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자> 제작기 - 이미지 수집과 기획
물고기 시 그림집 <바다로 가자>는 말랑의 첫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기획하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지금은 품절/절판 상태입니다.)
*도서 소개는 아래 링크로.
https://blog.naver.com/malangbooks/221082322568
1. 시작
<바다로 가자>는 현재 한국의 최대 독립출판물 마켓인 언리미티드에디션7(이하 UE7)의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퍼블릭도메인 워크숍이었는데요, 유어마인드의 이로 님이 진행하셨습니다. 퍼블릭도메인, 즉 저작권 기간이 만료된 이미지를 가지고 편집하여 새로운 책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참여자들마다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책들이 만들어졌고 이 결과물은 UE7의 퍼블릭도메인 부스에서 판매되었습니다.
어떤 책들이 있었냐 하면,
오리 사냥 책, 소년 그림책, 쓰는 손 그림만 모은 책, 건물 그림만 모은 책, 인공위성 궤도 사진을 모은 책, 땡땡이 무늬의 기원을 찾은 책 등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제가 기억하는 게 이 정도입니다. UE7이 끝나고 남은 책들은 유어마인드에서 판매되었습니다. 아마 이 책들도 지금은 모두 품절 상태일 것입니다. 정말 특이하고 이상한 책들이었습니다.
유어마인드에서 소개한 <바다로 가자>
경향신문에서 UE7을 취재했는데 관람객이 딱 <바다로 가자>를 짚고 계셨어요. 럭키.
UE7 퍼블릭도메인워크숍 부스의 책들입니다.
2. 기획과 수집
저는 그림을 모으는 데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고, 퍼블릭도메인 텍스트도 함께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의 퍼블릭도메인 사이트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국내 사이트 '공유마당'을 뒤적였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김영랑 시인의 시 '바다로 가자'를 쓰기로 했습니다. 이 시에는 힘도 있고 눈물도 있고 파도도 물고기도 보석들도 있었습니다. 한 시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이 겹쳐지고 흘러갔습니다. 이 시에 맞추어 물고기 그림을 찾아 배치한다면 재밌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물고기 그림을 모았습니다.
한국의 퍼블릭도메인 사이트에는 그림이 제대로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래된 그림들은 주로 박물관 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데 문화재로 관리하다보니 돈을 내고 이미지를 사거나 게재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데 해외의 박물관, 미술관, 대학 도서관 사이트들은 그런 이미지들은 잘 관리하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파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참 부럽고요.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지면 더 풍성한 국내 출판물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겁니다. 정보는 나눌수록 수명이 길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오래된 것들을 가만히 놔두면 그냥 오래된 것일 뿐입니다. 그것들을 다시 들추어내고, 가공하면 새 콘텐츠가 됩니다. 그렇다고 저자의 인격권이 상실되는 것도 아니고 문화재를 훼손하는 것도 아닙니다. 원본은 원본대로 즐기면 되니까요. 오히려 전통이 살아나고 취향이 발견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기획을 하고 물고기 그림을 찾는 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물고기 그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슷한 그림들만 많이 나오고 다양하게 이미지를 살리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온통 어물전에 널부러진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가벼운 연필 스케치나 도자기 무늬까지 온갖 물고기 이미지를 모았습니다. 가급적 많이 모아서 그 가운데 추리고, 시의 한 행과 그림 하나를 짝 지어 작업했습니다. 그림 전체를 보여준 페이지도 있지만 시의 이미지에 따라 과감히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 사용한 이미지도 많이 있습니다. '대체 이게 어디가 물고기란 말인가' 싶은 그림도 모두 물고기 그림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기획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이로 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할 출판 기획자는 이로 님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저 같은 사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목받는 분입니다. (웃음)
한번에 다 쓰려니 좀 힘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2편으로 이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