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동양인 여자 둘
“남아공에는 왜 갔어?”
남아공에 다녀올 거라고 하니 모두들 이런 질문을 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이다. 2010년 월드컵과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의 나라. 그리고 그 외에는 잘 모르는 나라.
나도 남아공을 전혀 몰랐다. 언니가 결혼 직후 형부 직장 발령을 따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살게 되기 전까지는. 언니는 그곳에서 아기를 가졌다. 한국에서 가족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으며 지내도 힘든 임신 기간을, 언니는 형부의 회사 사람들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한국인을 만나기도 어려운 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다. 나름의 결단을 내려 엄마가 언니의 산후조리를 위해 남아공 행을 결정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으셨고 경유까지 하는 복잡한 길을 혼자 가시게 할 수 없어 내가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남아공에 가게 됐다. 한국에서 남아공으로 가는 길은 직항이 없고 경유를 해야 한다. 인천에서 싱가포르로 6시간, 갈아타는 여유 시간 2시간,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요하네스버그까지는 14시간.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탄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열악한 항공기를 탄 것도 처음이다.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들이 대부분 오래된 기체라고 한다) 좁고 불편해 오이지처럼 절여지는구나 싶을 때쯤 ‘요하네스버그’ 표시가 화면에 떴다. 그러나 곧 닥칠 상황에 비하면 갑갑한 비행기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짐을 찾아 카트에 싣고 나가는 길이었다. 짐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동양인 여자 둘이라 만만해 보였던 걸까? 공항 직원이 나가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카트를 끌고 근처의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 어떤 승객은 보내고 어떤 승객은 우리처럼 붙들렸다. 둘러봐도 딱히 붙드는 기준을 모르겠어서 더욱 불안해졌다. (한국에서도 세관에 붙들려 봤는데 그럴 때는 수하물에 노란 자물쇠 같은 것을 채워서 표시해 놓았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언니의 산후조리를 위한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 짐에는 아기용품을 비롯해 미역, 육수 재료 등 남아공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한식 재료 그리고 김치, 장아찌 등 밑반찬이 들어있었다. ‘음식을 가져오면 안 되는 건가?’ ‘엄마가 몇 날 며칠 준비한 이 음식들 다 빼앗기게 되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들어간 사무실 안에는 검색대 같은 큰 책상이 4세트 있었고 책상마다 공항 직원들이 승객의 짐을 풀어 샅샅이 검사하고 있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행히 로밍 연결이 되어 이미 공항에 마중 나와 있는 형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형부의 말로는, 딱히 규칙에 따라 검사하거나 빼앗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복불복이라고 했다. 일단 짐이 많으면 그런 경우가 많다며, 형부는 일단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어를 못하는 척해라’였다. 엄마는 거의 못하시고, 나도 본래 형편없는 실력이니 영어 못하는 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공항 직원이 처음 열어본 것은 내 옷과 소지품이 든 가방이었다. 딱히 꼬투리 잡을 의도가 없었는지 불안해하는 우리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대충 짐을 뒤지다가 종이 카드를 건네주며 작성하라고 했다. (입국 신청서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형부의 지령대로, 나는 그의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척했고, 심지어 그가 “passport”라고 말해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가 이런저런 손짓으로 나에게 몇 번 설명한 뒤 나는 그제야 알아들은 척 여권을 꺼내 보였고, 그는 안심한 표정으로 내 여권을 보며 직접 카드를 작성하고 우리를 내보내 주었다.
짐을 끌고 입국장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 뒤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아시안 남자 - 형부가 보였다. 그제야 엄마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살았다’ 싶었다. 나중에 들으니 공항에서 그렇게 무작위로 짐 검사를 하다가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돈을 주면, 경우에 따라 뇌물수수로 잡혀갈 수도 있다고 하니, 역시 영어 못하는 척이 제일 좋은 대처법인 것 같다.
공항 밖으로 나왔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감흥을 느끼기도 전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한 햇볕이 쏟아졌다.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맑은 파란색이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아프리카의 공기구나, 하늘이구나. 내가 아프리카에 왔구나.’
한적한 길을 한참 달려, 언니와 형부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요하네스버그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작고 깔끔한 아파트였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자 몸이 무거워 공항에 함께 나오지 못한 언니가, 1년도 훨씬 넘도록 못 만난 언니가 산만큼 큰 배를 하고 온몸이 퉁퉁 부은 채로 서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와 언니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수없이 만난 우리 언니 중 가장 반가운 언니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의 첫날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