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급결성 패키지 투어, 발목 부상

by 윤준가




아침으로는 오일장에서 산 반찬인 조개젓, 연근조림, 도토리묵에 달걀프라이를 먹었다. 청소 알바를 갔다. 청소를 하기 전에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사장님은 원두 세 가지를 사두고 매일 바꿔서 내려 주신다. 커피를 다 마시면 각자 흩어져 청소 시작. 며칠 청소를 하며 느낀 점은, 숙박 시설 청소는 머리카락과의 끝없는 전쟁이라는 것. 전부 싹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한 가닥이 발견되기도 하고, 바닥을 닦으며 지나간 나의 머리카락이 오히려 떨어져 현장을 훼손? 시키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눈에 불을 켜고 둘러봐야 한다. 청소하는 입장에서는 힘들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새 숙소에 갔는데 남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싶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청소가 끝날 즈음, p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단골 손님 한 분이 자동차 렌트를 못 하셨다며 언니의 차를 오늘 빌려 쓰기로 하셨단다. (황금 연휴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와서, 제주의 모든 렌터카가 품절이라고!) 그러면서 나와 유도 오늘 그 차를 타고 구경을 좀 다니라는 내용이었다. 어제 워낙 피곤하기도 했고 돈도 많이 써서 오늘은 집밥을 먹으며 일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치만 우린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니까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래서 결국 p언니의 단골 손님과 친구, 나와 유. 이렇게 네 명이 급결성 패키지 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일단 점심을 먹으러 경미휴게소에 갔다. 경미휴게소는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조그만 가게인데,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해물라면과 성게덮밥, 멍게덮밥, 한치덮밥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나온다. 해녀들이 갓 잡아온 해산물들이라 신선하고 맛있다(고 한다.) 나는 성게덮밥을 먹고 싶었는데 오늘부터 한다던 성게덮밥은 없었다. 오늘 메뉴에 오르는 게 아니라 오늘 물질을 나가셨다고 한다...흑흑 (내일 개시) 나는 해물라면을 먹었고 다른 분들은 멍게덮밥을 드셨다. 해물라면은 7000원인데 문어와 오징어, 조개가 실하게 들어 있다. 해물라면도 이곳 유명 메뉴다.

커피를 마시러는 성산플레이스라는 곳에 있는 카페 도렐에 갔다. 아니 여기 제주에 이런 곳이? 싶을 정도로 세련된 공간들이 있었다. 커피는 좀 신맛이 있었다. (나는 신 커피 싫어함) 역시 제주에서 커피는 요요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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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3_image_2786156988.jpg?type=w773 성산플레이스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 얘 진짜 너무너무 귀엽지 않나요? 으아.





다음 코스는 소심한책방. 이곳은 버스로 가기 좀 애매한 위치라 이 기회에 오게 되어 다행이었다. 소심한책방에 책을 입고해 놓고 인사도 한번 못 했는데, 드디어 얼굴을 비추고 나도 책방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님은 안 계시고 직원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만든 책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여쭤봤더니 품절이라고 하셨다. 나중에 재입고를 하기로 하고 나왔다. 작은 책방에 가면 가급적 책을 사서 나오려고 하는데 오늘은 내가 찾는 책이 없었다. 하긴, 여기서 책을 사가면 돌아가는 짐이 더 무거워질 테니, 유의해야 한다. 다음 코스로 비일상잡화점을 가려고 했는데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포기하고 집으로 갔다. 음, 정확하게는 우리가 머무는 집을 구경시켜 드리려고 같이 들어왔다.

이 집의 오리지널 빌트인 낡은 벽장과 찬장, 리얼 빈티지 전등을 보며 다들 감탄하셔서, 내 집도 아니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간단한 다과를 나누고(제주우유와 저번에 사온 비스킷) 퇴근하는 p언니와 합류해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고기를 먹기로 했다. 성산의 한 정육식당에 갔는데 흑돼지와 백돼지의 가격 차이가 적어서 흑돼지로 먹었다. 다섯 명이 목살 한 근, 삼겹살 한 근을 먹었다. 고기도 맛있게 먹고 맥주도 한 잔씩 곁들이고 기분 좋게 나오는데...

바닥에 단이 있었던 걸 몰랐다. 발이 푹 꺼지며 발목이 확 꺾였다. 다들 걱정해 주셨고 나도 꽤 아팠는데 이게 얼마큼 다친 건지 감이 잘 안 왔다. 돌아오는 동안 점점 발목이 시큰시큰해지고 발을 딛으면 통증이 찌르르 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집에 얼음이 있어서, 계속 얼음 찜질을 했다. 지금은 열심히 찜질을 해서 약간 가라앉는 추세인 듯한데 내일 아침에 상황을 봐야겠다. 내일 바로 병원에 가보려고 한다. 도보 여행자에게 멀쩡한 발목은 가장 소중한 덕목이 아닌가. 한달이나 남은 제주 생활을 이런 발목으로 어떻게 하려나, 걱정이 앞선다. 당장 알바를 하러 가는 길도 15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별것 아닌 부상이길 바라고 바라고 있다.

마침 내일은 사전선거 시작일이고 나는 청소 알바가 없는 날이라, 읍사무소에 가서 투표를 하기로 했다. 어제 오늘 외식을 많이 해서, 한동안은 집밥을 먹어야 하는데, 과연 점심 때 읍내에 나간 우리가 외식을 않고 들어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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