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의원, 사전투표, 횡단보도
어제 자기 직전까지 냉찜질을 했다. 발목을 삔 직후에 언니들이 '냉찜질을 해야 한다'라고 말해주어서 별다른 오류 없이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고 유효했다. 역시 언니들 말을 잘 들어야 돼. 어제 저녁보다 더 부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통증도 여전하고 이 정도 붓기라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어제의 계획으로는 오늘 다른 집 분과 함께 버스 타고 읍사무소에서 투표를 하려고 했는데 일단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수가 없으니까 택시를 불러서 가려고 약속은 취소했다. 오후에 병원과 투표를 처리하기로 했다. 유는 마저 그릴 그림이 있었고 나는 마저 교정할 책이 있어서 각자 할 일을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찍 움직이는 지역분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했을 때 병원은 오후에 가야 안 기다릴 것 같았고. (아마도 나는 물리치료 해야 하니까 병원에 오래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유가 너무 오래 기다린다.) 참, 아침은 밑반찬에 청국장찌개를 먹었다. 저번에 두부스크럼블 만들고 남은 두부 반쪽에, 레토르트 청국장찌개를 이용해 만들었다. 아침이 꽤 든든해서 점심은 간단하게 냉동만두를 데워서 먹었다.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2시에 맞추어 택시를 불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집의 주소는 도로명주소였는데 택시 기사는 구주소를 원하셨다. 당장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대충 집 위치를 설명드렸다. 어쨌든 골목 어귀까지는 걸어서 나가야 했다.
세화의원은 작은 가정의학과 의원이지만 물리치료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의사는 발목을 요리조리 만져보시더니 인대가 다친 것 같다고 했다. 냉찜질을 틈날 때마다 해주라고, 발목 보호대를 줄 테니 채우고 있으라고 하셨다. 15분 정도 걸어서 청소 일을 다닌다고 했더니 걷지 말라고 하셨다.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계속 찜질을 하라고. 나는 원래 오른쪽 발목이 약해서(골반이 비뚤어지면 다리 길이에 차이가 나게 되고, 그래서 발목도 무리하게 된다.) 1년 배웠던 탱고를 그만둔 것도 발목에 무리가 가서였다. 이번에 잘못 관리하면 앞으로 몇 년이고 고생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예정된 이번 주의 아르바이트 일정을 모두 뺐다. 오래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계속 움직이며 청소를 하고 카페에 오래 서 있는 것도 당장은 불가능하다. 지금이 황금연휴라 5월 중 제일 바쁠 때인데 사장님들께 너무 죄송했다. 연락을 드리니 다들 걱정을 해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최근 몇 년 간 출퇴근을 하지 않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을 못하게 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이 낯설어졌다. 아, 이런 것이었지. 다시 기억이 살아났다. 만약 이럴 때 고용주가 화를 낸다면 어떨까? 그런 경우를 본 적이 많았다. 아픈 것도 자기 관리를 못한 직원 탓이라며 일이 안 된 데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상사들을 보았다. 아픈 것도 불편하고 힘든데 직장과 상사 눈치를 보며 두 배, 세 배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그런 상황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날들. 그런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지금의 프리랜서 생활이 (가난해도) 훨씬 쾌적하고 좋다.
오늘과 내일은 사전투표날이다. 이 동네의 사전투표소는 구좌읍사무소. 세화의원과 읍사무소는 500미터 거리인데 이 거리를 태워줄 택시는 없다. 내일 다시 택시를 타고 나와 투표를 하기엔 더 힘들 것이다. 오늘 해야 한다. 절룩이며 천천히 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 읍사무소로 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내가 천천히 걸으니 차들이 애써 기다리는 낌새가 보인다. 녹색불은 불안하게 깜박인다. 신호가 이렇게 짧았구나. 다리가 아픈 사람들은 길 하나 건너는 것도 쉽지 않구나. 장애인이동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프니 그제야.
처음으로 사전투표를 해본다. 생각보다 더 간단했다. 신분증을 주면 스캔을 해서 바로 내 이름이 뜨고, 지문인식으로 본인 확인을 하면 투표용지를 옆에서 프린트해 봉투와 함께 준다. 그러면 기표소에 들어가 도장으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고, 투표용지를 봉투에 넣어 봉한 뒤 투표함에 넣는다. 내 투표용지가 잘 보관되어 의심 없이 개표된다면, 아주 좋은 투표 방법인 것 같다.
읍사무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TV를 보며 밥을 먹었다. 낮에 먹었던 만두를 또 한 접시 데우고 묵은지로 김치전을 만들었다. 유가 김치전에 참치를 넣으면 맛있다고 해서 한번은 안 넣고 한 번은 넣고 만들었는데 확실히 맛이 좋았다.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씻었다. 씻는 데에도 발목이 아파서 시간이 더 걸렸다. 방 안에 앉아 일을 할 때도 찜질을 해야 하고 발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니 허리가 아팠다. 아이고, 첩첩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