것 같다.
짐을 이고 지고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공항의 야자나무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마침 집주인께서 제주 시내에 볼 일이 있었다며 픽업을 나와 주셨다. 생각보다 나이가 꽤 있으신 남성분이었다. 사실 메시지로만 연락을 주고 받았을 때는 훨씬 젊은 분이라고 예상했었다. 표현 하나, 문장 하나마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웠으며 나를 배려해 주셨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 배려와 세심함에 안심한 것도 있다. 이런 분이 사시던 집이라면 크게 불편하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와 한달을 지내게 된 하우스 메이트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유다. 함께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둘 다 고정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올 수 있었다. 이번 기간 동안 진행하던 그림책 작업을 완료해 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제주 시내에서 밥을 먹고 나왔더니(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제주 시청 앞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사방이 깜깜해져 버렸다. 저녁에 도착했기 때문에 오늘은 이동해서 정리까지가 하루이다. (저녁 비행기 값이 싸다.)
집주인께서 차근차근 집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떠나셨다. 아직 출국은 아니고, 근방에 있는 다른 집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남아 우리를 경계했다. 오래된 집의 냄새 속에서 첫날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