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굴 탐방과 여름문구사

by 윤준가



정식 청소 알바 두 번째 날. 내가 도착했을 때 어제 묵은 손님들은 이미 체크아웃 한 뒤였다. 올해 독채 공간의 첫 손님들은 숙소를 깨끗이 사용하고 가셨다. 오늘은 혼자 배운 대로 청소와 정리를 하고, 사장님이 마지막에 빈 곳을 체크해 주셨다. 오늘은 2시간 1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내일은 조금 더 빨라질 수 있을까?

청소 알바가 힘들 것 같아서 오늘은 집에서 일하려고 했는데, 마침 유가 만장굴에 가겠다고 해서 같이 간다고 했다. 나는 동굴에 가본 적이 없다. 제3땅굴은 가봤지만, 거긴 사람이 판 땅굴이니까. 청소 일을 마친 뒤 정류장에서 유를 만나, 바로 앞에 있는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가 따로 없이, 사람이 들어가면 인원수 대로 밥상을 차려주는 곳이었다. 밥이 조금 질었지만(나는 진밥을 잘 못 먹는다) 반찬들은 간도 적당하고 맛이 좋았다. 후식으로 식혜도 있어서 한 컵씩 마셨다.

만장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제주 동쪽의 관광 코스로, 입장료는 2,000원을 받는다. 701버스를 타고 만장굴 정류장에서 내린 뒤 990버스로 갈아타고 만장굴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데, 990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 30분 정도라고 한다. 일단 갈아탈 버스도, 택시도 하나 보이지 않아 만장굴 입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나는 이 선택을 하루 종일 후회하게 된다. 이때 2.5km를 걸었고, 만장굴 안에 들어가 다시 왕복 2km를 걸었다. 이미 오전에 청소를 하고 온 나는 다리가 무척 아팠다. 게다가 어제 pt 선생님과 한 운동의 여파도 아직 있었을 것이다. 만장굴을 보고 나와서는 택시를 타고 일주도로까지 가서 다시 701버스를 타고 동녘도서관에 갔다.

IMG_8855.jpg?type=w773 만장굴 가는 길의 밭. 밀밭인지 보리밭인지 잘 모르겠는데 여튼 아주 좋았다. 바람이 불면 수수수수- 하는 소리와 함께 근사한 물결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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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852.jpg?type=w773 만장굴은 생각보다 더 크고 넓었다. 심지어 안쪽에는 광장 같은 곳이 있어서 저렇게 벤치도 놓아두었다.




IMG_8851.jpg?type=w773 만장굴 매표소 앞에 고양이 가족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며 어른들이며 모두 모여 "하아아아" 감탄하며 구경 삼매경.





동녁도서관은 내가 평소 다니는 원당도서관만큼 작고 소박해 보였다. 나는 작업 중인 책 원고를 프린트하러 들어갔고, 유는 보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거주민이 아니라 책을 대여할 수는 없었지만 도서관 직원들은 친절했고 종합자료실도 따뜻하고 깨끗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유가 아침에 윗집 언니로부터 근방의 여름문구사와 포포를 소개받았다고 하여 일단 여름문구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조금 걸으니 나왔다. 알고 보니 내가 어제 지나갔던 건물이다.

여름문구사는 정말로 문방구라기보다는, 귀여운 소품숍이다. 자체 제작 상품도 보이고 위탁 상품도 운영자 취향에 맞추어 여러 종류 들어와 있었다. 가게 안이 유난히 밝고 귀여워, 마치 동남아의 어느 바닷가 작은 가게에 놀러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동남아 인도네시아 빼고 안 가봤음) 내가 산 것은 <오늘의 바당>이라는 독립출판물이다. 세화에 사는 중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곁들여 만든 바다에 대한 사진집이다. 늘 바다를 보며 사는, 바다에서 놀고 바다에서 우는 아이들이 궁금했다. 이런 바다 앞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바다가 들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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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다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지만 지금 집에 가서 어느 세월에 밥을 안치고 상을 차려 저녁를 먹는단 말이냐. 역시 아침에 윗집 언니가 소개해 주셨다는 심야식당 포포가 바로 근방에 있었다. 여긴 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고, 저녁 6시에 문을 연다. 저녁 6시면 서울에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주에선 꽤 늦은 시각이다. 요리 메뉴는 가격이 좀 부담스러워서 해물백짬뽕을 먹었다. 하얀 국물에 게, 미더덕, 오징어, 딱새우가 들어 있었다. 국물은 칼칼, 시원하고 면은 쫄깃, 짭짤했다. 해물 신선도도 괜찮았다. 만족스러운 한 그릇.

천근만근 다리를 끌고 버스를 탔다. 한동리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또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정말이지, 왜 아직도 순간이동을 못 하는 거지? 대체 내 초능력은 언제 생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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