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래된 집의 아름다움

by 윤준가



묵고 있는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돌집에 샷시문이 달렸다. 안으로 들어오면 일단 단정한 문살에 눈길이 간다. 보일러가 들어오는 왼쪽 방 두 개에는 창호지가 발린 미닫이 문이 달렸다. 바닥 난방이 없어 거실처럼 쓰이는 왼쪽 방의 문에는 창호지 대신 반투명 유리가 끼워져 있는데 문살이 유달리 섬세하다. 각 방의 문 하단에는 구름 패턴이 새겨진 유리가 끼워져 있는데 이 모양이 또 귀엽고 예쁘다. 이제는 저런 모양의 유리를 구할 수도 없다고 한다.

방과 방을 이어주는 곳이 일반적으로는 거실로 쓰이는데 여긴 이 공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복도라기엔 넓고 거실이라기엔 거실이 따로 있고. 여튼 현관에서 바로 들어와 발을 딛는 공간에는 시원하게 짙은 고동색의 마루가 깔려 있다. 진짜 나무 마루다. 예전 초등학교 때 청소 시간이면 다같이 엎드려 왁스 걸레질을 하던 그런 마루 바닥. 맨발을 딛을 때마다 시원해서(!) 실내화를 마련해 신고 다니고 있다. 그리고 마루 위 나무 천장에는 멋진 빈티지 조명이 달려있다. 작은 원통 모양의 유리컵을 둥글게 붙여 놓은 모양새다. 각 컵에는 빛이 다양하게 반사되도록 현란한 무늬가 있다. 밤에 불을 켜면 불빛이 나무 바닥에 쏟아지며 은은하게 멋을 낸다. 지난 번 환영 모임 때 이 조명 밑으로 테이블을 옮겼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발목이 아프다고 종일 집안에만 있으니 집을 더 가까이 보게 된다. 부엌 옆에 있는 찬장도 원조 빌트인이랄까, 집을 처음 지었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은 오래된 붙박이 가구다. 부엌도 옛날 방식 대로 문이 달려 있어서 거실과 분리된다. 냄새나 연기가 나는 요리를 한 다음 부엌 창문을 열거나 환기 팬을 켜고 부엌 문을 닫으면 집안에는 냄새 밸 일이 적어 좋다. 게다가 부엌 창문을 열면 예쁜 돌담과 그 밑의 작고 푸른 풀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처음 부엌 창을 열고는 밖이 예뻐 한참을 내다보았다.

원래 이 집의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마당 한 켠에 조그맣게 지어져 있는데 진작에 폐쇄된 모양이고, 지금 쓰는 화장실은 집안 뒤편에 추가로 만들어 붙인 공간이다. 집의 뒷문(역시 창호지 문)을 열고 나가면 샷시 문이 바로 하나 더 있고 화장실이다. 화장실 문이 두 개인 셈이다. 화장실에는 창문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내내 안 건드려도 될 만큼 작아서 신경쓰지 않으려고 전혀 열지 않고 있다. 주로 환기에 쓰이는 창문을 열면 바로 돌담이 보인다. 집이 길보다 훨씬 낮은 지대에 있어서 자칫하면 행인의 눈에 잘 띌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화장실 내부는 넓고 쾌적하다. 샤워기 수압이 약한 것이 흠인데 대신 세면대 수압은 아주 좋다.

무엇보다, 이 집의 특장점은 방마다 전면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나무 벽장이다. 짙은 나무색, 양각으로 장식된 그림과 패턴 장식의 테두리, 많은 수납 용량. 보는 이마다 감탄하는 이 벽장들은 이제는 문화유산이라고 불러야 할 것처럼 귀하다. 어느 목수가 이 자리에 정확히 아름답게 짜 넣었을까? 이 집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겠지. 오래되어 여기저기 뜯기고 긁힌 자국도 있지만 세월에 비해 잘 관리된 것 같다. 벽장에 달린 서랍에 가져온 옷을 정리해 넣었는데, 나무가시가 박히지 않도록 매번 조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설명이 안거리이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밖거리가 있다. 제주의 집들은 보통 이렇게 안거리, 밖거리 두 채로 나누어져 있다. 밖거리가 고양이들이 사는 창고다. 공간은 세 개가 나란히 있는 모양으로, 안거리 집안에서 한눈에 세 개의 문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첫 번째 공간은 오래된 부뚜막과 집주인의 책들이 있는 공간, 두 번째 공간이 고양이의 사료와 물과 화장실이 있는 고양이 방, 세 번째 공간은 박스로 만들어 놓은 고양이 집들과 창고 물품들이 있다. 마당은 전체가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서 흙을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 집의 왼쪽에는 커다란 텃밭이 있는데 농사를 짓지 않아서 한가득 들꽃(잡초)이 피어 있다.

조용한 집이다. 가끔 밥을 얻어먹으러 들락거리는 길고양이들만 아니면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도 없는 적막한 집이다. 이웃 어르신들도 밭 주변을 한번씩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고 가실 뿐, 큰소리 들린 적이 없다. 일주도로에서 15분은 걸어 들어오고, 차가 다니는 길에서 또 조금 걸어 들어와야 하는 이 조용하고 낡은 집에서 지낼 날이 이제 4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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