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을과 순록 구경을 실컷 하고, 이동하는 날이 되었다.
호수 근처에 있다던 코티지는 가까운 마트가 차로 20분 거리였기 때문에 시티에서 미리 장을 봐 가기로 했다. 코티지에서 할 일은 1. 운 좋으면 오로라 보기 2. 가능하면 오로라 보기 3. 제발 오로라 보기였다.
2박 동안 갇혀 있을 준비를 했다. 퀵 파스타, 샐러드 채소와 토마토 수프, 감자와 연어를 샀다. 보드카에 타 먹을 음료와 감자칩, 핫초코, 와인까지 끌어안고 준비를 마쳤다. 쇼핑타운 천장에는 맑은 하늘과 구름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욘과 나는 로바니에미에서 처음 보는 맑은 하늘이라며 깔깔댔다. 장을 다 보고 나오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개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랑 할머니가 미리 덕을 쌓아주신 건 아닐까..
숙소에 도착한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 사이트를 보여줬다. 오로라 지수가 표기되는 사이트였는데, 여기서 제공하는 오로라 알람 같은 것도 있다고 했다. 그게 뭐야? 물어보니 오로라가 뜨면 폰으로 알람을 준단다. 24시간에 12유로라고 했다. 내 눈빛은 간절해졌고, 욘이 오로라 알람을 신청해줬다. 고마운 사람. 당장 핸드폰 무음을 풀었다. 작은 알림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지역을 입력하고 오로라 지수를 확인해보니 수치가 3 정도로 꽤 좋았다. 정말로 내일 밤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생일대의 기회. 자기 전 오로라 감상 기원제로 겨울왕국을 봤다. 어떻게든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일은 실제로 보기를 바라며 2021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하늘이 유달리 맑은 날이었다.
오로라 사이트를 확인했을 때 12월 31일은 1~ 2였다. 별로 높은 수치는 아니니까 안 뜨겠지? 하며 편히 잠에 들었다. 그러나 새벽 5시 반, 오로라는 떴고, 알람은 울렸지만 듣지 못한 채로 계속 자고 있었다. 왜 안 울렸지! 하고 보니 방해금지 모드는 해제되어있지 않았다. 아아.. 모지리...
다음날 아침, 사이트를 다시 확인해보니 오로라 지수가 바뀌어 있었다. 오늘 2시에서 5시까지 오로라 지수가 4라고 나타났다.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한 채 다리만 달달 떨었다. 욘은 밤에 불침번을 자기가 서겠다며 낮잠을 잤다. 언제 뜰지 몰라 너무 긴장되었다. 혹시 몰라 왔다 갔다 한 것만 세 번. 5시가 지나고 7시가 지나도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아 나 오늘 못 보는 건가.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지난 오로라 알람들을 쭉 보니 이틀 연속으로 뜨는 날이 많아 기대를 했건만 이번엔 아닌 걸까...
시끄러운 속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렇게 오로라를 기다리고 확인하는 시간도 재밌었다고. '그래, 우리가 이렇게 시간 보내는 것도 추억이지' 하며 마음을 놓으니 배가 고파졌다. 일말의 희망은 버리지 못한 채 저녁 먹으면서 기다려보자며 어제 먹다 남은 연어를 굽기 시작했다. 그릴이 5분 정도 남았을 때쯤, 욘이 한번 나갔다와보겠다고 했다. 여태까지 조용했으니 별일 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나지막하게 욘이 나를 불렀다.
-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이는 것 같아. 잠깐 나올래?
뭔데? 슬쩍 나가보니 뭔가 이상했다. 눈에 자꾸 초록색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핸드폰 노출시간을 올려 찍어보았다. 어? 혹시 오로라..?
맞았다. 나와 욘은 극 흥분상태가 되었다. 아니 이게 왜. 진짜?
본격 감상을 위해 욘은 신발을 갈아 신으러 들어갔다. 갑자기 그릴모드로 3분만을 남겨둔 연어가 생각났다.
- 카메라 가져와줘!!!!!! 그리고 오븐 다 0으로 돌려줘!!!!!!!!!!
- eveything 0???? okay!!!!!
숙소에는 울타리가 쳐져있어 더 앞으로 나가야 했다. 둘이 같이 도로를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옷을 좀 더 껴입을걸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일단 달리는 게 우선이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오로라를 지금 두 눈으로 봐야 했다.
- Shi****..... So beautiful.
하늘에 수놓은 초록색 커튼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절로 들떴다. 경이로웠다. 여러분 제가 마침내 오로라를 봤습니다!!!
30분 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깜깜해졌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방방 뛰며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추위가 느껴져 보드카를 한잔 마셨다. 너무 기뻤다. 잔뜩 웃으며 오븐에서 꺼내지 못해 말라비틀어져버린 연어를 먹었다. 덜덜떨며 차가워진 저녁을 먹어도 행복한 밤이었다.
폰으로,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둔 사진들을 보았다.
생애 처음, 새해 첫날 본 오로라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바로 포커스가 죄다 나가버린 것.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차분한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았다.
- 아, 한 번만 더 보면 너무너무 좋겠다.
- Nado. wow it was soooooo beautiful.
돌아오니 알람이 엄청나게 와있었다. 알람보다 욘이 빨랐다. 욘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금 떠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진짜 한번 더 뜰까? 내심 기대에 부풀었다. 보통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세 번 뜨니까. 다음 기회에는 꼭 포커스를 맞추어야지. 진정해야지.
휴대폰, 카메라를 충전해두고 심기일전을 마쳤다.
다음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