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올라가
케이블카에서 내려 드디어 테이블마운틴에 발을 디뎠다. 말 그대로 높은 땅이었다. 절벽 아래 케이프타운과 대서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걸 제외하면 그냥 아름다운 공원과 다름 없었다. 바위가 많았고, 산 아래에는 자라지 않는 희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사이로 "테이블"의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형성돼 있었다. 이 고원의 크기는 좌우 3km이다. 산 정상에서는 케이프타운의 모든 곳을 볼 수 있다. 롱비치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 풍경, 라이언스헤드가 진짜 사자 머리처럼 보이는 각도. 깎아지른 절벽과 끝없이 푸른 초원. 아름다운 마을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조금 현실감이 없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실감이 들지는 않았다.
꼬불꼬불하고도 아름다운 길을 따라 사진도 실컷 찍으며 다니다 보니, SHOP TOP이라는 기념품점과 카페가 있었다. 저 카페는 뭘 팔든 엄청 비싸겠지? 과연 건축 자재를 어떻게 운반했을까. 케이블카로 옮겼을까? 자동차 같은 기계로 지고 올라왔을까?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에 건물을 지을 때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어쨌든 엄청 오래 걸리겠지? 식재료는 아마 매일 케이블카로 옮길 테고. 직원들은 케이블카 탑승이 무료겠지. 출퇴근이 더 힘들까, 더 즐거울까? 한강을 늘상 보는 사람들은 물공포증이나 자살충동이 생길 수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는데, 산 위는 정신 건강에 좋을까? 여튼 산 위에 돌로 지어진 작은 건물은 어느 모로 보나 예쁘고 신기했다. 테이블 위를 한바퀴 돈 다음 숍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케이블카 시간이 촉박하다고 환이 재촉해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별로 특별할 것 없었다.)
해는 금세 기울었다. 다시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기다리는데 석양이 시작됐다. 환은 계속 옆에서 무슨 말들을 했지만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넓게 펼쳐진 바다와 그 아래 도시와 마을들, 1,087m 위에 있는 넓고 평평한 땅이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너무 높고 광활해,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온 세상인 것만 같았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올라갈 때보다 더 사람이 꽉꽉 차 있었다. 만원 지하철 수준으로. 이렇게 사람들을 우겨 넣다니... 케이블카인데! 그런데 케이블카가 돌면서 내려오는 길, 갑자기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곡조와 가사였지만 그 안의 대부분이 부르며 즐겼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아공의 국가라고 한다. 이 사람들은 테이블마운틴을 보면서 애국심에 벅차 올랐던 걸까? 나는... 애국심이 절로 차오르는 일이 거의 없는데 (김연아 씨의 스케이팅을 볼 때 나도 모르게 '국뽕' 차오르는 걸 느꼈기 때문에 '거의'라고 적어둔다.) 이들은 이 풍경이 그토록 자랑스럽고 소중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