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종일 집, 고양이, 블러드오렌지

by 윤준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목에 약간의 차도가 있었다. 하지만 전날과 비교해 약간이지, 여전히 붓기와 통증이 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하나,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그렇다면 좀 서둘러야 하는데. 약간 진정 국면인 것 같은데 한의원에서 혹시 더 자극되어 악화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망설이다 결국 주말 동안 차도를 보고 더디 나으면 월요일에 한의원에 가보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에 연락해서 다음주에도 한동안은 일을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제주까지 와서 이렇게 집에 박혀 있는 나도 참 답답하고 어이가 없다. 일만 하지 말고 좀 쉬라는 뜻일까? (본래 육지 집에서 많이 쉬었는데) 틀어박혀 작업이나 하라는 의미일까? (이쪽이 더 유력)

어제 이응이가 돌아온 뒤로 녀석의 애교에 녹아나고 있다. 이응이가 집에 있을 때 내가 밖으로 나가면 곧장 다가와 다리에 몸을 얼마나 열심히 부벼대는지, 빨래를 널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그 다리의 움직임을 즐기듯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비벼댄다. 아니 이렇게 애교 부리는 녀석이 그동안 어디 갔다 왔어?

아침으로는 어제 유가 만든 카레와 밥을 먹었다. 점심으로는 집주인이 남기고 간 비빔면(라면)과 만두 조금, 달걀프라이를 먹었다. 저녁은 파전을 부쳐 먹었다. 저녁의 파전은 유가 가져온 쪽파로 만들었는데, 집에 채소가 별로 없어서 집주인의 텃밭에 다녀왔다. 그동안 나는 빨래를 돌리고 널었다.

이렇게 다리를 다치고 보니, 유가 없었다면 발목을 다치고 나서 곧 서울로 돌아갔을 것 같다. 혼자 산책을 나갈 수도, 장을 볼 수도, 쓰레기를 버릴 수도 없는데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어찌 감당하고 이곳에 혼자 있었을까. 유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유도 혼자였다면 개에게 물렸을 때 돌아갔을 것 같다고 한다. 처음 이 집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 하우스메이트가 구해지지 않으면 혼자라도 꼭 오겠다고 했었다. 그저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는 게 좋아서 다른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집이 오래되고 벌레도 꽤 나오고(나는 벌레공포증이 좀 있다) 또 너무 조용한 곳에 있어서 혼자는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 이 집은 멋진 낡은 집이다. 멋진 벽장과 찬장이 살아 있고, 문살도 구름 모양 리얼 빈티지 유리도 아주 좋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도 어둠이 내리면 마당이 보이는 문을 열기가 무섭다. 낯선 곳에 둘이라서, 다행이다.

오늘은 택배 두 개가 도착했다. 이곳에 와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필름 몇 통, 육지의 룸메에게서 온 나의 여름 옷들이다. 연휴 덕에 둘 다 발송된 지 거의 일주일 만에 왔다. 룸메가 내 방에서 박스를 찾아 내 옷들을 넣고 내가 쓰던 분홍색 박스테이프로 상자를 봉했을 장면을 생각하니 고맙고 그리운 마음이 든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다행이기도 하고 조금은 외로워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든다. 저 박스는 돌아갈 때 자리가 부족하면 다시 육지로 짐을 넣어 보내야지.

곧 어버이날이라서 양가에 블러드오렌지 한 박스씩을 보냈다. 5킬로그램에 3만 원, 배송비는 5000원. 저번 오일장에서 받은 명함을 보고 연락했다. 막상 돈을 보내려니 잔고가 부족해서 룸메에게 현금을 좀 부쳐달라고 해 입금을 완료했다. 곧 작업비가 들어올 테니까, 지금 돈이 없어도 일단 어버이날은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좋아들 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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