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 로드트립 여행기 (3)
라플란드 트립 중 욘의 버킷리스트 2. 순록 농장을 방문하는 날이다. 전날 투어 사이트를 보며 예약을 했다. 예약 사이트를 보면 순록 썰매, 농장 방문 등 다양한 옵션이 있는 투어들이 많다. 단순 썰매만 타고 오는 투어는 또 "little bit 심심"이라는 그의 말에 순록 밥 주기, 점심식사, 스노모빌, 순록 썰매가 모두 포함된 6시간짜리 투어를 선택했다. 오늘은 -7도 밖에 안 되는 날이니까! 용기를 내었다.
순록과 함께하는 삶은 어떨까. 궁금증을 한 아름 안고 픽업차에 몸을 싣었다.
시티에서 1시간 정도를 달려 순록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주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오늘의 투어 예약자는 나와 욘뿐이라고 했다. 오 값이 좀 비싸더라니 프라이빗 투어였나..? 어리둥절한 마음도 잠시, 우리밖에 없다니 신이 났다. 농장주는 오늘의 스노모빌 택시를 만들어주고는 더 두툼한 옷을 입는 게 좋겠다고 했다. 방한복, 방한 부츠를 챙겨 신고 순록 털로 만든 담요를 야무지게 덮은 후, 프라이빗 택시에 올라탔다.
펜스를 열고 숲 안으로 들어가니 절경이 펼쳐졌다. 눈으로 뒤덮인 높은 나무들을 사이로 지나가니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5분 정도 숲을 가로지르니 또 다른 펜스가 보였다. 여기를 열면 이제 순록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했다. 목에 종을 메고 있는 순록이 보였다. 이름은 핑키라고 했다. 목에 달린 종으로 친구들을 부른다고. 그녀가 사료를 한통씩 었다. 달리는 스노모빌에서 사료를 바닥으로 뿌리며 순록들을 유인하면 된다고 했다.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많은 순록들이 모여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밥 주기 시간! 사실 밥 주기 체험 정도로 인식했던 나는, 사료 몇 번 주면 곧 끝나겠거니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농장주는 계속 "more food?"라고 물어보며 사료통을 채워주었다. 욘은 소 농장의 아들답게 능숙하게 밥을 주었다. k-근성으로 뭉친 나도 열심히 따라 주었다. 준비한 사료 두 통(약 20kg 정도)을 모두 주고 오늘의 노동을 완수하였다. 어쩐지 손목이 시큰거렸다.
순록에게 밥을 다 주고 나서는 순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순록 농장은 반 방목형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야생에서 먹이를 구하기 쉬운 봄~여름까지는 펜스를 개방해 완전한 자연에서 살 수 있도록 순록을 풀어주고,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는 펜스 안으로 순록을 모아 두고 먹이를 직접 준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기 순록의 사망률도 낮아진다고. 본격 순록 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만 적어보자면,
순록의 털은 폴라베어 털과 똑같아 방수 기능이 있다고 했다.
순록은 윗니가 없다.
순록의 뿔은 털갈이처럼 시간이 되면 떨어지고 새뿔이 난다. 두 뿔이 떨어지는 시기가 비슷해서 한쪽을 찾으면 가까이에 다른 쪽이 있다.
순록이 이끼를 먹을 때는 눈에 이끼를 조금 즈려 비빈 후 눈과 함께 먹으며 수분을 섭취한다. 따로 물을 마시지는 않는다고.
순록은 항생제 없이 필수 백신만 맞힌 후 가능한 자연에서 살도록 한다.
순록을 도축하는 시기는 더 이상 아기를 갖기 힘들거나,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을 때라고 한다.
그녀의 눈에서 순록에 대한 애정이 깊게 보였다. 순록의 삶이 느껴지는 농장이었다. 그들에게 순록은 단순 가축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참 많은 것들을 고맙게도 받는다고 했다. 감동이었다. 이런 농장이 앞으로도 많아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그녀가 라플란드에 정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순록 농장 커뮤니티 가입과 본인만의 이어 마크, 순록 몇마리리가 필요했다. 그리고는 순록 농장 운영 생각이 있으면 본인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다. 욘의 노동력이 마음에 들었던 눈치였다.
농장의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그녀가 손수 만들어준 순록 수프였다. 아침에 그들을 먹이고.. 점심에는 그들을 먹었다.. 이게 바로 더불어 사는 삶일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로컬 베이커리에서 가져온 빵도 맛있게 먹었다. 방한복을 두툼하게 입어 추운 줄 모르고 있었는데, 따뜻한 수프를 먹으니 곧바로 몸이 노곤노곤 해졌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그녀가 어떻게 순록 농장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연애를 시작했는지, 투어를 온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등등. 오랜만에 피우는 타인과의 이야기 꽃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찰나, 썰매를 탈 시간이 왔다. 두 마리의 순록이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순록은 매우 똑똑한 편이지만, 따르는 습성이 있어 직접 썰매를 끌기 위해서는 약 3년의 트레이닝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길도 기억해야 한다고. 순록 썰매를 타기 앞서 썰매를 태워 줄 순록들과 친해지기 위해 작은 먹이 선물을 주었다. 아무쪼록 무거울텐데.. 잘 부탁해..
순록 썰매를 타고나니 농장주는 작은 바비큐 장소로 우리를 불렀다. 커피와 핫초코, 쿠키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다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간이 주어졌다. 순록 썰매를 끌어주던 마스터와 농장주의 남편분도 합류했다. 다시 시작된 도란도란한 이야기들.
이때, 썰매 마스터가 갑자기 성냥 없이도 불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불이 잘 엉겨 붙을 수 있도록 가느다란 칩을 만들어두고, 잘 마른나무껍질 위에 자석 두 개를 긁어 불씨를 만든 후 나무칩에 불을 옮겨 붙이는 방식이었다. 이 트레이닝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나는 실패했고 욘은 성공했다. 마스터가 불을 피운 사람은 내년부터는 일을 하러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욘에게 쥐어진 이직 목걸이.
티타임이 끝나고 귀가할 시간이 되었다. 빌려 입었던 방한복을 벗으니 몸이 새삼 가볍게 느껴졌다. 농장주는 선물로 순록뿔이 달린 목걸이를 주었다. 욘의 눈빛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함께 보낸 하루가 정말 재밌었다는 마지막 얘기를 나누며, 여름에도 또 오라는 애정 어린 초대를 받았다.
돌아오고 나서 오늘의 투어를 회상하다가 감동이 약간 식은 우리는 이 정도면 free-working 아니었냐며 웃기 시작했다. 사실, Free도 아니었다. 돈 내고 노동했으니. 우리의 투어비가 순록들에게 맛있는 이끼로 돌아가길 바란다. 욘은 라비아에 다녀온 느낌이라고 했다. 돌보는 대상만 달랐다고. 게다가 상당한 투어리즘이라 노동력을 아낄 수 있겠다는 호의적인 답변을 해왔다. 순록 농장 원하냐고 하니 바로 아니라고는 안 하고, 고민이 꽤 길었다..? 이러다가 덜컥 라플란드에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