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는 정말 끝났을까?
요하네스버그, 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시.
왜 이런 수사를 붙이는가 하면 처음 요하네스버그 공항(정식 명칭은 OR Tambo International Airport ;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운동가의 이름을 땄다)에서 언니네 집으로 가던 길부터 참 이상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아프리카 땅을 딛었다는 감동과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랗고 높은 하늘과 시야에 걸릴 것 없는 너른 평야 그리고 한국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풍성한 나무들이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흙인가 싶은, '땅이 다르다'라고 말고는 딱히 표현하기 힘든 웅장함과 힘참이 그곳의 나무들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넓고 곧게 뻗은 도로와 웅장한 나무가 만들어낸 도시의 길은 뮤직비디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아름답고 쾌적한 길에 사람이 없었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도, 조깅을 하는 사람도, 어딘가로 바삐 이동하는 사람도 없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에는 별다른 주거 공간이나 시설이 없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도심으로 진입해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어쩌다 한 명씩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는 몸짓으로 천천히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한눈에도 몹시 남루한 차림의 흑인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극심한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로 알려졌고, 또 오랫동안 그 정책과 싸워온 불복종 운동으로 유명하다. 그 중심에 있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금세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펴고 나라가 평화로워지지 않듯, 아파르트헤이트는 끝났지만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누군가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모든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며, 흑인과 백인들은 점차 노력하고 있다고. 흑인들과 떨어져 지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악의는 없다고. 이미 흑인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세웠고 이 나라는 흑인의 나라라고. 기껏해야 요하네스버그에 두 달 남짓 머무른 내가 그곳의 모든 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저 내가 듣고 본 장면들을 잠시 적어보려고 한다. 다른 좋은 경험도 많았지만 이 이야기를 먼저 쓰는 이유는 그곳 흑인들의 삶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 않고는 남아공에 대해 어떤 다른 말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길이 그토록 조용한 이유는 아무도 함부로 나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땅이 넓은 다른 나라들처럼 다들 차를 이용한다. 가난한 흑인들은 버스택시(승합차로 버스 운행을 한다. 행인이 수신호로 목적지를 표시하면코스가 맞는 경우 선다. 매우 저렴.)를 주로 이용하고, 백인들은 대부분 승용차로 이동한다. 도심에도 행인이 없는 이유는 다들 길에서 만날지 모를 흑인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값나가는 물건은 금세 털린다고 한다. 스마트폰이나 지갑, 음향기기, 노트북 등등을 주의해야 한다. 백인들은(우리 가족도) 집의 주차장에서 바로 쇼핑몰의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길에 내리지 않는다. 쇼핑몰이 동네마다 상당히 큰 규모로 존재한다. 한국의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합정 메세나폴리스 같은 쇼핑몰들이 많다. 사람들은 다 그 안에 있다. 쇼핑몰에서 걷고 놀고 먹고 마시며 돈을 쓴다. 한동안 머물다 보니 가끔 조깅이나 자전거를 타는 백인을 본 적은 있지만 그런 이들은 아무것도 들고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맨몸으로 운동만 하고 돌아간다고. 보통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돈을 쓰는 사람들은 백인이고, 일하는 사람들은 흑인이다. (매니저들은 백인)
인구 대부분을 구성하는 흑인 극빈층은 따로 분리된 주거지역에 산다. 흑인 주거지역 중에서도 편차는 있겠지만 가난이 극심한 경우는 한국전쟁 무렵의 피난민촌과 비슷한 판잣집에 산다. (내가 아는 가장 비슷한 이미지로 설명) 그곳의 슈퍼마켓은 백인들이 드나드는 곳의 슈퍼마켓과 가격이 다르다. 흑인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물건값을 다르게 책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매를 못할 것이다. 일반 슈퍼마켓의 입구에는 물티슈가 구비되어 있고, 백인들은 그걸로 카트 손잡이를 닦는다. 흑인들이 만졌던 손잡이를 잡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HIV 바이러스가 흔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정부는 흑인들로 이루어졌지만 교육 자원이 부족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도로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 많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었고 대낮에도 가로등이 훤히 켜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재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대중교통도 원활하지 않았고 공항 직원도 경찰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백인들은 주로 아파트에 살거나 단독 주택 단지에 산다. 그리고 대부분의 집에는 전기 철조망이 있다. 대규모 단지는 단지 전체를 두르는 철조망이 있다. 모든 시설에 경비원이 있다. 단독 주택 단지를 방문하려면 경비원을 통해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작은 카지노가 함께 있었던 한 쇼핑몰에서는 입장 시 총기 소지 검사를 위해 가방을 열어 보여줘야 했다. 또 다른 쇼핑몰에서는 경비원이 산탄총을 들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로터리에 흑인들이 가끔 서 있었다. 대부분은 신호 대기하는 차를 상대로 구걸을 했고 일부는 신문을 팔거나 차의 전면 유리창을 닦고 돈을 받았다. 유리창을 닦는 것도 다짜고짜 먼저 비눗물을 바르는 식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시야를 가린 비눗물을 안 닦는다. 강매가 섞였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 건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딘가의 한적한 길에서는 어린 아기를 업고 땡볕에 하염없이 서 있는 소녀도 보았다.
이렇게 궁핍하고 가난한 이들의 모습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는 그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의 흑인들은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의 바로 곁에는 상위 1%의 부를 누리는 백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발전을 못한 지역이 아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늘 신선한 채소와 질 좋은 물건들이 많았다. 잘 지어진 쇼핑몰들은 서울의 그곳들보다 번쩍거렸다. 요하네스버그는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한다. 아프리카 경제의 심장부다. 백인 부자들은 헬기를 타고 와서 골프를 치고 승마를 한다. 풍광이 유명한 관광지 케이프타운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이 즐비하다.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 무엇도 재분배되지 않는 곳.
이상한 나라, 이상한 도시.
종식되었다던 아파르트헤이트는 빈부격차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