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던 동물들과 무엇이 다를까?
남아공에 와 처음으로 간 '관광' 같은 것이었다. 라이언 파크는 요하네스버그 근교에 있는 작은 동물원인데 워낙 사파리가 유명한 나라다 보니 작은 동물원이라도 규모가 상당했다. 여기서 규모란 동물의 수가 아니라 땅의 크기다.
입장을 하니 가장 먼저 나온 곳은 매점 겸 기념품 가게다.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동물 그림이 그려진 상품들이 많았고 동물 인형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다.
동물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식동물 구역과 육식동물 구역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끼 사자들이 뛰어노는 마당이었다. 사육사가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다 같이 사자 우리로 들어갔다. (응?) 새끼 사자 우리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새끼라고 해도 아주 작은 새끼는 없었고 최소 내 절반만 하거나 최대 내 몸만 했다. 그리고 새끼 사자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고 사나운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더 무서웠다. 이게 바로 사자구나, 맹수로구나. 무서워서 도무지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데 사육사들은 방긋 웃으며 사자를 만져 보라고 했다. 졸린지 구석에 가만히 있는 한 작은 새끼에게 다가가 등에 살짝 손을 대 봤다. 사자의 털은 아주 거칠었다. 더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너무 무서워 바로 손을 뗐다. 'TV 동물농장' 애청자였지만 실제의 사자와 놀 배짱은 없었다.
사자 우리에서 무사히(휴.) 나와 기린에게로 갔다. 기린은 초식동물 구역에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초식동물들은 절대 인간 가까이로 오지 않았지만 기린들은 죄다 인간들 쪽으로 와 있었다. 매점에서 기린 먹이를 사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기린의 얼굴 높이에 맞는 단 위로 올라가자 알아서 기린들이 찾아왔다. 두세 마리가 주변을 맴돌며 간식을 받아먹었다. 한국의 동물원에서도 기린 먹이 주기 체험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주는 먹이는 긴 나뭇가지 같은 것이 아니고 짧은 채소 블럭이었다. 그래서 기린들이 혓바닥을 내밀어 손을 핥아가는 드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기린을 무척 좋아하지만 기린의 길고 두껍고 검고 거친 혓바닥에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기린의 혀를 몇 번 손으로 느낀 뒤, '앞으로 내가 기린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찰을 해야 했다. 정말 기린을 좋아한다면 기린의 혀까지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이제 기린의 팬으로서 실격인가. 그런 생각이다.
단에서 내려와 땅에 있어도 종이 봉지를 들고 있으니 기린들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 달라고 달라고 졸랐다. 기린이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동물인가? 기린이 이렇게 식탐이 많았나? 옆에 나무들도 있는데... 기린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차를 타고 우선 초식동물 구역을 돌았다. 따로 사파리용 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타고 온 차를 그냥 타고 들어가면 되었다. 넓은 땅에 초식동물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원래 겁이 많은 동물들이라 차 가까이는 전혀 오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보며 지나왔다. 다들 평화로워 보였다. 마음대로 뛸 수 있는 땅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개체들끼리도 뚝뚝 떨어져 있었다.
육식동물 구역으로 들어가니 사자들이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먹으러 들어가는 중이었다. 아니, 먹고 나오는 길이었나. 낮이 되면 사자들이 통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침 일찍 서둘러 갔는데 사자들은 반은 활동 중이었고 반은 낮잠 중이었다. 암컷들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수컷들은 주로 혼자 있었다. 육식동물 구역에 들어가면서 푯말에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절대로 창문을 열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한 관광객이 창문을 열었다가 사자 머리가 차 안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당연히 위험한데 왜 창문을 열지?'라고 생각했다가 곧 나도 창문을 열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야 했다. 햇볕이 강해 반사된 창으로는 동물들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찍기도 어려웠다. 사자가 멀리 있기에 살짝 열어 보기도 했는데 곧 사자의 무시무시한 달리기 속도를 보고 얼른 닫았다. 사자는 생각보다 더 빨랐다.
동물원 이름대로 사자가 중심이지만 치타와 아프리카 와일드 독도 있었다. 치타는 나무 위에서 자거나 땅 위에서 자고 있었는데 몸통이 너무 가늘어서 놀랐다. 와일드독은 하이에나와 무척 흡사하게 생겼다.
사자, 치타, 와일드독, 기린, 얼룩말, 미어캣, 타조, 이름을 모르는 몇 종류의 영양. 600헥타르의 부지에 그 정도의 동물만 있었다. 서울의 동물원에서처럼 욕심을 잔뜩 부려 온갖 동물들을 칸칸이 욱여넣은 작은 우리도,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동물도 없었다. 악취도 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만은 못하겠지만 최대한 동물들의 삶에 맞추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별 것도 아니다, 그냥 넓은 땅에 멋대로 풀어놓으면 된다. 동물들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한국의 동물원과 아프리카 동물원의 차이였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동물원도 좋아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부터 동물원에 가는 일이 죄스러웠다. 내가 한번 더 가면 동물 한 마리가 더 잡혀 오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하나의 생명이 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전혀 행복하거나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동물원에 가고 싶지만 동물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아프리카의 '작은' 사파리에서 자연스러운 동물을 실컷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