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리다 보면, 내 의지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 지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지치지 않기 위해 동기를 부여한다. 가장 만만한 방법은 한 분야의 정상에 있는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따라 하는 것이다. 이 행위의 좋은 예를 하나 들자면 요즘 SNS에서 '나는 유노윤호다'라고 외치는 것이 유행이다. 이 말은 즉 '나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정도로 해석되겠다. 유노윤호는 이미 한 분야의 정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안무 연습을 열정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는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다”라는 오그라들게 멋진 명언을 남긴다.
'나는 유노윤호다'가 유행이 된 이유는 다들 지친 일상이 반복되자 지치지 않을 만한 동기가 필요했고, 이에 적합한 롤모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롤모델에 최적화된 사람이 나타났으니 유행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다. 유노윤호를 빌리는 행위는 열정이 식은 사람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끼쳤고, 나 또한 그를 빌리는 날엔 글을 쉬지 않고 썼던 적이 있다.
근데 롤모델을 따라 하는 행위를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주변에 래퍼가 되고 싶어 박재범을 롤모델로 삼은 친구가 있다. 친구는 그의 랩과 춤이 너무 섹시해서 그를 롤모델 삼아 래퍼가 될 거라고 말했다. 둘 다 어려서부터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에 나는 친구에게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친구의 열정에 자극을 받아 미친 듯이 글을 썼고, 그렇게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겨울 내내 추운 것도 모를 만큼 뜨겁게 달렸다.
시간이 지나 친구를 다시 만났고, 당시 초 여름이었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는데 긴팔을 입고 있는 친구에게 요새 래퍼는 긴팔 입는 게 유행인지, 래퍼 준비는 잘 돼가는지, 쇼미더머니(래퍼 경연 프로그램)에는 지원했는지 등등 질문을 쏟아부었다. 친구 덕분에 나도 그간 열심히 살아왔기에 친구의 행적이 너무 궁금했다. 친구는 아무 말 않고 입고 있던 긴팔을 쓱 걷어올리며 박재범과 ‘똑같은’ 문신을 내게 보여주며 “어때? 멋있지?”라고 물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동태 눈깔을 하고선 그저 가만히 있었다. 친구는 씩 웃으며 “짜식, 멋있어 보여서 굳은 것 좀 봐라~ 그렇게 멋있냐?”라고 하더니 이렇게 박재범과 똑같은 문신을 함으로써 래퍼의 길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뒤 '그래 어쨌든 래퍼는 랩만 잘하면 되니까…' 생각하고, 친구에게 작업물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음… 아직 작업실을 못 구해서 작업물이 없어, 우선 천천히 하는 중이니까 기다려봐”라며 본인의 문신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롤모델은 그저 목표 달성 과정을 지치지 않게끔 해주는, 동기가 부여되는 행위에서 그쳐야 하는데, 문제는 롤모델 그 자체가 되려고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진짜 본인 '오리지널'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유명인 복제품 n호’만 남아있게 된다. 물론 내 친구가 목숨 걸고 가사를 쓴 건 아니지만 그렇게 했더래도 ‘래퍼 아무개’가 아닌 ‘박재범 문신을 똑같이 따라한 래퍼’로 인식되어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았다. 친구는 현재 공장에 취업했고, 취미로 랩을 하고 있다.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오리지널 아무개’가 ‘박재범 복제품 n호’보단 낫다.
복제품은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모방은 사람에게서만 띄는 형태가 아니다. 고가 브랜드를 모방해서 비슷한 제품을 만든 뒤 저가로 파는 이미테이션 제품, 소위 '짝퉁'은 세상에 넘쳐난다. 짝퉁은 동대문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지만 공급자와 수요자도 쪽팔린 걸 알아서 암암리에 거래한다. 근데도 기업은 쪽팔린 줄도 모르고 짝퉁을 대놓고 만들어서 판다. 뭐 다들 알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허니 한 버터맛 과자가 유행할 때 경쟁사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꿀맛 과자를 만들었고, 과일소주가 유행할 때에는 경쟁사에서 비슷한 과일소주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대놓고 따라한 건데 모방한 기업은 전혀 사회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복제품보다 먼저 나온 오리지널을 선호했던 것처럼, 이러한 불법 행위를 '나라'도 몰라주는데 '나'라도 알아주니 꿈을 꾸는 우리는 그래도 아직 살만한 게 아닐까?
잘 나가는 것을 보면 따라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자기 개성이다.
하완 작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대중을 맞추려 눈치 보는 작품은 얄팍할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외면한다. 차라리 개성 있는 편이 낫다'라고 했다.
여기서 하완 작가가 말하는 작품을 나는 사람과 제품으로 바꿔서 생각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오리지널 아무개'가 '박재범 복제품 n호'보다 낫고, '구하기 힘들었던 꿀맛 과자'가 '짝퉁 꿀맛 과자'보다 맛있어 보이는 것처럼 오리지널을 따라 하면 사람들은 외면하고, 오리지널이 되면 사람들은 인정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진짜로 살자니까?